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1월/특집1] 노동법 개악안, 무엇이 문제인가

일터기사

[특집1]

노동법 개악안, 무엇이 문제인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지현

1.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맞선 우리의 투쟁들

정부의 9월 10일 파견법 및 기간제 고용 관련한 법안 개악 발표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난 9월 16일 비정규직노조 대표자들은 비정규직 공청회 이후 열린우리당 당사를 점거했고, 9월 21일 오후 1시를 기점으로 하여 각 지역의 일반노조/비정규노조 동지들이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함께 열린우리당 시도지부당 점거 투쟁에 들어갔다. 충남 아산, 전북, 부산, 경남지역에서 점거농성이 진행되고 있고 광주, 충북, 전남, 경기, 대구, 대전지역에선 1인 시위 및 집회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 날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는 4시간 부분 총파업이 아닌 비정규 개악안의 국회 상임위 상정시 즉각 전면 파업에 들어갈 것을 결의했다.

그리고 10월 10일 대학로에서는 양대노총 조합원 1만명 정도의 참가로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 철회와 권리보장 입법 쟁취를 위한 양대 노총 전국노동자대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노동법 개악안에 대해 반대하고 하반기 총파업투쟁에 매진할 것을 결의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지금은 각 단위에서 총파업 찬반투표와 비정규 노동법 개악 저지와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을 위한 ‘비정규노동자 권리선언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2. 자본과 정권의 공세적 입장에 대한 진단

현재 정부는 단호한 입장이다. 이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입법안을 내민 초반에는 이번 회기가 아니면 다음 회기에라도 연기하여 통과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현재는 문제가 되는 법 조항 일부를 교묘히 수정하여 예고한 입법안과 별반 다르지 않게 통과시킬 의향이 짙다.

자본측의 반응도 만만치 않다. 전경련은 “파견근로자 휴직기간 신설은 기업의 인력운용 효율성 제고를 위해 파견근로자를 도입하겠다는 취지와 상반된다”면서 “파견근로자에게 휴직을 줄 수 있다면 오히려 파견근로제 자체가 위축될 것”이라며 파견사용기간 제한에 따른 3개월 휴지기간을 둔 조항을 두고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대한상공회의소는 파견근로제를 모든 업종으로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세부 사항에 있어서는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파견근로제 해당 업종을 확대하는 것은 국제적인 추세에 맞는 정책방향”이라며 좋아하면서, 다만 “파견기간을 3년으로 늘렸다고 하지만 이는 기업들에게 충분한 기간은 아니며, 휴지기를 둔 것도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파견근로제 도입의 당초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망발을 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년실업을 위해서도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비정규직에 대한 일자리 확대로 연결돼 청년층이 보다 많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자본측은 더욱 더 노동을 유연하게 쓰지 못해서 안달이다. 파견노동자를 3년 쓰고, 3개월의 휴지기간을 두면 어차피 3개월 동안에도 계약직 등으로 노동자를 고용할 심산이 큰 마당에, 이것이 파견제 도입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니… 99칸 짜리 집 가진 놈이 한 칸 남은 방 달라고 떼쓰는 것과 뭐가 다른지 알 수가 없다.

3. 기간제/파견제 관련 개악안이 현장에 미칠 영향

이번 법안의 핵심은 기간제 고용을 3년으로 늘리고, 파견법을 전 업종으로 확대하여 전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기간제 고용과 관련하여 사용자는 근로계약기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지만, 반대로 노동자는 정해진 근로계약기간 중에 퇴직의 자유가 제한된다. 결국 비정규직 사용을 통한 사용자의 편의를 극대화시키는 것으로서 사용자는 재계약 절차를 통해 선별적으로 고용하거나 해고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파견제의 경우 파견허용업무를 현행 26개 업무에서 전 업종으로 전면 자유화하고, 파견허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파견기간 초과시 직접고용간주조항을 사용사업주의 의무조항으로 약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현재도 현장에서는 불법 파견이 만연한데 결국 사실상 파견 허용업무의 완전 자유화가 자행되어 3년마다의 주기적 해고, 중간착취가 만연될 것이다.

(1) 노동자의 위계화가 심각해진다.

이번 법안의 가장 심각한 우려는 다름 아닌 노동자 내부의 위계화이다. 노동부에서는 차별금지조항을 만들었기 때문에 기업들이 함부로 비정규직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사기를 친다. 말 그대로 사기다. 노동부 비정규대책과 과장이라는 사람도 언론에 대고 이에 대해 아주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래놓고서 혹시 자신들의 말을 못 알아들었을 기업주가 있을까 싶어 친절하게 ‘차별금지 조항’을 피해가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즉,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금지는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과 비교해서 차별을 하지 말라는 것이므로 정규직 업무와 비정규직 업무를 구분하면 차별금지에 걸릴 일이 없다고 말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지난 3월 발표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대책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대책의 3만명 정규직화 뒤에 숨어있는 내용은 노동자들을 업무별로 구분해서 고용형태를 나누는 것이다. “정규직-장기계약직-단기계약직-아르바이트-파견-용역” 등으로 업무에 따라 노동자들을 나누고 각각마다 위계를 두어서 노동자들을 자발적으로 경쟁시키는 것이다. 말이 이들을 정규직화한다는 것이지 정규직이 되려면 시험 등의 각종 경쟁 수단을 내놓고 있는 것이 정부의 비정규대책의 실제 모습이다.

