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0월]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는 언제 울려 퍼질까

일터기사

[일터이야기]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는 언제 울려 퍼질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위원 허 경

사업장을 섭외하고(또는 연구소 편집실 동지들이 섭외해 주고), 약속을 잡는다. 방문해서 직접보고, 듣고, 느끼고, 그걸 글로 옮기는 작업을 마치면 편집실에 (항상 늦게) 넘기는 수순으로 <일터이야기>를 써왔다. 하지만 이번 일터이야기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진행되었다. 영상을 만들면서 갔던 일터를 보고 <일터이야기>에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실 이번 일터이야기는 영상 제작후기이다.
8월 17일 고용허가제 실시 이후,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는 작업 중에 본 ‘일터’, 그 안 ‘노동자’들의 이야기, 이주노동자들과 그들의 일터에 관한 이야기이다.

프롤로그

“고용허가제가 시행됨으로 해서 내국인 고용기회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외국인력을 활용,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에 기여할 수 있게 되었고, 기업의 자율적인 근로자 선택권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다.”
“고용허가제를 시행하게 되면서 그동안 사회문제로 불거졌던 연수생 편법활용, 송출비리, 인권침해 등 산업연수제도에 대한 국내외적 비난을 일소하는 동시에 송출국가와의 국가적 협력을 기반으로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반한 감정 등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실시하면서 제도의 훌륭함을 이와 같이 소개했다.

이 훌륭한 제도 <고용허가제>에 대한 의문은, 제도의 직접영향을 받는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8월 17일 고용허가제가 시작되던 날,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운동단체들은 고용허가제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특히 여기 모인 이주노동자들은 작년 7월 31일 국회에서 고용허가제 법안이 통과됨과 동시에 이를 반대해 왔고 작년 11월 중순부터는 명동성당 들머리에 천막을 치고 지금까지 농성을 진행해왔다. 도대체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에게 허가하는 것은 무엇일까?

#1 명동성당 농성단의 지역순회투쟁에 동행하다

명동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하는 이주노동자들은 300여일 동안 천막을 지키고 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현장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며 고용허가제의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이주노동자들이 다같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었다. 명동성당의 이들도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밤에 몰래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러 가야 했는데, 카메라를 들고 동행했다.

동두천의 어느 염색 공장단지에 갔다. 공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몇 명의 아저씨들이 지키고 있었다.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최근에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은 공장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이주노동자들을 보면 무조건 차에 태운다. 체류기간이 3~4개월 남아도 돌려보내지 않는다. 어차피 3~4개월 후에 다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저씨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잡혀가면 공장을 돌릴 수가 없기 때문에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아저씨들 역시 공무수행 중인 공무원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고 공장의 이주노동자들이 뒷산으로 피신할 수 있는 만큼의 시간을 버는 것이 임무였다. 우리는 단속추방을 반대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통과됐다.

공장으로 들어가 보니 이주노동자가 잡혀가면 공장이 멈출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이주노동자가 내국인의 고용기회를 침해한다는 이야기, 그래서 지금의 불법체류자들을 다 쫓아내고 새로운 사람들을 불러들인다는 이야기는 다 헛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5분도 견디기 힘든 그 곳. 습하고, 뜨겁고, 코를 찌르고, 가슴이 턱턱 막히는 냄새로 진동하는… 한국 사람들은 한 달에 50~60 받고 이런 곳에서 밤10~12시까지 일할 리 만무하다. 여기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불법체류자 밖에 없었다.

이곳의 이주노동자들은 정부의 단속반에게 잡혀서 일거리 없는 본국으로 쫓겨나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으로 일하거나 두 가지 최악의 상황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2. 안산의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다

반월/시화공단이 있는 안산은 이주노동자가 많은 곳이다. 고용허가제 실시 이후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안산으로 갔다. 여기저기 작은 공장의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안산지역에서 이주노동자운동에 연대하고 있는 한국인 동지와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의 도움을 받았다. 영세한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공장지대를 돌며 각각의 공장이 특유의 냄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빵공장 옆을 지나면 빵냄새가, 피혁공장 옆을 지나면 역한 가죽 냄새가… 으~ 저 지독한 냄새는… ?
“저긴 도금하는 공장이에요. 제가 처음 안산에 와서 일했던 곳이에요” 동행한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가 얘기했다.

