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월/되돌아보기]’사업주확인’, 없어져야 사회보험이다

일터기사

[되돌아보기]

‘사업주확인’, 없어져야 사회보험이다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intro)
섬유공장에서 일하던 강00 씨는 높은 곳에 있던 실박스를 내리다가 허리를 다쳐 수술을 하게 됐다. 회사에 산재처리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회사는 동료들이 써준 진술서도 회수해갔다. 수술 후 몇 개월이 지나고, 회사의 협조가 없어도 본인이 산재신청을 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진정서를 써서 산재요양신청을 했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근로복지공단은 답이 없다. (2000년 7월)

전기공인 21살의 원00 씨는 회사의 요구로 프레스일을 하다가 왼손 둘째손가락을 잘렸다. 원씨는 산재치료를 하면서, 휴업급여를 받기 위해 회사에 도장을 받으러 갔다. 회사는 도장을 찍어주는 조건으로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요구했다. 합의서를 거부하자 회사도 도장 찍기를 거부했고, 휴업급여를 받지 못해 경제적 곤란을 겪던 그는 한 달이 지나서야 본인이 직접 사유를 써서 휴업급여를 신청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2000년 6월)

산재보험의 벽 ‘사업주확인’

시간이 좀 지난 기록들이나, 지금도 여전히 산재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일이기에 여기에 옮겨 보았다. 그나마 위 노동자들은 상담단체를 만나 운이 좋은 경우에 속한다.

2004년,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고 희망과 전망을 얘기하고 싶은 지금, 낡은 이야기를 들추어내는 것만 같아 멋쩍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을 바로 봐야 헤쳐나갈 방안도 나오는 것. 오래지 않은 기억을 불러내어, 지금 할 일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것도 의미 있는 새해맞이이겠다.

99년 산재노동자 이상관이 자살했을 당시, 산재보험의 제도적, 절차적 불합리와 공급자 편의적인 행정관행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문제제기를 하는 방법으로 산재를 입은 노동자가 산재보상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부당한 압력과 불이익을 유형별로 정리하여 발표하고, 이에 대해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였다.
99년 당시, 산재추방운동연합과 민주노총은<산재노동자불이익신고센터>를 만든지 몇 달만에 전국각지로부터 159건의 불이익사례를 모았고, 2000년 대형병원이 산재노동자를 기피하는 것을 사회문제화하면서 산재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산재보험 절차상의 불이익을 모아 발표하게 되었다. 이 때 ‘공단이 회사와 합의종용, 사업주 확인거부로 인한 치료와 산재인정의 늦어짐’ 등이 주요 사례로 분류되었다. 위 두 노동자의 이야기도 그 때 모아진 사례 중 하나이다.

99년, 2000년 당시 정부는 산재노동자의 불이익이 그처럼 심하다면 ‘사업주확인’란을 없앨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현재도 진정서만 첨부하면 산재신청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사업주확인’이라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는 절차다. 산재보상법으로 따지더라도 산재보상의 ‘필요요건’이 아니다. 산재치료와 보상을 받으려면 서식에 회사주소와 이름을 적게 되어 있으니, 필요하다면 보험운영기관이 확인하면 될 일이다. 산재요양신청서(와 각종 급여신청서)에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노동자를 골려먹는 ‘사업주확인’란은 어떻게 생겼으며, 왜 없어지지 않는 걸까.

산재 은폐와 노동자 길들이기를 위한 국가와 자본의 장난일 뿐

‘사업주확인’란이 언제부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확인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64년, 박정희 정권이 산재보험을 도입할 당시, 일본의 노재보험 제도를 그대로 베껴왔고, 그 서식에 ‘사업주확인’란도 그대로 따라오지 않았겠는가 추측해본다. 현재, 일본의 노재보험 양식에도 ‘사업주확인’란이 있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니 이 추측에 신빙성이 더한다. ‘사업주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의 원리가 아닌 사업주책임주의의 논리로 도입되었고, 그 출발은 500인 이상 기업부터였다. 그 후 200인, 100인, 50인, 5인 이상 기업으로 확대되기까지 20여년 동안 ‘사업주확인’ 양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2000년 1인 이상 기업으로 확대되면서,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의 성격을 명확히 했다고 볼 수 있으나, ‘사업주확인’ 요구는 여전히 살아남아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진입을 ‘걸러내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앞의 두 노동자 얘기로 돌아가보자. 회사의 도장을 받지 못하면 산재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알고 있는 노동자 앞에서, 사장은 산재보상 결정 권한을 쥐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면서, 산재발생 사실을 은폐해보려고 시도하며, 노동자 길들이기에 이용한다.
산재보상은 개별노동자와 보험운영기관의 관계만으로 가능하다는 걸 노동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보험운영기관 역시 이러한 운영방식을 최대한 구현해야 한다. ‘사업주확인’의 덫에 걸려 산재보상 권리를 포기당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노동조합의 울타리가 없는 노동자들이 전체노동자의 90%에 이른다. 개별화되어 있는 노동자들은 누구인가. 비정규직노동자, 하청노동자, 일용노동자, 영세사업장노동자, 이주노동자들이다. 여성노동자의 70%는 비정규직이다.
노동자의 원초적 권리의 하나인 산재보상은 산재, 직업병으로 인한 실업과 빈곤의 위험에 대한 일차적 방어막이다.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기업내 복지가 미미할수록, 개인의 능력으로 위험에 대비할 안전판을 저축하지 못하는 노동자일수록 사회보험의 일차적 보호역할이 소중하다.
이들에게 4대 사회보험이 온전히 적용되고, 권리구현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조직노동자가 싸워야 하고, 요구해야 한다. 지난 2-3년 간 우리가 외쳐온 산재보험 개혁요구의 핵심은 개별노동자의 산재보험에 대한 접근권을 높이려는 것이며, 이는 연대와 평등의 노조운동 정신에 기반하여 요구되는 투쟁과제의 하나이다. 산재보상 권한을 손에 쥐고 노동자 길들이기에 재미를 붙인 국가와 자본의 분탕질에 개별노동자가 희생되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하지 말자.

산재보험료가 누구의 돈인가. 노동자의 돈이다. 현금 몇 백 억쯤이야 자기들 주머니에서 나온 것처럼 정권재창출에 투자하는 통큰 자본가들에게 산재보험료 푼돈에 생색내지 말라고 이야기해주자. 산재보상 받는다고 가족생계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대대손손 먹고 살 돈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화상 입은 흉터를 수술하려면 빚을 지는 건 기본이고, 정신질환 치료를 받으려 해도 내 돈을 들이지 않으면 치료를 포기해야 한다.

2004년, 우리가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이 노동자민중의 고통 속에, 희망 속에 묻어 나온다. 산재보험개혁운동 역시, 지난 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아울러서 시급히 나서야 할 일 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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