금속에서도 ‘모듈화’를 한다면서 전환배치를 통해 핵심공정에는 정규직을 쓰고 다른 공정은 모두 외주화하거나 용역화한다. 용역화한 곳에서도 일용직과 정규직, 계약직을 나눠서 쓴다. 이렇게 노동자들을 위계화하고 경쟁시키는 것은 자본의 구조조정에 전혀 어긋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더 촉진하며 노동자들은 갈기갈기 찢어진다. 이렇게 노동자들을 위계화하는 것은 비정규직을 더욱 확산했을 경우 자본의 통제력에서 벗어날 것을 염려하여 노동자들을 경쟁시키고 한 칸이라도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자본에 충성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 저임금으로 부려먹는 이유는 이렇게 경쟁하게 만드는 요인을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2) 노동기본권의 박탈이다.

이번 법안은 노동자계급 전체의 노동기본권을 박탈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다. 파견법이 전면 합법화되면 사실상의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는 파견사용주는 마음대로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고 노동자들을 임의로 해고할 것이다. 파견업체와의 계약만 쉽게 종료시키면 그만이 된다.

또한 계약직 노동자들에 대한 계약기간을 자본 마음대로 정할 수 있으므로 마음에 들지 않는 노동자들은 짤라버릴 것이다. 주기적 해고 또는 주기적인 계약의 변경 때문에 노동자들은 사용주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게 되고, 설령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투쟁하게 되어도 각종 부당노동행위에 노출된다. 지금도 건설일용노조의 투쟁에서 보듯이 원청을 대상으로 하는 단협이 공갈·협박이라고 몰리는 상황에서 합법적 간접고용의 확대와 계약기간의 자유화는 노동자 전체의 노동기본권을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아직 정규직의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비정규직이 확대되면 그만큼 노동조합의 힘은 무력화된다. 정규직으로 남아있더라도 경쟁에서 죽지 않기 위해서는 각종 부당노동행위에도 아무 말 할 수 없고, 노동강도가 엄청나게 늘어나도 이에 대해 아무 말 할 수 없게 되는 말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여기에 비정규직이 안되고 정규직으로 남는다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규직-비정규직 할 것 없이 노동기본권의 무력화가 자행된 것이다.

4. 어떻게 싸울 것인가

(1) 노동법 개악은 끝나지 않았다!

고용을 외부화하고, 고용된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높이는 것은 결국 노동능력이 있으나 일할 수 없는 노동자, 그리고 반실업 상태에 놓인 채 비정규직을 강요당하는 노동자들을 양산하게 된다. 이렇게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양산되는 것이 자본에게는 매우 필요한데, 필요한 시기에 적정한 인력을 공급받고, 언제라도 버릴 수 있으려면 대기 상태에 있는 노동자,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한 노동자들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정규직의 확대는 자본의 노동유연화를 가능하게 만들고, 그 유연화의 결과로 또다시 비정규직이 확산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결국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 된다.

문제는 이번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기업도시를 만든다고 하고, 그 안에서는 자본의 자유를 무제한적으로 주려고 한다. 작년에 통과된 경제자유구역법에서도 그 경계 안의 노동자들에게 노동기본권을 일부 제한하기도 했다. 이제 곧 100만 가까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유사근로자 단결활동 등에 관한 특별법’도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면 이제는 서류 한 장 바꿔서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사업자 등록증을 내게 하면 누구라도 노동자가 아니게 된다. 정리해고 요건 완화나 사용자 대항권을 핵심으로 하는 ‘노사관계 로드맵’은 그나마 남아있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단협을 무력화하여 이후 비정규직이 더 확산되는 것을 도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싸우지 못하면 신자유주의적 노동 유연화는 일반화되고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은 땅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2) 총파업을 결의하자!

이에 맞서려면 노동자 전체의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96-97총파업보다 더 많은 힘을 모아야 저 거대한 자본과 정권의 의도를 깰 수 있다.
우선 총파업을 성사시키려면 이번 개악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할 것 없이 지역과 현장에서 교육하고 선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규직노조들의 실질적인 총파업 결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 법안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을 겨냥한 법안이기 때문이다.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신규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일단 시장에서 한번 퇴출된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만 다시 진입하게 하는 것이 이번 법안의 성격이다.
따라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있을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문제,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노동법 개악에 맞서 들고일어나야 한다. 다시 한 번 96-97총파업을 떠올리며 노동자의 생존이 달린 투쟁을 만들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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