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월/기획] 자본의 근골격계 대응, 무엇을 노리고 있나?

일터기사

[기획]

자본의 근골격계 대응, 무엇을 노리고 있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기획실장 김인아

들어가며

최근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가 만든 ‘근골격계 직업병’에 대해 모든 이들, 특히 자본의 대응은 2003년에 난데없이 유난스러웠다. ‘이윤’을 포기할 정도의 상황이라 ‘문을 닫아야 한다’며 국가적 차원의 대책강구에 게거품을 문다. 경총산하에 전략 팀을 구성하여 전면적인 대응책 마련에 부산을 떨고 있다.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직업병’에 대한 요구와 행동은 신자유주의 세계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에 걸맞지 않는 요구이며, 집단요양투쟁 등과 같은 투쟁만을 일삼아서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며 호들갑이다. 총자본은 소위 ‘유연화 전략’과 ‘구조조정’이 야기한 노동-자본간 ‘이윤’과 ‘삶 자체’를 둘러싼 위기의 본질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임금노예’로 살기를 거부하는 구체적인 노동자들의 대중행동이 2003년에 물꼬를 트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골병과 죽음을 야기하는 ‘근골격계 직업병’에 대한 위기의식을 통해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아니, 아픈 것을 치료코자 하는, 나아가 아픈 원인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실천이 바로,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요양투쟁이었다. 2003년 근골격계 직업병에 대한 투쟁은 자본과 정권의 전면적인 대응을 촉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전체차원에서 보면 헌신적이고 치열한 실천에도 불구하고 실천주체들의 목표와 행위는 자본과 정권의 대응에 비해 일천하기 그지없다.

이제 자본은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그들의 막강한 돈과 정보를 바탕으로 오히려 근골격계 직업병의 문제를 자본의 손아귀에 두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한편, 철저하게 그 본질을 역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들이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들의 전술에 대한 노동자들의 철저한 분석과 대응이 절실히 필요하다. 2004년의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은 2003년의 그것과는 분명 궤적을 달리할 것이다. 자본은 이미 준비가 끝났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2003년 근골격계 투쟁을 진행했던, 그리고 현재도 진행 중인 각 단사에서의 자본의 대응은 아주 다양한 변이를 보인다. 이는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 자본의 성격에 따라, 또는 구조조정의 완성정도에 따라 복합적인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먼저 대공장을 중심으로는 노동자 주도의 사업을 극렬하게 거부하면서 노사공동프로그램으로의 유도를 꾀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주도권을 확장하고자 한다. 실제로 노동조합이 의뢰한 연구진들의 현장 조사와 교육 진행을 물리력으로 막기도 하고 검진에 참가한 조합원들을 회유하고 실제 협상과정에 나서지 않고 현장 간부들을 탄압하는 사례들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적극적인 탄압을 하던 사업장들도 노사합의로 근골격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는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재활 센터를 짓고 의사 및 물리치료사 등의 전문인력을 확보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 다른 하나의 형태는 협상에 응하지 않고 근골격계 직업병 문제 이후 노조탄압을 하는 사례이다. 이는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그 양상이 더욱 적극적인 형태를 취하게 된다. 협상에 응하지 않은 상태로 손배 가압류를 때리거나 노동조합의 투쟁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고소 고발을 한다든지 노동조합의 자보에 시커먼 락카칠을 하고 사무실을 폐쇄하는 등의 적극적인 탄압을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 단사와의 흐름과 조응하며 자본 전체의 조직적이고 치밀한 대응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자본의 조직적 대응은 근골격계 직업병의 문제를 자본의 통제하게 두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는 노동보건 전반에 대한 개입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2. 총자본의 대응

2003년 상반기까지 개별적인 대응으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던 자본은, 5월초 경총 이사회 산하 조직인 ‘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직적인 대응에 돌입했다. 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자동차, 조선업종의 대자본 15개 업체 부사장으로 구성되어, 사업장 안전문제와 관련한 산재예방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경총은 이를 위해 위원회 밑에 자문위원회, 실무위원회, 현장대책반, 업종별·지역별 협의회를 두고 산업안전에 대한 주요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또한 연말께 산재사고가 빈번한 업종과 노사분규가 잦은 사업장으로 기업안전보건위원회 조직을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한편 경총은 산업안전 현안에 대한 정책사업과 조사연구, 홍보, 정보수집 및 교류 등 각종 지원업무 강화를 위해 경제조사본부 내에 ‘안전보건팀’을 신설하고 실무인력을 다수 확보하는 등 일부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물론 이러한 조직적 대응의 핵심에 있는 것이 근골격계 직업병의 문제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런 기업안전보건위원회의 활동을 살펴보면, 다양한 범주의 내용들을 내부 결의를 통하여 결정하거나 규제개혁위원회에 건의하였으며 일부 수용된 항목이 있고, 이는 근골격계 직업병 관련 보건규칙의 실제적인 내용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초기의 근골격계 직업병 예방관리와 관련된 부분에서 노동자 대표가 요청할 수 있도록 되어 있던 유해요인조사에 대한 항목을 삭제하고 근골격계 직업병의 범위를 협소화하는 등의 성과를 내었다. 또한 요양기간의 설정과 질병의 심각성에 대한 기준 마련, 근무 중 치료 및 휴업치료에 대한 명령을 요구하였으며 심지어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단순반복작업 또는 인체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작업에 의한 건강장해’를 삭제하여 법의 폐지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한편 이러한 ‘급한 불끄기’ 식의 초기 대응은 이후 법·제도적 측면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제기로 발전하게 된다. 가장 초기의 의결 사항은 산재노동자들의 임금체계를 개선하여 일부사업장에서 정상적인 노동을 하는 경우에 비해 많은 급여를 받게 됨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서를 제출한 후 7일 이내에 결정·통보해야 하는 것을 ‘최소 30일 이내’로 할 것을 건의하였으며, 요양 중인 환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할 것을 요청하였다. 또한 사업주의 재심의청구자 자격 확보를 주장하였으며 산재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운운하면서 요양기간을 질병명에 따라 정하자는 얼토당토 하지 않은 얘기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자본의 대응은, 현장에서는 노사합의프로그램의 운영을 주창하면서 실제적인 산재 요양자들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주도권 장악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총 자본의 흐름은 과연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것일까?

