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월] 집배원 아저씨, 고맙습니다!

일터기사

[일터이야기]

집배원 아저씨, 고맙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위원 허 경

이야기를 시작하며

집배원아저씨에게 물 한 잔 드리고 아저씨의 칭찬을 듣는 일은 어린 나에게 항상 즐거운 일이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인 집배원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저씨’에게 칭찬듣기에 내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과 물 한잔 대접하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미소로 인사하기엔 ‘아저씨’들도 너무 바빠졌다는 것, 슬픈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인천 우체국 집배원인 최승묵씨(집배원, 32)와 김수길씨(상시위탁집배원, 29)를 만났다.

이야기하나 – 아저씨의 하루

원래 출근시간은 오전9시 퇴근 시간은 오후6시다. 하지만 보통 오전 6시쯤에 일어나서 출근을 준비하고 밤 9시가 넘어야 퇴근하는 것이 그들의 생활이다. 9시부터 배달을 시작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 집배원은 보통 7시까지 출근하고 9시쯤부터 5~6시간 배달을 하고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오면 오후 5시 정도. 퇴근준비를 해야겠지만 다음날 배달할 물량을 정리하는 일을 해야한다.
“배달하는 게 주 업무 같겠지만 배달할 물량을 정리하는 일은 배달하는 시간의 1.5배가 필요하거든요..”
9시가 다 되어서 퇴근한다. 요즘 같은 연말이나 물량이 많은 명절에는 12시나 되어야 퇴근할 수 있다. 고지서, 광고지가 물량의 90%이상인 그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집배원’이니 ‘사랑을 전하는 집배원’이니, 이런 말은 심각한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그들의 모습을 감추는 공허한 말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야기 둘 – 상시위탁집배원아저씨

김수길씨는 상시위탁집배원이다. 상시위탁집배원은 비정규직집배원의 정식명칭이다. 그는 상시위탁집배원이 되기 전에 대무사역이라는 전 단계를 거쳐야 했다. 하루 3만6천원의 일당을 받는 대무사역은, 숙달이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빈약한 임금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은 제일 길다. 그래서 이 단계의 이직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험난한 대무사역의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면 상시위탁집배원이 되는데 기본급이 54만원이다. 기본급54만원, 상시위탁집배원은 시간외 수당을 위해서 과도한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그들에게는 위험수당도 지급되지 않는다. 비정규직집배원, 상시위탁집배원이 타는 오토바이는 결코 위험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집배원의 첫 모습은 ‘주재집배원’이었다. IMF 이후 주재집배원이 생기기 시작했고 2000년까지 집배원의 3분의 1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이 기간동안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심각한 노동강도 및 열악한 노동조건 등으로 이들의 불만은 높아만 갔고 서광주우체국의 박석기씨를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건설을 시도하는 등의 활발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2001년 박석기씨는 재계약 되지 않았고 간접선거로 위원장을 선출하는 비민주적 체신노조에 비정규직도 가입시키는 특이한 탄압으로 비정규직의 투쟁은 힘든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던 중 정규직집배원인 최승묵씨가 말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이 많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규직이 되어서도 안주하지 않고 같은 노동자로서 비정규직과 함께 끝까지 투쟁해야 된다는 것이죠. 정규직이 되고 나서 비정규직에 대한 관심을 끊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비정규직도 체신노조에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중요하지만 체신노조의 민주화가 더욱 중요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함께하는 투쟁 속에서 느끼며 또 다른 투쟁을 함께 준비하는 정규직 집배원아저씨와 상시위탁집배원아저씨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아저씨들은 동지였다.

이야기 셋 – 아저씨의 오토바이

“겨울동안 한두 명은 꼭 병원에 가요.”
“조금 다친 거는 산재나 공상으로 처리도 안 해줘요. 나중에 경영평가 때 안 좋거든요.”
네 바퀴에 비해 안정성이 현격히 떨어지는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는 이들에게 눈 오는 겨울은 매우 힘든 시기이다. 길이 미끄러운 것도 그렇고, 연말연시인데다가 설명절도 끼어 있어서 물량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명절 때가 제일 서러워요. 일은 제일 많이 하는데 상여금도 없는 달이라 월급은 제일 적거든요.”

겨울의 초입, 간간히 비가 내리던 그 날, 오토바이로 위험천만한 배달을 하는 아저씨들이 말했다.
“눈이 차라리 나아요.”
“미끄럽기야 하지만… 그래도 비 오면 우편물이 젖거든요. 우편물이 젖으면 절대 안되죠.. 눈은 털어내면 되지만..”

이런이런… 노동자가 주인되기 전 겨울비는 절대 내리지 말 것.

이야기를 마치며

배달하던 중 지나가는 중국집 배달원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 좋은 김수길씨는 결혼한 지 6개월 됐다. 부인은 그가 일하는 인천우체국 민원실에서 대무사역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비정규직 신혼부부이다. 둘이 버는 임금이 정규직 한 사람 임금과 비슷하다며, 안타깝다고 그가 말했지만 헤어져 오면서 난 즐거웠다. 그것은 김수길씨와 최승묵씨를 함께 만났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인 상시위탁집배원과 정규직 집배원을 함께 만나면서, 투쟁하는 비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과 함께 투쟁해야 한다는 정규직 노동자를 함께 만나면서 나는 즐거웠다.

어릴 적, 내가 드린 물 한잔에 따뜻한 칭찬으로 나를 기쁘게 해주시던 집배원 아저씨를 만날 수 없겠지만 이제는 동지에 대한 뜨거운 맘을 가진 집배원 아저씨가 주시는 기쁨이 있어 난 아쉽지 않다.
집배원 아저씨,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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