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1월/특집2]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권 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

일터기사

[특집2]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권 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기획실장 김인아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의 이용석 열사가 분신한지 1년이 되었다. 이용석 열사 투쟁과 박일수 열사 투쟁을 힘겹게 진행하는 동안 자본은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한 탐욕을 파견법 개악안으로 드러냈다. 생산력의 증가로 이윤이 감소하고 시장이 축소된 총자본은 자신의 위기를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살 길을 찾아가고 있다. 1998년 정리해고제/변형근로제/파견근로제 도입을 통한 정규직 인력감축을 시작으로 하여 진행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노동의 불안정과 임금 유연화를 기반으로 하여 가속화되고 있다. 그리고 2004년 현재, 자본은 파견법 개악안을 들고 전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엄청난 속도로 확대되는 비정규직의 문제는 이미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건강은, 그리고 건강권 투쟁은 지금 어떠한가? 그리고 어떻게 가야 하는가?

#1. 고용불안과 임금 유연화로 인한 노동강도의 강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가장 일차적인 문제는 자신의 일자리에 대한 ‘불안함’과 대부분 시급, 또는 일급으로 지급되는 ‘저임금 구조’이다. 실제로 경제활동부가인구조사 결과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의 월 임금 총액은 2003년 51%였다. 주당 노동시간은 2003년 정규직이 41.8시간인데 비해 비정규직은 44.1시간으로 3시간 이상이 차이가 나며, 이는 2000년의 47.1 시간 대 47.5 시간에 비해 더 큰 격차를 보이는 것이다. 특히 법정 최고 노동시간인 56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는 정규직(84만명)에 비해 두 배(171만명)가 넘었다.

“일요일도 없다니까. 특근이죠. 일요일 쉬고 싶은데, 회사에서 출근하라니까, 솔직히 한 달 일요일 4번 다 쉬면 짤린다니까요.(Y사 사내하청)”

불안한 고용상태는 시급, 일급 체계를 가진 저임금 구조와 맞물리면서 절대적 노동강도와 상대적 노동강도를 모두 강화시킨다. “적금 같은 것도 들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임금이 불안정하고 일하는 시간만큼 임금이 올라가기 때문에 ‘벌 수 있을 때’ 벌어야만 한다. 한편, 고용계약이나 임금결정에 있어 사업주의 결정이 절대적이므로 ‘짤리지’ 않으려면 요구되는 장시간 고밀도의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청 노동자들의 “현재에서 1%라도 더 하면 다 죽는다”는 절규는 그들의 현실이다.

“저는 한 200정도(이번 달 수입). 요번 달엔 좀 맑았지만 저번 달에는 또 비가 와 갖고… 그렇게 일해서 삼십 일씩 했으면 뭐 떼돈 벌게… 조금 벌면 월 140. 많으면 한 240나오고… (제일 문제는 인제 당장 다음달, 내년, 계획이 안 나오는 게 제일 문제겠네요.) 네. 그래 인제, 모르겠어요. 이게 이 일을 할지 아니면은… 이게 지금 장가도 가야 되는데, 갑갑하죠. 장가도 갈라 하니까, 이젠 또 경기가 안 좋아가지고. 그래갖고 지금 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니까 인제 혼자서 애만 태우는 거지…(X사 사내하청)”

#2. 고위험 작업에의 노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또는 “주로 나간 게 어떤 공정인가요?”와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3D지요”이다. 위험하고, 더럽고, 어려운 일이 비정규직에게 우선 배정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량이 급증하는 시기에 집중적으로 투여된다. 조선업의 경우 수주량에 따라 하청 노동자들이 급증하고, 플랜트 건설 노동자들이 shut-down(공장가동중지)기간 집중적으로 유해물질에 폭로되는 것이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최악의 여건으로 일단 작업을 한다고 보면 돼요. shut-down 관련해서도 정규직 직원들이 작업을 할 수 없는 여건. 굴뚝 안에 이물질을 제거한다거나, 기계 안의 기름 찌꺼기를 제거한다거나, 그 다음에 오래된 파이프, 소위 말해서 뭘 들어낸다거나 기름이 철철 넘치고 독가스가 나오는데 그걸 들어 엎으고 다시 잠그고 씻어 낸다는 것이.”

이러한 작업자체의 성격과 장시간 노동, 증가한 노동밀도가 상호작용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많은 종류의 유해물질에 고농도로 폭로되고 근골격계나 뇌심혈관계 질환과 같은 업무관련성 질환의 위험요인에 집중적으로 노출된다.

#3. ‘비정규직 노동자가 더 건강하다’는 오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제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위험 작업에서, 장시간 동안, 높은 강도로 일할 것을 강요받는 상황이다. 따라서 비정규직의 건강상태가 정규직보다 더 나쁠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몇 가지 연구사례들은 비정규직이 오히려 정규직보다 건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업종의 경우 건강진단 상 일반질병의 유소견율과 유병률이 원청은 10%, 5%를 상회하는 수준이었으나 하청은 6%, 4%로 나타났다. 철도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비정규직의 근골격계 질환 증상 유병율이 정규직에 비해 낮았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해석은 고용의 안정성에 대한 고려를 가지고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직율이 높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장을 옮길 때마다 하게 되어 있는 채용 신체 검사에서 탈락될 가능성이 높다. 조선업의 경우 채용신체검사로 ‘부적격자’를 선발하는 곳이 94.9%에 이르고 있다. ‘노동 예비군’이 넘쳐나는 지금의 노동시장에서 건강하지 않은 노동자는 일할 권리도 없다.

