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월/만나고싶었습니다] 현대자동차 집단요양 투쟁, 그 숨겨진 이야기들…

일터기사

[만나고 싶었습니다]

현대자동차 집단요양 투쟁, 그 숨겨진 이야기들…
– 2003년 현대자동차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요양자 대표 최은영씨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실 이민정

(intro)
우리의 투쟁은 비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투쟁이다. 우리의 투쟁은 단순히 산재승인을 받아내기 위한 투쟁이 아니다. 숨막히는 골병 생산 공장에서 어디에 제대로 호소도 하지 못하고 고통을 참으면서 일을 해야 하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우리는 알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비참한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투쟁을 하고 있다.
– 2003년 4월 16일 현대자동차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요양 신청자 성명서 중

2003년 4월 9일 산재요양 승인신청서 접수.
2003년 4월 18일 중도하차 4명을 제외한 28명 전원 산재요양 승인.

2003년 현대자동차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요양 투쟁에는 이 두 줄로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온갖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십 수 년을 넘게 일해 온 공장에서 팔다리 두들겨 가며 고통을 참아온 노동자들의 이야기, 산재요양이라는 제도를 알면서도 쉽사리 이야기 꺼낼 수 없던 현실에 좌절해야 했던 이야기, 집단요양을 시작할 때의 두려움과 기대, 그리고 회사의 회유와 협박 속에서도 끝까지 함께 투쟁했던 요양자들의 이야기. 이중에는 25년이 넘도록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며 부당한 현실과 맞서 싸워왔던 한 늙은 노동자의 이야기도 있었다.

‘저절로’ 요양자 대표를 맡게 되기까지

이제 정년퇴직을 5년 앞둔 늙은 노동자 최은영(56세)씨는 평소 노동조합의 활동에 나선다기보다는 파업이나 일이 있을 때 열심히 참가하는 조합원이었다. 무언가 직책을 맡게 된 것은 작년 집단요양투쟁 때의 요양자 대표가 처음이다. 요양신청부터 불이익이 올까봐 꺼려지는 상황에서 요양자 대표까지 맡았을 때는 남다른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대답은 의외로 소박했다.

“전원 산재승인을 받고 난 뒤에 요양자 모임을 꾸려가야 되고 대표도 있어야 된다고 먼저 이야기를 했더니 말 나온 김에 대표를 맡으라고 해서 저절로 맡게 됐습니다. 요양자 중에 제일 연장자이기도 했고.”

물론 ‘저절로’ 요양자 대표가 될 수 있는 배경도 있었다. 조장으로 있으면서 과장들과 수시로 싸워왔던 인생경력이 동료들로 하여금 최씨를 요양자 대표로 밀게 하는 주요인이 되었을 법도 하다.

“정당하지 않은 걸 우리 상사가 밀어부쳤을 때는 항상 거절했었어요. 마찰이 굉장히 많았죠. 한 달에 2시간씩 안전교육 받아야 되는 거 싸인 받고 끝내려고 해서 싸우고, 심지어는 과장하고 둘이 같이 옷 벗자는 식으로까지 가기도 했었어요.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 붙어버리니깐 ‘이 사람한테 잘못 걸리면 뼈다구도 못 찾는다’고 이야기도 하더군요.”

조금 숙이고, 조금 못 본 척 하며 지나갈 수 있을 것들을 하나하나 따지고 싸우다보니 위에서는 좋게 보지 않지만 동료들과의 관계는 돈독하다. 물론 이렇게 살아오면서 회의 자리에서 인신공격을 받는 등 온갖 탄압을 당하기도 했다. 산재요양 중인 지금도 “관리자들은 솔직한 심정으로 안 오는 게(복귀 안 하는 게) 좋겠다고 그래요. 아마 윗사람들도 문책도 좀 받고 그러겠죠.” 라며 털어놓기도 한다.

회유와 협박을 뿌리치고 전원 산재승인을 받고

“과장이 3번이나 찾아왔었어요. 회사에서 산재 승인을 해주겠다고. 굴하지 않았죠. 내가 나중에 회사에서 산재승인을 해서 문제가 생기면 당신들은 나를 책임질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죠.”

산재신청을 내고 과장들이 요양자들의 집으로 찾아다니며 회유, 협박할 때도 최씨는 평소 스타일대로 확실하게 잘라버렸다고. 물론 최씨가 강단 있게 투쟁을 결심했을 때의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집단요양 투쟁을 함께 한 것은 당시 집행부가 아니라 현장조직인 현대자동차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였고 자연스레 ‘잘못되면은 어쩌나’하는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든 싸움을 작정했고, 3명의 구속자가 나오고 전원승인이 났다. 그리고 그 힘든 싸움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 지금의 현대자동차노조 신임집행부가 되었다.

“공장 분위기도 굉장히 많이 바뀌었죠. 그때 공장 분위기는 실제로 몸이 아픈데 뭐가 잘못될까 싶어서 못 따라간 사람이 많았는데 ‘내가 그때 따라갈 걸’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고. 아파서 개인적으로 병원 다닌 사람이 많았죠. 저도 이전에 아프긴 한데 산재는 잘 안 된다고 해서 사내 보건센터에서 물리치료도 좀 받았어요. 많이 해주지도 않아요. 일주일 받으면 그만 받으라고 그러거든요. 둘이 같이 일하다가 내가 물리치료 받으러 가면 내 몫을 남은 사람이 해야되니깐 본인도 눈치 보이고. 회사에서는 지금도 근무 중 치료 받으라고 그러는데 실제로는 그런 게 있을 수 없잖아요. 한마디로 얘기하면 산재은폐죠.”

물론 집단요양투쟁 이후로 현장 분위기도 바뀌었고, 신임집행부도 들어섰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처럼 쌓여있다.

“우리가 봤을 때 현장개선이 안된 채 그 자리에 들어가면 또 재발하는 건 뻔하다 이거죠. 나아지는 건 없다고 봐야죠. 인원보충을 많이 해가지고 아픈 사람은 쉴 수 있게 인력충원부터 해야죠. 저번 일터에 ‘진정한 근골격계 예방이란 없다’는 기사가 실렸던데 저도 동감합니다.”

“복귀하면 우리 투쟁했던 이야기도 해주고…”

이제 요양자들은 각자의 증상에 따라 현장 복귀를 준비하기도 하고, 요양기간 연장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최씨는 목 디스크로 추가상병을 올려서 몇 달 후 현장에 복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정년퇴직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물어보자 “이제 애들 공부도 끝났고 내 몸도 생각하면서 일 해야겠다 이런 생각도 들고 복귀하면 우리 투쟁했던 이야기도 해주고 선전도 하고 싶어요.”라고 소박하게 털어놓는다.

“몸뚱아리 하나로 벌어먹고 사는 데 건강한 노동세상이 진짜 우리 노동자의 의무고 권리다 이거지.”라고 이야기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보여주던 최은영씨. 최씨가 앞으로도 일해야 할 현대자동차 현장이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갈지, 그리고 최씨와 같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현장을 바꾸어 나갈지 기대해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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