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0월] 쌀시장 개방 반대투쟁, 어둡고 을씨년스런 가을 풍경

일터기사

[칼럼]

쌀시장 개방 반대투쟁, 어둡고 을씨년스런 가을 풍경
자유기고가 박성준

가을걷이 준비로 한창이어야 할 시골 마을들이 시끌벅적하다. 쌀시장 전면 개방을 10년 동안 유예 받았던 우리나라가 9개 쌀 수출국과 관세화를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 연쇄 협상을 벌이는 동안 전국의 농민들이 이에 대한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선 쌀 관세화 유예를 10년 더 연장하는 것을 목표로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과연 그것이 성사될 지도 불투명하거니와, 유예가 가능하다 해도 쌀의 의무수입 물량을 현재의 4%에서 10% 이상으로 늘려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협상의 결과가 어떻든지 농민의 삶과 생활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비극적인 미래가 예상되고 있다. 쌀을 대체할 어떤 종류의 농사도, 반농민적 농업정책의 기조 아래에서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3년 9월 11일에는 지구의 반대쪽, 멕시코 칸쿤에서 WTO에 반대하며 민족농업과 세계농민을 위해 故 이경해씨가 자결하였다. 그 1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요즈음이 공교롭게도 쌀시장 개방 협상이 본격화되는 시점과 맞물리면서, 그리고 정부의 고위 관료의 입을 통하여 개방을 전제로 한 관세화 방침이 알려지면서, 전국 농민들이 가을걷이와 한가위 준비 대신에 트랙터로 논을 갈아엎고 시청과 구청에 경운기를 몰고 나오게 된 것이다. 110여개 종교·여성·시민단체로 구성된 ‘우리 쌀 지키기 식량주권수호 국민운동본부’의 주도로 9월 10일부터 시작한 전국적인 투쟁은 전 세계 농민운동의 지도자들까지 참여하는 국제적인 투쟁으로 변모하였으며, 정읍에서 전개된 투쟁은 흡사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격렬한 사투(死鬪)로 이어졌다. 쌀시장 개방! 농민들의 찢어진 가슴에 흉측한 비수를 들이대는 국가차원의 조직적인 범죄라는 인식이 농민들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농사일을 전원의 삶으로 이해하고, 농민의 삶을 주말 농장 따위로 이해하기 쉬운 도시인들에게 이들 투쟁이 왠지 낯설고 거리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더구나 쌀시장이 개방되면, 국내산 쌀 값의 1/10 밖에 안 되는 가격으로 사먹을 수 있는 중국 쌀, 베트남 쌀이 들어오게 되고 그렇게 될 경우 도시 서민들의 생활비용이 감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쌀시장 개방이라는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불가피하다고 타이르는 보수 언론의 논조도 짜증스럽지만, 쌀시장이 개방되고 난 후에 농민의 삶이 더욱 피폐해질 수 있으니 이를 보조할 수 있는 경제 지원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소위 진보적인 척 하는 국회의원의 꼴도 사납다.

