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월] 일터에 남은 투쟁의 흔적

일터기사

[일터이야기]

일터에 남은 투쟁의 흔적
– 호텔리베라노동조합 유성지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위원 허 경

(intro)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명동 444-5에 있는 주식회사 신안레져 호텔리베라 노동조합 유성지부의 조합원들이 일하는 일터에 갔다.
호텔노동자들의 일터인 이 특급호텔은 여러 개의 작은 일터들로 이루어졌다. 일식당, 양식당, 중식당, 객실, 연회장, 제과주방, 커피숖, 사우나, 전기실, 린넨(세탁실), 보일러실 등등 이것들을 업장이라 불렀고 많은 업장들을 모두 둘러보았던 이번 ‘일터탐방’은 조합의 김원범 사무장님의 친절한 안내로 이루어졌다.
철야농성 226일, 파업 114일 만인 지난 11월 27일에 사측과 합의한 호텔리베라 노동조합 유성지부, 장기투쟁사업장이었던 이곳에서 첫눈에 싸움터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터를 돌아보며 일터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을 만나보며 그 흔적들을 찾게 된다.

“수고하십니다! 취재하러 왔습니다. 자, 자, 협조 부탁합니다~~!”
사무장님의 크고 밝은 목소리가 울린 첫 번째 업장은 호텔건물의 14층이다. 처음 들른 일식당의 조합원들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특히 사무장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조합원들은 모두 밝은 얼굴이었고 대학강의도 나가신다는 일식당 주방장님은 사진촬영을 위해 손수 포즈도 잡아주셨다.
그 와중에 ‘요리된’ 참치회를 사무장님 입에 넣어주려 하기도 하고 한 조합원은 투쟁 이후 임금관련 문제들에 대해 사무장님께 묻고 얘기하기도 했다.
여기서 투쟁의 흔적 하나를 발견한다.
조합원과 조합간부,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돈독해져 있다.

“사무장님, 오늘 3조 송년회하기로 했어요.”
“2조 송년회 때 술 많이 마셨다면서요? 오늘은 오면 술 대신 음료수 줄께요. 요즘에 송년회 한다고 지부장님이랑 술 너무 많이 마시는 거 같아.”
객실을 둘러보던 중에 만난 메이드(객실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여성노동자)인 조합원이 사무장님을 보자 얘기했다.
조별로 송년회를?
“파업조가 있어요.”
“파업할 때 여러 업장 조합원들이 섞이게 조를 편성해서 파업조를 짜고 파업 끝날 때까지 조별로 행동했어요. 서로의 업장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고 조별로 행동하니까 투쟁하는 동안 단결도 더 잘되고 투쟁이 끝나도 같은 조였던 조합원들 간의 동지애는 그대로 남아있어요. 그래서 송년회도 파업조 별로 하고요.”
강고해진 조직력과 뜨거워진 동지애. 여기 투쟁의 흔적 또 하나 발견!

사무장님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하고 비상계단을 걷기도 하여 몇 층인지 감각을 잃어버린 채 도착한 제과제빵 주방에서 최길수 조합원을 만났다. 사진 촬영을 유독 싫어하시던 이 조합원에게는 그럴만한 내막이 있었다.
장기간 계속되는 파업기간 중에 생계투쟁으로 붕어빵 장사를 했었는데 이것이 지역언론에 보도되며 유명세를 치르셨던 것이다. 동네 아이들까지 알아봐서 이제 얼굴 알려지는 것이 싫으시단다.
파업할 권리가 있는 노동자에게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논리를 들이미는 자본과 투쟁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생계투쟁’을 해야만 했다. 3달 여의 파업기간동안 제과제빵 주방의 노동자는 붕어빵을 만들어 팔며 투쟁을 계속해 나갔고, 한 여성조합원은 생계를 위해 낮에 투쟁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해가면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몇 번의 회유와 기습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길수 조합원의 촬영에는 실패했지만 그의 가슴에 새겨진 투쟁의 흔적은 포착.
죽을 각오로 투쟁하면 승리하고야 만다는 확신.

즐거웠던 일터들의 탐방을 마치고 조합사무실에서 직원식당 조합원 아주머니께서 집어주신 귤을 까먹으며 사무장님과 담소를 나눴다.
오랜동안의 투쟁이 끝난 현장은 정상영업을 위한 준비를 끝마쳤고 연말연시 시즌의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는 얘기, 2004년 2월 28일까지 철회하기로 한 고소 고발 문제, 손배·가압류 문제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얘기, 2004년 임협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 그리고 아직도 힘들게 투쟁하고 있는 호텔리베라 서울 동지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하기 위한 고민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 김원범 사무장님과 함께 하면서 호텔의 지하에 있는 조합사무실은 일하며 투쟁할 수밖에 없는 이곳 조합원들의 또 다른 업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돌아본 업장에서 발견한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결의는 호텔리베라 유성지부에서 발견한 마지막 투쟁의 흔적, 가장 명징한 투쟁의 흔적이었다.

3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