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2월] 바느질이 세상을 바꾼다

일터기사

[세상사는 이야기]

바느질이 세상을 바꾼다
군산 노동자의 집 여은정

나는 요새 밤마다 바느질을 하고 있다. 바로 ‘대안 생리대’를 만드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한참 대안생리대를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있던 때는 손이 많이 갈 것 같아 정작 시들했던 내가 이렇게 재미를 붙이게 된 건 함께 살게 된 후배 덕이다.

나는 보기와 달리 뭔가를 꼼꼼하게 만들거나 진득하게 하지 못한다. 하고 싶은 것은 많았으나 끝까지 해본 것이 거의 없다. 노래패에서 활동한답시고 신디도 배우다 말고,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을 읽고 감동 받아서 암벽도 한답시고 한 6개월 하다 말고, 발마사지 배워서 아픈 동지들에게 베푼다고 한참 책보고 실습하다 말고, 나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서 푹 빠졌던 명상도 하다 말고… 뭐가 이렇게나 많은지 참~

그래도 항상 처음에는 신나고 즐겁다. 뭔가를 배우는 그 순간만큼은 ‘이것이 전부다’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어느 순간에 보니 신디에도, 책에도, 자일(등산할 때 쓰는 로프)에도, 방석에도 먼지가 수북하다. 사람들을 만나서 모임을 하고 술을 먹고 밤늦게나 들어오는데 언제 명상을 하고 언제 발을 만지고 언제 벽을 타겠냐 라고 스스로 위안을 해보지만 이유가 그게 아니라는 걸 내가 더 잘 안다. 나의 일상과 동떨어진 취미는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했기에 시간에 쫓겨 일에 쫓겨 결국에는 나에게도 외면당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이 바느질은 상당히 오래도록 나와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아주 필요한 물건이라는 점과 후배랑 도란도란 얘기 나누면서 함께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이것이 하나의 운동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는 이 대안생리대로 지역 주민을 조직하자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있다. 먼저, 아는 언니들에게 하나씩 선물한다. 그러면서 기존 생리대의 문제점을 설명하고(화학약품 처리로 인해 인체에 해롭고, 가격이 비싸고, 환경을 파괴한다는 것 등등) 이 생리대가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설파한다. 그리고는 생리대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함께 만드는 자리를 수시로 만든다. 생각보다 대안생리대 만드는 법은 어렵지 않다. 복잡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대안생리대 만들기는 바느질도 쉽고 다 만들고 나서 느끼는 뿌듯함도 크다. 또 사용해 보니 일반 생리대보다 느낌이 훨씬 좋다. 물론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좀 있긴 하지만 직접 만들어 쓰니 그거야 만들 때마다 고치면 된다.

자본의 단단한 고리를 끊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팍팍 드는 밤에, 우리는 ‘하하하 즐거운 운동’을 해보기로 했다. 전국의 여성과 남성이여. 바느질로 세상을 바꾸자. 내 생리대는 내가 만들고, 여유 되면 친구 것도 만들어 선물하고, 비싸고 몸에도 해로운 일반 생리대 쓰지도 말고 사지도 맙시다.

하하하… 갑자기 우리 운동이 즐거워지는 것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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