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0월] 만성질환 환자가 된다는 것은

일터기사

[세상사는 이야기]

만성질환 환자가 된다는 것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교육위원 오주환

어느 날 우연히 혈압을 재보았다. 150/110, 170/130. 아니 이럴 수가! 믿어지지 않았다. 늘 체력자랑하고 다녔는데. 내게 고혈압이 찾아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우연히 한 번 높은 것이길 바라며 다음날 재봐도 그 다음날 재봐도 마찬가지였다. 내과전문의인 친구를 찾아가 진료를 받았다. 몇 년 전에도 잠깐 높은 적이 있었던 터라, 이런 대답을 듣기를 바라면서 찾아갔다. “커피 좀 줄이고 운동 좀 해라!!” 그런데 이번엔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당장 약물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 지난번처럼 하면 안되냐 물었더니 이번엔 그렇게만 하기엔 너무 높다는 것이다. 식이요법과 운동만으로는 정상화시키기 어렵단다. 정상화된 후에도 혈압약을 끊을 수 있기는 거의 불가능할 거란다. 처방받은 혈압약을 받아서 먹기 시작했다. 정말 우울했다. 이제 겨우 30대 후반의 나이에 벌써 만성병환자가 되어서 평생 약을 매일 먹어야 한다니 정말이지 그 날의 우울함이란…

7월 1일. 혈압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시립수영장에 등록을 했다. 매일 아침 6시부터 1시간동안 수영을 하기로 결심했다. 식사도 완전히 채식주의자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바꾸고 콜레스테롤 높은 음식과 짠 음식을 피하고 한편으로는 체중감량을 시도하기 위해 쌀 섭취량을 줄였다. 정말 혈압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다. 난 병원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다행히 혈압을 자주 잴 수 있다. 그래서, 아침부터 밤까지 혈압의 변화양상을 계속 기록했다. 그런데 누구나 다 아는 놀라운(?)사실을 다시 한 번 발견했다. 아침에 출근하고부터 혈압이 조금씩 계속 올라서 퇴근할 때에 가장 높은 혈압을 항상 기록했다. 약 20정도가 증가되었다. 한편 나의 아버지는 심한 고혈압으로 역시 혈압약을 드시고 계시다. 더구나 난 최근 체중이 점차로 늘어 70kg에 이르렀는데 이는 내 키에 비해선 과도한 체중이다. 난 최근까지 하루에 3-4잔 정도의 커피를 마셨다. 이런 모든 요인들은 내 고혈압과 직접 연관된 것들이다. 커피를 당장 끊고 녹차로 바꾸고 운동도 계속 열심히 하고 약도 잘 먹고. 이렇게 2주가 지나자 혈압이 정상에 가깝게 되었다. 체중도 2kg이 줄었다. 몸은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그런데, 개인적인 노력으로 식습관의 변화, 지속적인 운동은 할 수 있었지만 출근하고나서 퇴근까지의 근무 중 혈압상승이 약 20정도인 것을 어떻게 없앨 방법이 없었다. 이것은 내 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업무중의 긴장은 내가 맘대로 하기 어려우나 어쨌든 난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 목표는 나의 담당의사가 안 된다고 했던, 혈압약을 안 먹고도 정상혈압을 다시 되찾는 것이다. 그런데 업무가 주는 고혈압의 악화요인이 최후의 걸림돌이었다. 난 내 지위의 특성 상 날 감독하는 이가 없다. 그래서 이걸 이용하기로 했다. 약간의 태업으로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근무과정의 특성 상 불이익을 약간만 감수하면 난 내 맘대로, 다행히 이렇게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업무를 약간 게으르게(?)하고 느긋하게 하여 강제로 업무량을 줄이고 업무스트레스를 줄이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나니 혈압이 업무 중 상승하는 현상이 많이 둔화되었다. 이렇게 몇 주가 흘렀다. 10주가 지난 지금 체중은 7kg이 줄었고 혈압도 115/75정도로 정상화되었다. 근무 중의 피로는 거의 느끼지 않고 오히려 약간 더 건강해진 느낌이 들고 실제로 달리기를 해봐도 전보다 훨씬 오래 지치지 않고 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과전문의인 내 친구는 결과에 놀라면서-훌륭한 환자라고 칭찬을 했다- 이 정도를 하루 내내 유지하면 다음달부터는 약물요법을 중단하는 시도에 들어가자고 했다. 난 이제 만성병환자에서 다시 벗어나길 기대하면서 다음달을 기다리면 살고 있다.

난 최근의 2-3달을 건강을 잃는 것의 두려움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많은 생각들을 새로이, 그러나 매우 진지하게 하였다. 저렴한 비용으로 지속할 수 있는 생활체육시설들, 업무상 스트레스와 긴장으로부터의 회피, 좋은 기호식품, 저렴하고도 하루의 일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적당한 영양이 담긴 식단. 이런 것들은 어떻게 하면 손쉽게 모든 사람들이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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