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터, 이렇게 바꿨다]
두원정공 노동조합 편집부장 윤병찬
새벽3시. 뒤척이던 아들 녀석의 발에 차여 눈을 뜬 순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통증으로 인해 몸이 굳어버렸다. 가쁜 숨을 헐떡이기를 30여 분… 보다 못한 집사람이 일어나, 나를 굴려 눕히고 주무르기 시작한다. 살아있는 송장과 같은 내 몸이다. 이런 생활에 집사람도 만성이 되었는지 아무렇지 않게 응급처치를 하고 이내 잠이 든다. 모두가 잠이든 방 한가운데에서 천정을 응시하고 한숨지으며 그렇게 밤을 새운다.
3개월째 병원을 다니고 있다. 조퇴를 하고 병원을 찾았으나 의사들의 말은 모두가 한결같다. 뼈에는 이상이 없단다. 흔한 근육통이라고 한다. 물리치료와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라고 한다. 침도 맞아 보았다. 병원을 옮기기를 수십 차례, 그러나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IMF 이전에는 내가 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로 잘 나가는 회사였다. 그러나 IMF를 겪으면서 천여 명이던 인원이 지금은 600여명으로 줄었다. 당연히 동료가 떠난 빈자리는 내가 메꾸게 되었다. 이런 작업방법의 변경과 라인의 변경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노동조합조차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조합원교육을 통해 안 직업병
조합에서 근골격계직업병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고 한다. 생소한 병이다. 교육이 있던 날, 나는 비로소 내가 밤새워 고통 받고 있는 것이 직업병이라는 것을 알았다. 병명도 생소한 근막통증후군이라고 한다. 그 병의 원인이 동료가 떠난 자리를 내가 맡아서 하면서 내 노동강도가 강해져서 발생한 병이라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한꺼번에 밀려드는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주체 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에 휩싸여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말았다.
나 자신과 가정을 위한 결단
이후 조합은, 설문조사․현장조사․문진 등을 진행하였다. 문진이 있은 후 수석 부위원장으로부터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을 같이 하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리고 투쟁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 전에 나와 같이 근무하던 동료도 이런 제의를 받았는데 거절하였음을 나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현장에는 이 투쟁을 하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하루를 고민 끝에 동참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만큼 내 몸 상태로는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그리고 내 몸이 온전하지 않고서는 내 가정도 한낮 무지개일 뿐이라 생각했다.
환자들의 자발적 투쟁
120여명의 질환자 중에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인원이 52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 근골격계 투쟁을 약속한 21명이 대학병원에서 2003년 1월 초 진단을 받았고, 나는 근막통증후군과 경추 디스크라는 진단을 받았다.
집단요양 신청을 하면서 우리 환자들은 자발적으로 2개 조를 편성하였다. 교대로 돌아가며 하루는 치료를 받고 하루는 공단농성을 하기로 하면서 요양 신청과 동시에 공단농성에 돌입하였다. 매일 공단에서 벌어지는 농성에 공단은 하루라도 빨리 처리해 줄 것을 약속하였으며, 경기지역 최초로 산업의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자문위원의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고 약속하였다.
우리의 요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노동부 항의 시위도 병행하였다. 노동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하였으며, 얼마 되지 않아 임시건강진단명령, 종합진단명령, 산재은폐 경위에 대한 조사 및 책임자 고발 등을 쟁취해냈다. 회사에서는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약속하였고, 노사 협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을 요구하였다.
환자와 함께 한 승리
자문위원회의가 열리는 날, 우리 환자들은 자문위원회의가 열리는 인천 근로복지공단을 찾아가 압박하며 모두 승인 해줄 것을 요구하였고, 이후 대학병원에서 진단한 병명과 치료기간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전원 산재승인이 났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산재승인자 중에는 과거에 산재 불승인으로 고통 받던 조합원 3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현장개선위원회 발족
현재 노사가 합의한 현장개선위원회가 7월 초 발족하였다. 현장개선위원회는 현장의 근골격계 직업병을 유발하는 작업환경을 찾아내고 이를 개선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개선위의 활동은 노즐공장부터 시작되었고, 하계 휴가기간에 개선위가 요구한 내용대로 C자나 U자형 라인에서 일자형 라인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개선위 활동은 전 공장으로 확대되어 이어질 것이며, 이로서 투쟁의 성과물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현장개선위원회 발족의 의미
IMF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우리 현장이 일자형 라인에서 U자나 C자 형태로 변형되었고, 이로 인한 잉여인력이 감축되었다. 그 결과 개인의 노동강도는 강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한 직업병이 나에게 나타난 것이다. 근골격계 투쟁의 핵심은 개인의 질병을 치료하는 수준의 투쟁이 아니라, 김대중정권 하에서 자행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저지하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확보하는 것과 노동강도 강화를 저지하는 투쟁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현장의 개선, 제도의 개선 없이는 내 질병이 완쾌되어 현장에 복귀한다 해도 재발할 것이며, 나 같은 조합원이 수없이 양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장개선위원회의 활동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저지하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며, 거대 자본과 권력이 침탈한 현장을 지키는 작은 첫 걸음인 것이다.
나는 희망한다
나는 아직도 치료 중에 있다. 병세가 많이 호전되어서 조만간 복직을 해도 될 것으로 판단이 선다. 나는 희망한다. 현장이 개선되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나에게 크나큰 희망이다. 평생을 일해야 할 터전이 나에게 병을 가져다주는 현장이 아닌, 나와 내 가족에게 커다란 희망의 현장이 되어 있기를 말이다. 현장에 남아있는 근골격계 직업병 유소견 조합원동지들도 내가 건강하게 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빠른 시일 내에 이들에 대한 치료도 이루어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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