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0월/특집1] 조금씩이라도 변해야 한다-조선소 하청노동자의 노동안전보건 문제

일터기사

[특집1]

조금씩이라도 변해야 한다
–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노동안전보건 문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 조합원/산재(해고)노동자 조광한

찌는 듯한 무더위도 이제 물러가고 가을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하늘이 높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삶에 찌든 생활을 하다보니 하늘 볼 시간도 없었다는 것을 이제야 느낀다. 그 동안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에서 산재 담당을 맡으면서 여러 생각들이 들게 된다. 정말 나보다 더 많은 서러움을 당하면서도 산재 신청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보면서, 이 사회가 산재 문제만이라도 잘 해결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

작년 11월경, 같은 업체에서 근무하였던 박헌국씨(24)의 사례가 생각난다. 그 날 아침, 회사에 출근하여 배 갑판 용접선을 도장하기 위한 연마작업을 하였다.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던 중, 와이어 브러쉬 핀이 박헌국씨의 안구에 박히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동료가 핀을 빼려하는 순간 안구가 같이 따라나오려고 하여, 나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급한 상황이라 휴대폰으로 관리자에게 알렸으며, 한 30분 후 업체 자재를 보던 동료가 차를 몰고 와 박헌국씨를 업체 사무실로 후송하였다. 그 날 저녁,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여 사무실에 들러 회사 관리자에게 물었더니, 박헌국씨는 병원에 갔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이야기하여 나는 잘 진행되겠지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다음 날 전화통화로 박헌국씨의 이야기를 듣자, 도저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한 관리자와 사장에게 분노가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는 “이전에 사망사건에 있었으니 산재처리하면 안 된다.”, “니가 산재를 신청하면 같이 일하는 동료, 형들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된다.”, “원청에서 회사를 폐업시킬 것이다.”라는 말을 하며 박헌국씨가 산재를 신청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병원에 갈 때 사측 관리자는 단 한 사람도 동행하지 않았고, 심지어 회사에서는 “병원가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다쳤다고 이야기하라”, “작업복을 입고 가면 이상하게 생각하니 집에 들려 사복으로 갈아입고 가라”는 지시를 하였다고 한다. 이 병원, 저 병원 혼자서 다친 몸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을 동생을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팠다. 작은 병원에서는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고 말하여 박헌국씨는 다시 업체 총무에게 연락을 하게 되었지만, 그 때마저도 회사에서는 동행하지 않고 상황을 알려달라는 식의 말을 할 뿐이었다. 큰 병원에 가자마자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박헌국씨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저녁, 박헌국씨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산재 신청을 하는 데에 필요하니 진술서를 써달라고 했다. 동료 1명과 함께 산재신청에 필요한 진술서를 써주었다. 회사에서는 날인 거부를 하였으며 진술서를 써준 나와 또 다른 1명의 동료는 관리자들에게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어쨌든 산재요양신청서는 접수되었고, 약 두 달간의 시간이 지나 산재승인 판정을 받게 되었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우리 하청노동자들에게 이 두 달이라는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길고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박헌국씨는 당당히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였고, 또한 함께 싸워준 울산 산재추방운동연합 동지들과 업체의 동료 1명의 도움으로 잘 마무리될 수 있었다. 지금 박헌국씨는 9월 말까지 요양기간을 연장한 상황이다. 다친 눈은 인공수정체 삽입수술을 했고, 한편으로 대인기피증을 가지고 있는 상태이다.

올해 들어 현대중공업에서는 산재사고로 사망한 사건이 10건이 넘는다. 노동부는 그 많은 사람이 죽어도 사측을 대변하는 역할만 할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를 대변해야 할 국가기관이 오히려 노동자가 병신이 되고 죽어도 자신들과는 상관없다는 식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우리 노동자들을 얼마나 힘들고 괴롭게 하는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 우리 노동자들의 문제점도 많다고 본다. 같은 노동자로서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산재는 다른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곧 나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역에서 산재 업무를 담당하는 분들도 홍보와 교육에 더욱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점은 산재승인이 나기까지의 기간이다. 몸도 다치고 어디에 가서 일도 할 수 없는 우리 산재노동자들은 산재승인 판정이 나기까지 무방비 상태로 쉬어야만 한다. 길면 몇 달씩 카드연체를 해야 하며 심지어 신용불량자라는 딱지를 갖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장을 만나 이야기도 해보았지만 일손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따름이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 분명 정부에서도 어떠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하청노동자들은 산재를 종결해서도 많은 문제점들에 접할 수밖에 없다. 회사로부터는 산재를 했다는 이유로 계약만료로 내몰리게 되고, 심지어는 산재요양 기간 중에도 계약만료로 해고당하기도 한다. 또 산재은폐를 낳을 수밖에 없는 원청의 노무관리 방식도 문제이다. 산재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하청업체에는 물량을 주지 않도록 하여, 하청업체 스스로 문을 닫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회사의 안전조치는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노동자들은 무방비 상태로 작업장에 방치되어 있고, 결국 똑같은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현실이 바로 지금 현대중공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이다.

열심히 살아온 우리 노동자들이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 조금씩이라도 변해야 한다. 내 후배, 동생, 아들에게는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노동 현장을 줄 수 있도록, 우리 노동자들의 연대가 절실히 필요할 때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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