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0월] 그렇다고 사람을 두려워하랴!

일터기사

[문화마당]

그렇다고 사람을 두려워하랴!
군산 노동자의 집 여은정

상담을 하다보면 정말 많은 종류의 사람을 만난다. 산재를 당해 심신이 피로한 이들의 얼굴엔 생에 대한 짜증이 가득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쫓겨난 이의 얼굴에선 분노가 치민다. 또 가끔씩 찾아오는 사업주들의 얼굴에선 비굴함과 뻔뻔함이, 때로는 억울해서 죽겠다는 표정까지 가지각색이다. 어찌 됐든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나이기에 하루 자고 나면 잊어버리고 다시 일을 시작하지만 가끔은 혼자 있는 게 두렵기도 하다.

오늘도 한 남자가 상담을 하러 왔다. 그는 들어오면서 양말에 구멍이 났으니 이해하란다. “아… 네. 뭐, 괜찮습니다” 하고 상담하는 책상에 앉자마자, 그는 대뜸 책상을 휴지로 박박 닦기 시작한다. 그렇게 지저분했나 싶어 약간 무안했지만 그 사람 성격이겠거니 생각하고 얘기 들을 준비를 하는데 이 양반이 자기 노트에 뭔가를 쓰기 시작한다. “얘기하시죠”했더니 대뜸 “제가 서양식 요리를 10년 간 했습니다.” 어, 이 양반 방문 판매하는 사람인가하고 눈을 크게 뜨자 그가 “제가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하며 쓱쓱 쓰기 시작하더니 노트를 쫙 찢어 나에게 내민다.
– 서양식 요리 10년 근무, 경비 업체 4년 6개월 근무.
현재는 보디가드라고 써있는 명함을 한 장 내밀더니 얘기를 시작한다. 7월 중순경에 레스토랑에서 이틀 일했는데 임금을 못 받았단다. 그래서 노동부에 진정하라고 했더니 그럼 그걸 써달라고 하여 진정서를 쓰는데 옆에 앉은 그가 나에게 이것저것 묻는다. 고향이 어딘지, 나이는 몇 살인지… ‘아따! 아저씨 궁금한 것도 많네.’ 속으로 생각하며 적당히 얼버무렸더니 그가 다시 묻는다. “내가 그렇게 못생겼어요?” “예? 아니… 후후… 그냥 사람처럼 생겼는데요.” 결국 그 아저씨 나더러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기에 사적으로는 안 가르쳐 준다며 둘러대고 결혼했다고 거짓말한다. 아저씨 나중에 나가면서 나더러 악수하자고 하더니 손이 차갑다며 약 먹어야겠단다. 그리고 화장도 안하고 수수한 게 참 순수해 보인단다. 그러면서 자기는 여자를 볼 때는 싸가지를, 남자를 볼 때는 의리가 있는지를 본단다. 나, 참으려다 한 마디 한다. “그냥 여자나 남자나 똑같이 보시지요. 똑같은 사람인데.”

워낙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보니 돌발행동에 대해 침착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폭력적인 상황이다. 그의 남다른 행동이나 차림새가 문제가 아니라 혹시나 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두려움 말이다. 싱글싱글 웃으며 상담했지만 그가 나가기까지 내 마음은 불안했다.
‘아! 얼른 무술을 배워야지.’ 폭력 없는 세상을 꿈꾸며 오늘도 나는 다짐만 한다.

1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