“그, 처음에 **기업 회사 자체에서 신체검사를 집중적으로 했어요. 그 이… 채용을 했을 때 제일 허리를 우선적으로 봤거든요. 그래서 예를 들어 디스크 6번, 7번… 그… 6번, 7번 이상 있다고 한 사람들 다 떨어졌어요. 허리에 부황놓은 자리 있는 사람들도 다 떨어졌어요.”

재해가 아닌 직업병의 경우, 해당 직업에의 근무기간이 발병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근속연수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는 부적합한 것이다. 철도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근골격계 유병률을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연령대별로 분석해 보았을 때 20대의 경우 비정규직 이 정규직에 비해 높은 반면, 30대부터는 정규직 노동자가 더 높았다. 이는 고용형태로 인해 ‘근속’이 불가능하고, 이상이 있을 경우 사전에 노동시장에서 퇴출되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철도 노동자들의 경우 비정규직이 높은 이혼율과 미혼율을 보여 고용형태로 사회적 건강까지 침해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4.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산재 은폐

재해나 질병을 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자발적으로 또는 강제적으로 산재 처리를 하지 않거나 개인치료를 하게 된다. 일단 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해고의 가장 큰 사유가 되는 것이다. 이는 중층의 하도급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경우에 더 심각하다. 원청에서 수주를 하는데 있어 하청 업체의 산재율이 중요한 기준이 되고, 이로 인해 산재를 최소화하는 것이 하청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하청 노동자가 산재를 처리하면은 다른 업체로 옮기기 어렵다, 이런 통념이,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그냥 나온 말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 최소한 중공업에서 세 가지 리스트를 관리한다, 이렇게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있어요. 하나는 블랙리스트이고, 하나는 산재리스트고, 또 하나는 이런 중공업이 아니라 외주협의회에서 얘기하는 전산*** 이라고 하는 세 개의 리스트를 관리하고 있다고 하죠.(X사 사내하청)”

#5. 또 하나의 핵심, 현장 통제력의 부재

올해 초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조는 단식까지 가는 투쟁 속에 매우 힘들게 임단협을 성사시켰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름뿐이었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노동 3권을 드디어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쟁취한 것이다. 이제 일방적인 고용 계약과 해고,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과 개별화된 임금체계, 강요되는 장시간 노동, 높기만 한 노동밀도, 안전장치 하나 없는 아슬아슬한 작업장에 대해 드디어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현대중공업, 건설 등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핵심 간부들은 현장 출입증조차 받을 수 없는 해고자인 경우들이 많다.

노동과 자본의 역관계가 중심을 잃고 고장난 시소처럼 자본에 쏠려 있는 지금, 현장 통제력의 부제는 앞서 기술한 모든 원인을 더욱 강위력한 것으로 만들어 노동자들을 자본가의 말 잘 듣는 ‘로봇’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더욱 무서운 것은 자본이 ‘노동시장 유연화’의 전면적인 확대를 이번 비정규 개악안을 통해 달성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6. 그렇다면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비정규직의 건강권 투쟁을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질문만큼 어려운 질문이 없다. 기본적인 노동 3권조차 보장되어 있지 않은 현실에서 ‘건강권’이라는 것은 매우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건강권’의 문제가 비단 ‘치료’와 ‘보상’의 문제가 아닌 ‘노동권’의 문제임을 상기할 때 그 답은 오히려 쉬운 것이 될 수 있다.

문제를 드러내고 ‘은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불건강하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되기 때문에 아픈 몸을 부여잡고 살인적 노동강도에 시달리다가 죽어나가는 지금의 현실을 전면화시켜야 한다.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이유가 ‘고용의 불안정’과 ‘저임금’ 속에서 혹사당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가지고 ‘조직’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현상을 기반으로 정기검진과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개최를 요구하고 명예 산업안전감독관을 선임하게 하여 현장 활동력의 단초를 확보하는 투쟁을 전개할 수 있지 않을까?

또 하나 가능한 것은 현재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유해요인조사가 해당 작업자나 노동자대표를 포함하여 진행하게 되어 있는 만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작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비정규직을 포함하게 해야 한다. 이런 현장활동력의 기반 하에 작업량이나 노동시간 같은 노동강도의 문제와 안전조치, 산재 은폐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노동자들을 직접 조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물론 이런 활동에는 정규직의 적극적인 연대가 필요함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예전의 활동력을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우기 위한 ‘바닥’부터의 현장활동의 전통을 복원해야 한다. 자본의 전 노동자의 비정규직화가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노동자 내부의 ‘갈라치기’는 노동과 자본간의 전선을 노동자 내부로 돌리는 매우 위험한 행위이다. 일시적으로 들어온 비정규직으로 인해 강화된 노동강도가 정규직에게로 전이되며 노동자 내부의 경쟁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지금의 구조에 대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올해 하반기 예정되어 있는 비정규 개악안에 대한 총파업 투쟁을 정규직/비정규직을 떠나 전면적으로 조직하고 강력한 총파업을 성사시켜야 한다. 그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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