고용허가제는 기본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체류와 정착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 ‘단기 로테이션’정책으로 현재 있는 장기체류 이주노동자들을 다 쫓아내고 새로 이주노동자들을 들여와 3년만 일 시켜먹고 또 쫓아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시 전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잔존한 불법체류자의 추방이다. 만나 본 이주노동자들에게 물었다.
“정부가 나가라는데 나갈 거예요? 다른 분들은 나가려고 해요?”
“안 나가요. 안 나갈 것 같아요. 왜 안 나가냐면, 처음에 다 연수생으로 들어온 거 아니에요. 처음부터 월급도 제대로 안 주고, 회사에서 사장은 일만 시키고, 월급 줘도 20만원, 30만원 주고, 처음부터 월급 줬으면 7~8년 동안 일해서 돈 벌어 가지고 돌아가는 거 아니에요… 우리 들어올 때 700만원, 800만원 주고 오는데 3년 동안 일해서 그 돈도 못 벌어요. 이제 와서 어떻게 그냥 나가요? 답답하고 잠이 안 와요, 밤에 잠이 안 와요. 밖에 나가서 울고싶다.”

절대 나갈 수 없다는 이주노동자들을 정부는 고용허가제의 실시 이후 더욱 강력하고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단속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인간사냥’이라고 말한다. 장인의 소개로 한국에 왔다는 한 이주노동자가 자신의 경험을 말해줬다.
“한국에 왔지만 장인어른을 만나지 못했어요. 장인도 불법이라 함부로 다니지 못하니까요. 한국에 온 지 2년 4개월만에 만났어요. 나하고 만난 그 날 집에서 나가자마자 출입국 단속반원들에게 잡혔어요. 몇 명이 와서 끌고 갔는데 2~3일 후 방글라데시로 출국 당했어요. 그리고 방글라데시로 간 지 11일만에 돌아가셨어요. 장인어른은 나도 한국으로 오게 했고 아들도 많은 돈 들여서 한국에 오게 했는데 정부에서 다 나가라고 하니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혼자 잡혀서 쫓겨나니까 더 맘고생이 심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돌아가신 것 같아요.”

또 한 명의 이주노동자는 화를 냈다.
“왜 우리한테 이러는 거예요? 우리가 뭘 잘못했어요? 한국사람들하고 한국한테 우리가 해준 건 하나도 없어요? 우리가 도둑질했어요? 우리 요즘에 사는 건 인간이 아니에요. 원숭이하고 코끼리 같아요. 짐승이에요. 하루종일 공장에서 일하고, 일 끝나면 계속 기숙사에서 숨어있어요. 주말에도 기숙사에서 나가지도 못해요. 왜 우리한테 이러는 거예요?”
나에게 화를 내는 건 아닌 것 같았지만 얘기를 듣던 난, 죄송하다고 말했다.

#3. 희망을 빼앗을 한국, 희망을 빼앗은 일터

그렇다면 왜 노동자들은 이주하는가? 고용허가제가 실시되면 노동자들의 이주를 정부의 뜻대로 통제하거나 막을 수 있는가? 소위 세계화로 인해 제 3세계의 노동자들의 임금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즉, 초국적 자본들이 침투하면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계속 축소되고 있으며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은 더 이상 그것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많은 노동력이 남아돌지만, 제3세계 국가의 도시에서는 이것을 모두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국경을 넘어 이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이주는 생존을 위한 탈출이고, 생존을 위해 탈출하는 이들에게 한국은 생존을 위한 희망이다. 이 희망의 나라에서 8년을 보냈던 동두천의 한 이주노동자가 얘기했다.
“한국은 우리한테 해준 거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 희망을 다 뺏어갔어요. 우리한테 해준 거 없어요.”

에필로그

이주노동자들이 명동성당에서 천막을 치고 투쟁을 한지 이제 300일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그들의 목소리엔 도통 관심도 없고 주말마다 구원을 찾는 이들의 무관심한 발길만이 천막 옆을 지날 뿐이다.
매일 오후 6시면 명동성당 첨탑에서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첨탑의 종이 울릴 때면 몇몇 신도들은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올리곤 한다.
어느 지하철역에 지하철이 들어오면 경적소리가 들린다. 지하철의 경적소리가 들릴 때면 고개를 숙이고 선로쪽으로 걸어간 몇몇의 이주노동자가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언제 울려 퍼질 것인가?
몇 년 몇 월 몇 시에 울려 퍼질 것인가?
언제 사람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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