3. 자본이 노리는 것

자본이 노사합의프로그램을 주창하며 가장 대표적인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은 휘황찬란한 사내 재활센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물리치료 및 운동치료 뿐만이 아니라, 의학적 치료까지 가능한 전문가들을 사내에 배치하고 근골격계 직업병 관련한 증상(더 나아가 작업관련성 질환 전부에 대한 증상)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을 일차적으로 사내 관리 시스템에서 평가하고 일정정도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공적인 영역에서의 ‘제한’을 가져올 수 있는 ‘산업재해’를 은폐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근골격계 직업병을 비롯한 뇌-심혈관계 질환과 정신질환 같은 작업관련성 질환은 의학적 특징상 단기간에 치료되거나 관리가 쉬운 질병이 아니다. 즉 이러한 질병에 걸린 노동자들은 반복적으로 증상이 완화·악화되며, 관리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의학적 개입과 실제적인 노동조건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는 질환이다. 즉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작업량의 변화를 줄이는 한편, 노동자들이 현장에서의 자율성을 발휘해야 실제로 ‘관리’가 가능한 질환이다. 따라서 이러한 질환의 확산은 상당한 노동생산성의 감소를 가져올 수밖에 없으며, 이에 대한 비용 부담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자본은 자신들이 조절할 수 있는 수준의 ‘환자’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노동자들이 개인의 의지에 의해 자율적으로 ‘산재’를 신청하고 ‘요양’ 및 ‘재요양’을 반복하는 시스템에서는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일차적으로 ‘산재’를 자본의 이해에 따라 ‘관리’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이는 현장에서의 ‘통제력’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작업관련성 질환이라는 것은 소음성 난청이나 진폐증, 유기용제·중금속 중독과는 달리 원인이 명확하지 않으며 개인적, (협의의)인간공학적, 사회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현 상황에서 개입이 손쉬운 것은 인간공학적인 작업환경의 개선이다. 작업대의 높이를 낮추고 의자를 놓아주고 돈이 조금 많다면 공정을 개선하는 정도의 것이다. 개인적인 요인들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으며, 사회심리적 요인과 관련된 직무스트레스와 노동조직에 대한 것은 그 개선을 한다는 것이 자본의 ‘생산성’에 치명타를 주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의 외국의 흐름을 볼 때 이러한 사회심리적 요인의 중요성은 (광의의) 인간공학 영역에서도 강조되고 있으며 생산방식의 변화들이 이러한 작업관련성 질환의 증가를 가져온다는 보고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조건에 대한 접근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주관적’인 판단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실제 성과를 얻어내기 위한 ‘투쟁’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힘’이 중요하다. 노동자들이 ‘주관적’으로 ‘힘들다’고 느끼는 것이 근거가 되어 자본에 요구하고 쟁취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자본은 느끼고 있는 것이며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주관적’인 요구를 희석시키기 위한 사내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실제 산재요양자들에 대한 ‘관리’와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4. 노동자들의 과제

이제 자본의 속내는 명확하다. 노사협조를 외치며 마치 노동자들을 생각하는 양 거액의 돈을 들여 번쩍이게 지어주는 재활센터라는 것은 노동자들을 옥좨는 비싸고 보기 좋은 재갈일 뿐이다. 재활센터가 건립되고 그 안에서 아무리 활발한 치료가 이루어진다고 하여도 이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자본의 ‘이해’에 의해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에 불과하다. 근골격계 직업병 문제를 비롯한 작업관련성 질환에 대한 대응은 노동자들의 ‘현장 통제력’이라는 관점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비싼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좋다. 다만 그 시스템에 노동자들의 ‘참여’라는 것이 건강의 문제와 관련되어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에 실제적으로 ‘참여’할 수 있지 않은 이상, 이는 ‘참여’를 가장한 ‘구속’일 뿐이다.

따라서 현재 대자본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노사합동프로그램에 대한 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주도권을 자본에 넘겨준다면 집단요양투쟁으로 일구어낸 우리의 성과는 자본의 통제를 강화해주는 부메랑이 되어 노동자들의 목을 칠 것이다. 아무리 착하고 합리적인 자본일지라도 ‘자본’은 ‘자본’일 뿐이다. 그들이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간에(물론 의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겠지만) 자본의 ‘합리적’으로 보이는 대응은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마약에 불과하다.

이제 우리는 판단해야 한다. 마약에 취하여 자신의 ‘건강’과 ‘생존권’을 자본에게 넘길 것인지, 마약을 거부하고 ‘건강’과 ‘생존권’을 쟁취해야 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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