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월/되돌아보기] 벤젠과 직업성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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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기]

벤젠과 직업성 암
서울대 보건대학원 산업의학교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교육위원 이혜은

(intro)
“가장 두려운 병은?” 한 생명보험회사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 1위가 암(59%)이다. 인류가 극복하지 못한 질병 중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병이 암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내가 혹은 내 사랑하는 가족이 이렇게 두려운 암에 걸렸는데 그 원인이 직업 때문이라면 그 억울함과 분노는 어떨 것인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32세, 젊은 노동자의 사망

지난 2002년 2월 원유정제 회사에 근무하던 한 노동자가 32세의 젊은 나이에 림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94년 SK에 입사하여 발암물질인 벤젠을 다루다 2000년 5월에 림프암 판정을 받고 1년 10개월 동안 항암 치료를 받다 결국 사망한 것이었다. 당시 ‘림프암과 고(故)송은동씨가 다루었던 유해물질과의 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는 주치의의 소견서를 바탕으로 산재신청을 하였으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가족들을 기다리는 것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날아온 산재 불승인 통보였다. 억울한 마음에 불승인된 과정을 짚어보니 산재신청서 중 주치의 소견이 누락되고 근무일지는 회사에 의해 허위로 작성되었던 점 등 산재 은폐를 기도한 점이 밝혀졌다. 유가족과 연대 단체들의 투쟁이 시작되었고 결국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해왔는지가 알려지게 되었다. 일례로 벤젠 시료 채취를 하는 동안은 몇 분간을 숨을 쉬지 않고 하였다고 한다. 이런 일을 하면서는 언제 나도 암에 걸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매일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100일이 넘는 천막농성이 진행된 뒤에야 이에 대한 역학조사가 이루어졌고, 그해 겨울이 되어서야 직업병 심의위원회를 통해 직업병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직업성 암, 과연 원인모를 병인가

최근 벤젠 노출 사업장의 암 발생에 관한 역학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13년간 추적조사 결과 암 잠복기간에 비해 아직 추적기간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혈액 계통 암의 암 사망비가 매우 높았고, 특히 암 발생이 최근 3-4년간에 집중되었다고 밝혔다. 석유화학공업단지가 밀집해 있는 여천지역의 경우, 공단의 노동자는 물론이고 지역의 주민 건강도 위협받고 있음이 역학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여천지역의 암 사망률이 1만명당 23명꼴로 일반인구보다 훨씬 높았던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직업성 암의 상당부분을 호흡기 계통 암이 차지하고 있으며 혈액 계통 암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벤젠이 혈액 계통 암의 원인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어지고 있으나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직업성 암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이 1993년, 불과 10년 전이다. 197,80년대 국내의 신발공장, 피혁공장 등에서 거의 예외 없이 벤젠을 사용하였으나 직업성 암이 보고된 예가 없다.
미국산업안전보건원(NIOSH)의 보고를 기준으로 한국의 직업성 암을 추계하면 2000년도 총 암사망자 59,020명 (통계청, 2001) 중 가장 적게 잡아 4%인 2,400여명이 직업성 암으로 사망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에서 직업성 암은 93년 1명이 처음 인정된 이후 97년 3명, 98년 8명, 99년 11명, 2000년 13명, 2001년 10명, 2002년 7명에 불과하다. 수많은 직업성 암 환자가 원인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암은 노출 이후 발병까지의 잠복기가 길어 대부분 퇴직 이후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발암성 물질 사용현황을 분석한 한 연구에서는, 향후 연간 5-28명의 직업성 암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추계하였다. 지금도 바로 우리의 일터에서 미래의 암환자가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신의 일터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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