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월/그것이알고싶다] 노동자에게 자동화란…

일터기사

[그것이 알고싶다]

노동자에게 자동화란…
-자동화에 따른 노동과정의 변화

메사추세스 로웰 주립대학 작업환경과 건설노동보건센터 연구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해외연구원 탁상우

자동화는 항상 노동자에게 손해일까? 여기 재미있는 예가 있다. 캐나다의 한 보험회사가 영업직원들에게 업무자동화의 방편으로 최고급 노트북 하나씩을 나누어주고 보험 판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간단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서류작업을 즉석에서 마치고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서류처리가 가능하게끔 했던 것이다. 결과는 회사측의 예상과 달랐다. 판매실적이 여전히 제자리였던 것이다. 수월해진 서류작업과 그로 인해 생긴 잉여시간이 회사의 판매실적으로 이전되지 않고, 노동자들의 여유시간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이는 문제의 핵심이 바로 작업에 대한 통제권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있었기 때문이다.

작업의 통제권과 작업기술의 이전

예를 들어, 과거 방식대로 작업자가 선반을 조작해 생산품을 가공해 내면, 이때의 작업 통제권은 상당부분 작업자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웬만큼 작업속도며 휴식시간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 선반에 자동기계장치를 달고 생산성의 증가를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자동기계장치의 설치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량물을 든다거나, 초고열의 물체를 다루어야 하는 작업의 경우, 로봇 팔과 같은 자동설비는 오히려 작업자의 안전과 건강에 이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작업기술의 이전과 작업의 통제권 확보이다. 우선, 자동기계설비의 설계자가 이 작업에 요구되는 정교한 기술들을 알지 못한다면, 자동화의 설계수준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자동설비가 온전히 작업자에 의해서만 작동이 가능하다면, 작업자는 여전히 그의 기술을 이용해 부품을 생산할 것이고, 작업에 대한 통제권은 아직도 상당히 작업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작업기술의 이전과 작업의 통제권 확보를 동시에 추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최근 십 수년간 진행되고 있는 자동화의 본질인 것이다. 당연히 이는 자본가들이 말하는 투자비 절감과 직결된다. 작업기술이 자동기계로 이전됨에 따라, 비싼 숙련공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지게 되고, 생산설비를 통제하는 컴퓨터를 이용해 사무실에서 공장을 감시하며 24시간 생산을 가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자동화과정은 흔히 작업장 감시설비의 도입과 함께 이루어진다. 요즘은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생산기계와 작업장 감시설비가 결합된 형태의 자동설비가 주를 이룬다고 한다. 작업장 감시 설비는 간단한 CCTV 뿐만 아니라 생산에 투여되는 작업자의 모든 동작을 점검하고 기록할 수 있는 대부분의 통제장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개인의 사생활권 침해’라는 측면에서 작업장 감시 설비를 바라보는 것은, 핵심을 놓친 접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업자가 누른 버튼의 횟수도 일정기간동안 누적되면 분석이 되고, 이 결과가 후에 작업 통제의 구실들로 사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업의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자본가들의 노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의 한 광산회사는 광부들에게 무선송신 카드(일명 RF카드)를 달도록 하고, 작업에 투여되는 대부분의 장비에도 이 카드를 부착하게 한 뒤, GPS라는 위치추적장치를 이용해 이 모든 움직임들을 감시·기록·분석하고 있다고 한다. 도입 당시 이들의 명목상의 기능은, 광산작업의 안전을 위한 감시체계의 구축이었다고 한다.
자동화의 문제점을 논할 때, 작업기술의 이전과 작업에 대한 통제권은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과거 한 신문사 노동조합의 예를 들여다보자.

뉴욕 타임즈 신문사의 식자공 노동조합의 경험

3,40년 전만 해도 하나의 신문이 윤전기를 통해 인쇄되어 나오기 위해서는 금속 활자핀들을 맞추어 넣은 인쇄 원판이 미리 제작되어야만 했었다. 이 인쇄 원판을 만들던 노동자들을 식자공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의 작업은 워낙 짧은 시간 안에 정해진 분량의 활자핀들을 맞추어 넣어야 하는 것이어서 노동자 대부분이 정교한 기술을 보유한 숙련공들이었다. 이들은 관리자가 작업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모두 작업을 멈추고 관리자를 그저 쳐다보며 태업을 할 정도로 강한 노조였다고 한다. 이처럼 시각을 다투는 신문사에서 단 몇 분의 작업 지체는 곧 연쇄적인 지연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아는 이 노동조합도 회사의 작업장 통제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저항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활자핀들이 필요 없는 인쇄기가 개발되었다. 뉴욕 타임즈 신문사는 이 기계들을 도입하려 하였고, 식자공 노동조합은 결사적으로 저항하였다. 하지만 결국, 자본은 치밀한 계획 하에 기계도입을 추진하고 대부분의 식자공 노동자들을 해고하였다. 작업기술이 자동기계로 이전되며, 노동자들은 작업에 대한 모든 통제권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결과는 과연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다음 호에는 단위 노동조합의 수준에서 취할 수 있는 대응들을 조심스럽게 제안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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