[03/9월/되돌아보기]근대화의 참담한 현실이었던 죽음의 공장, 원진레이온

일터기사

[되돌아보기]

근대화의 참담한 현실이었던 죽음의 공장, 원진레이온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준) 편집위원 신상도

노동자의 건강을 생각할 때,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집단 중독 사건은 잊을 수 없는 아픈 상처임에 틀림없다. 1987년 고대 병원에서 첫 이황화탄소 중독환자가 집단 발병된 이후 만 10년 동안 그러니까 1997년 원진재단이 설립되고 노동자 건강을 위한 전문 병원 건립이 결정되기 까지, 수많은 노동자들과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원진레이온 집단 직업병 투쟁에 동참하였다.

친일파의 한사람이었던 박흥식이라는 사람이 1962년 흥한 화학섬유라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이 회사는 일본 도레이 레이온에서 6년간 가동해 온 낡은 설비를 30억 엔의 고가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여 현재의 남양주시 도농동에 16만 평 규모의 공장부지를 조성하였는데, 이로부터 원진레이온의 30년 뼈아픈 역사가 시작된다.

개발독재 시절 군사정권의 비호 아래 운영되어 온 이 회사는 1982년 전창록이라는 사람이 사장이 된 후 경영권을 잡자마자 부실설비로 적자의 주요인이 된 인조견면공장을 폐쇄하고 1300여 명의 노동자를 무더기로 해고시켰다. 당시 원진레이온은 노동자 3000명의 대규모 공장이었다.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됨으로써 해고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장시간 동안 유독성 가스에 무한히 노출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원진레이온에서 배출된 독성 가스의 위력은 대단하였다. 1975년에 설치된 20년짜리 수명의 강철선을 12회에 걸쳐서 53개나 교체해야 했으며, 인근 주민의 가정용 텔레비전 안테나도 6개월이면 바꾸어야 할 정도였다. 도농역에서 근무하던 철도 노동자들이 바람이 불면 역한 공기를 피하여 역사 밖으로 나가기를 꺼렸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공장 구내의 130년 된 느티나무와 미루나무가 공장가동 후 얼마 안 되어 말라죽은 것을 비롯하여 도농역 구내의 향나무를 비롯한 200여 그루의 관상수 그리고 인근 마을 뒷산의 소나무가 시름시름 말라죽어 나갔다. 이러한 환경에서 1986년 25000시간 무재해 실적으로 정부의 표창까지 받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원진 노동자들은 자신의 병이 작업장에서 얻어진 줄도 모르고, 남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거나 자살을 선택하기도 하였다. 수백 명의 노동자가 모두들 같은 증상과 같은 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바로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성장한 노동운동의 역량은 이제 집단적인 직업병 투쟁에 나서게 하였던 것이다.

1988년 7월 29일부터 8월 1일까지 원진레이온 사장실 점거라는 초유의 집단적인 투쟁이 시작된 이래, 1988년 8월 6일 노동운동계․보건의료계 등 25개 단체가 ꡐ지원대책위원회ꡑ를 구성하면서 ,이제 원진레이온은 일개 사업장의 안전보건 문제가 아닌 개발 독재 시대의 처참한 희생에 대한 사회적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1989년 ꡐ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 노동자 협의회ꡑ가 결성되면서 원진 노동자들의 단결이 고양되었고, 1991년 1월, 원진레이온 노동자 故김봉환 동지의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131일 동안 장례를 거부하며 시신투쟁이 전개되었다. 마침내 1997년 회사 및 정부와 합의에 이르기까지 6년에 걸친 지난한 투쟁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원진레이온은 조국 근대화의 과정에서 짓이겨진 수많은 노동자들의 단지 일부의 현실이었다. 그들의 육신이 비로소 삶을 지탱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이 사회는 마지못해 처참한 역사의 부끄러운 사실을 드러내었을 뿐이다. 그러나 원진레이온 투쟁은 노동안전보건의 운동역사에 이정표를 세우게 하였다. 수많은 노동안전보건 단체가 설립되어 현장 노동자들의 건강권 투쟁의 파수꾼으로 거듭나게 하였으며, 노동조합 운동에게는 작업장 안전과 환경에 대한 집단적인 인식과 저항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였다. 오늘날, 작업환경 측정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나, 노동재해 및 직업병에 대한 요양권 등의 효시는 바로 원진레이온 투쟁으로부터 기인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고 있는 남양주 도농동을 지나다보면 잔인한 역사의 현실이 어느새, 꿈처럼 아득한 먼 기억으로 남아 있음을 문득 느낀다. 우리의 생각은 여전히 더디고 아둔할 뿐이며, 현장은 여전히 집단적 직업병의 악몽을 되풀이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지난 50년 선배 정부들이 외쳤던 것처럼, 2만 달러 시대를 선전하며 여전히 선진 조국을 동경하고 있다. 그 속에서 자살과 과로사로 운명을 달리하는 또 다른 원진의 노동자들을 우리는 이렇게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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