최근 수입쌀이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일부 시민운동의 지적이 언론에 발표된 적이 있다. 보건의료·노동자·시민단체 등 12개 사회단체가 망라된 ‘의료의 공공성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연대회의(이하 의료연대회의)는 9월 15일 성명서를 통해 “심각한 농업위기, 식량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쌀시장 개방을 전면 유보하고 국민적 합의를 통한 범국가적 식량 자급 대책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면서 “쌀시장이 개방될 경우 유전자 변형 식품(GMO)을 의무화하지 않고 발암물질이 포함된 유해농약성분 등을 막대하게 투입하고 있는 식량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라고 표명하였다. 국내 토종 쌀로 지은 밥의 기름지고 부드러운 맛 대신에, 유해 농약으로 덧씌워져 있거나 안전성이 확립되지 않은 유전자 조작 방식으로 재배된 쌀로 밥을 먹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이 주장은 한편 웰빙(well-being)이 화두가 되고 있는 주류 사회의 시각에서 본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쌀시장 개방을 이해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러한 상황에 도달한다 하여도 농약이 덧칠해진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2등 국민, 즉 노동자와 도시 빈민일 테니 지배계급의 식탁이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경우 시민운동들은 식량 주권을 놓치게 된다는 의미에서 쌀시장을 개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즉 수입쌀로 식탁의 대부분이 채워지는 상황이 온다면, 국내에서 식량을 재배하는 농촌이 사라지게 되고, 모든 사람들이 수입물품에 의존하여 먹고살게 되는 상황이 되면 식량은 곧 탱크나 핵폭탄과 같은 위력을 지닌 무기가 될 것이라는 설명인데, 이러다 보니 주권을 지키고 독립 국가를 유지하려면 쌀시장 개방은 안 된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많은 농민운동의 주장도 이와 같은 맥락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정읍에서 처절하게 나뒹구는 농민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박준영 도지사에게 선거 때 공약을 준수하라는 전남지역 농민들의 함성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씨의 입국과 격려에도 불구하고, 쌀시장 개방 반대 투쟁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고, 야위고, 늙은 농민들로 비추어질 뿐, 도대체 정부와 자본의 도도한 흐름이 결코 중단될 것 같지가 않다. 지금 바로 연대 투쟁의 선봉에 있어야 할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쌀시장 개방은 노동자들에게 남의 집 일, 관여하기 그저 그런 문제인 듯이 보인다. 사실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등 상층 지도부도 농민들의 절박한 요구에 연대해야 한다는 원칙에 공감하면서도, 실제 기층 노동자들이 어떻게 투쟁할 수 있는지, 그리고 투쟁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집요한 계획을 제출하고 있지는 못하다. 9월 11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있었던 쌀시장 개방 반대 집회에 나선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그동안 농민이 겪은 아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한 점을 우선 사과 드린다”며 “WTO라는 이름의 세계 경제 전쟁을 이겨내기 위해 빈민, 노동자, 농민, 학생, 전문직 모두 힘을 모아 식량주권을 사수하자”고 웅변을 토했지만 과연 어떻게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설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였다. 각 노동조합의 집행부나 지도부 역시 쌀시장 개방에 대한 노동자들의 생각과 태도를 정리하고 있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농민들이 투쟁하고 있으니 같이 도와야 할 문제인 것 정도로는 생각되지만, 전체 조합원이 쌀시장 개방에 대해 파업 찬반을 물어야 할 심각한 문제로 생각되지 않는다. 어쩌면 일부 노동자들은 쌀시장 개방이 자동차 전자 조선 등 공산품 수출의 장애물을 없애는 반드시 필요한 악(惡)이라는 자본의 홍보에 매료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97년 경제 위기 이후 강제적 구조조정, 고용 불안정과 비정규직화, 노동강도 강화, 경쟁적 산업구조 개편 등 일련의 공세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쌀시장 개방은, 모두 자본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공격의 일환이다. 신자유주의에 의하면, 농촌 사회는 더욱 분해되어야 하며, 자본의 활로로 더 많은 전원과 토지가 공급되어야 한다. 값비싼 쌀 대신 ‘정말’ 싼 값의 식량이 공급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노동의 대가(임금)를 줄이기 위해서는 부드럽고 기름지지만 값이 비싼 쌀 대신에, 돈 만원이면 한 달을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싼 쌀이 요긴하다. 생선도 수입하고, 고기도 수입하고, 쌀도 수입하고… 이래야 임금수준을 낮추게 되고, 국제 경쟁력이 확보된다. 이를 위해 자본은 많은 것을 한꺼번에 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리고 지금의 쌀시장 개방은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한, 농촌사회에 대해서는 최후의 일격인 셈이다. 이제 그 이후에는 수입된 쌀로 지은 밥을 가족과 아이들과 같이 즐겁게 나누는 노동자들이 등장하여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농촌을 말살하고, 그 대가로 노동자의 삶을 희롱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에는 시골에 있는 선산에 성묘를 다녀왔다. 형제들이 모두 서울에서 생활하다 보니, 선산에 있는 조상을 자주 찾을 수 형편이었다. 낫과 톱을 들고 직접 벌초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어, 고향 마을에 살고 있는 분께 벌초를 부탁드려야 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벌초할 수 있는 젊은이, 아니 중늙은이 한 명도 살고 있지 않은 고향 마을이다 보니, 물어물어 한참 떨어진 옆 마을 할아버지에게 벌초를 부탁해야 했다. 농사짓지 않고 있는 많은 밭과 논들, 그리고 한 집 건너 비어있어 흉물스럽게 가라앉은 지붕들을 보면서 무너져간 내 고향과 사라져버린 내 어린 시절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서울 근처 어디에 납골당 자리라도 알아보자”라는 형제들의 씁쓸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고향을 잃고, 우리 식탁에 기름진 우리의 음식을 올리지 못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노동에 지치고, 주 40시간이 무색하게 주말이면 특근을 밥 먹듯이 하고, 받아 든 월급에서 뚝 떼어 학원에 애들 보내야 하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 값 때문에 자동차가 부담스러운 노동자들의 가을 생활 속에, 농민들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도심에서 항의하는 텔레비전 뉴스 화면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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