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월] 작은 아침이 밝았다

일터기사

[현장통신]

작은 아침이 밝았다
– 서울도시철도 노조 03투쟁

도시철도노동조합 노동안전국장 정운교

(intro)
도시철도의 03 투쟁은 개인적으로 세 가지 면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10년만에 노동자들의 최대의 무기이자 정당한 권리인 파업투쟁을 성사시킨 그 자체이다. 이번 파업을 통해 ‘투쟁없이 쟁취없다’는 노동조합의 투쟁성을 다시금 보여 주었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둘째는 지도부의 강제적인 동원에 의한 파업 투쟁이 아니라 조합원 스스로가 실천적으로 깨닫고 일어난, 참여와 단결의 장이었다는 것이다. 지난 연장운행 투쟁시와는 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조합원들이 농성장으로 모여들었고 3000명에 가까운 대오가 농성장에 들어왔다. 셋째는 공사 최종안를 조합원 투표에 부침으로써 또 한번 조합원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합원들에게 묻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는 것이 부족하였다. 파업 장소에서 조합원 자유토론도 주요하겠지만, 교섭장 생중계도 충분히 시행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10년의 시간동안 기다린 아침

해뜰녁. 해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미 세상은 밝아져버린 새벽 아닌 아침. 그 짧은 순간의 작은 아침을 보기까지 우리에게는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작은 아침은 눈부시게 화려한 햇살을 기다리는 아침이기에 희망의 아침이다.

파업이 선포되던 순간, 신내기지창에 모여 있던 도철 동지들이 왜 그토록 환호성을 질렀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창사부터 어용이 판치던 노조, 그 동안 도철에서 파업이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과 같았고, 지난 궤도 4사 투쟁에서는 부결로 인한 회군 아닌 회군을 하였다. 싸우지 않고는 얻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여기까지 오는데 ’10년 동안 파업 한 번 못해본 노조’로 낙인 찍혀 왔던 것이다.
너와 내가 분명해지는 순간, 파업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말들 많았지만 참여자와 미참여자로 분명히 나눠지는 그 순간, 알면서 속는 벙어리 냉가슴의 지난 시절, 가슴 한 가운데 막혀 있던 체증이 한 순간에 풀려 내려갔을 것이다.

고통의 나날, “직장만 아니었으면…”

만성적인 두통, 야간을 마치고 나면 뒤통수에는 피가 몰리는 것 같고, 눈꺼풀에 작은 경련이 일어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비염, 난청, 위장병, 불면증, 현장 조합원에게 있어 이 중 하나 이상의 증상은 기본이 되었다.
도시철도의 노동조건은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자동화다, 구조 개선이다 하며 만들어진 공사는 처음부터 서울지하철에 대비하여 30∼40%적은 인원으로 시작하였다. 거기다가 IMF 때에는 전략적 30%감축이라는 어용노조의 궤변으로 1700여명이 정원 감축되었다. 절대적인 인원 부족 현상을 낳은 것이다. 한 예로 모 분야에서 사무를 주 업무로 하는 일근자가 8개월의 교대근무와 2개월 가량의 야간 근무를 하며 지하철 안전점검을 하는 점을 본다면, 인력 구조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24시간 돌아 가야하는 사업장에서 44시간제를 제대로 적용하려면 적정한 근무형태가 4조3교대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이를 적용하는 사업장이 많지 않다 보니 3조2교대가 맞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도시철도의 경우, 24시간을 돌리기 위해서 주간근무 9시간, 야간근무 15시간, 3조2교대를 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에서 오는 문제점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 상의 휴게시간 적용을 악용하여 처음부터 야간근무 중 휴게시간을 5시간 잡아 놓았다. 이는 분명 비상대기 시간이다. 물론 공사는 아니라고 하지만, 비상사고가 많고 적음을 떠나 휴게시간에 비상사고가 발생하면 사무실에서 바로 출동해야 하기에 비상대기 근무인 것이다. 더 비근한 예로 모 분야에서는 야간 출근 후 2시간 일하고 3시간 휴게시간을 부여한다. 이러한 기형적인 노동시간의 원인은 애초부터 사람 중심으로 노동조건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기업 운영방식인 효율화, 상업적 이윤 추구논리를 막무가내 식으로 공기업에 적용하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여기에는 과거 공기업내 군사문화적인 행태도 한 몫 했다.

휴일 문제도 그렇다. 3조2교대제로 돌아가게 되면서 2일의 휴일이 더 필요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실제 장시간 야간근무를 해보면 휴일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지하철 경우 이러한 이유에서 지정휴무 2일이 있어왔다(현재는 1일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지하철이 2일을 쉬고 있는 동안 도시철도에서는 초창기부터 경영개선 수당이라 하여 3∼5만원의 돈을 대신 받아 왔다. 엄밀히 말하면 경영개선 수당도 서울지하철 대비 인원 감축으로 인한 노동강도 강화분에 불과하다. 이렇듯 실제 필요한 휴일이 부족한 상황인데, 휴일에도 나와 일을 해야하는 경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대표적으로 승무 기관사의 경우, 대기 인원 부족으로 휴일에도 나와 근무를 해야한다는 것은 언론에도 알려진 사실이다.

너와 나, 모두의 건강한 삶을 위하여

그동안 언론에서 시민의 발인 지하철 안전에 문제 있다는 기사들이 자주 실려 왔다.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이후 시민들의 관심이 더 높아지다 보니 언론에서도 보다 많은 사고들을 기사화하는 것 같다.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건을 폭로하는 수준에서 끝내지 않나 우려된다. 절대적 인원 부족, 그릇된 근무형태, 쉬어야 하는데도 쉬지 못하는 휴일 부족 등등이 도시철도 조합원의 건강 문제를 해치는 주 유해인자들이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지하철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면 그 지하철은 안전할 수 있는 것인가? 되묻고 싶다. 지하철 노동자들이 건강해야 시민의 안전도 확보된다는 것을 이해하였으면 한다.

03투쟁 요구안 중 건강휴일 하루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건강휴일은 상징적인 의미일 것이다. 건강이 회복되고 아프지 않으려면 현재의 도철 노동자들은 정말 많이 쉬어야 한다. 04년도에는 노동시간 단축이 기다리고 있다. 고통의 나날, “직장만 아니었으면 때려 치웠다”는 생각은 모두 떨쳐 버리고 이제는 힘 모아 하나씩 찾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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