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월] 실업자 대기소가 되어버린 대학

일터기사

[칼럼]

실업자 대기소가 되어버린 대학
상명대학교 박명선

며칠 전 한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후배는 몇 주 후면 졸업을 앞둔 친구였다. 그에게 내가 전한 첫 안부인사는 “취업은 했니?”였다. 후배는 지금 안산에 있는 직업훈련학교인지 뭔지를 나간다며, 하루에 7시간 이상을 앉아서 회사 내에서의 예절교육, 대인관계유지법 등을 교육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그곳에 대학졸업 예정자뿐만이 아니라 30대인 사람들도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취업이 안 되자, 도피처로 대학원을 선택하거나 그동안은 고려하지도 않고 있던 공무원시험을 갑자기 준비하는 등 내 주변의 사람들만 하더라도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또한 아직 졸업을 몇 년 앞둔 후배들조차도 술만 먹으면 몇 년 후면 벌어질 자신의 미래에 대해 한탄하고 울다가, 다음날 정신차리면 영어사전 들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청년실업이 40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이때, 조용히 좀 하지?

언론 역시 취업난이라느니 청년실업이 심각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현재 청년실업자수는 38만명을 넘어섰고 청년실업률이 8%를 넘어서고 있다. 이렇다보니 학생들은 바늘구멍보다 더 작다는 취업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방학에는 토익공부를 하고 남들 다 가지고 있는 자격증 한두개쯤 따러 학원에 다녀야 한다. 학기 중에는 대학에서의 공동체문화를 누리지 못한 채 사방을 가린 도서관 책상에 홀로 앉아 책을 들여다 봐야한다. 이는 결국 대학사회를 개인주의, 이기주의, 탈정치화로 물들여 놓았다. 사회의 부조리, 아니 더욱 좁게 설정해서 대학본부의 부조리에 대해 알면서도, 또한 매년 오르는 등록금에도 분노하면서도, 행동하지 않고 그저 영어단어 한 개를 더 외우려 애쓴다.(오죽하면 한 TV시트콤에서조차 고시를 준비하는 한 학생은 툭하면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40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이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좀 조용히 해주십시오!!’라고 말할까.) 오히려 학내에서 집회를 하는 것에 대해 공부에 방해된다며 거부감을 갖는 것이 현 대학사회이다. 그야말로 생존경쟁이 그 어느 사회보다 치열하다.

청년실업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이다

정부에서는 대책 안으로 내놓은 것은, 고작 청년실업자를 단기간 동안 의무 고용하는 인턴제라든가 대학 교과과정 중 현장실습을 의무화하여 기업과의 산학협동을 더욱 고착화시키는 방안들뿐이다. 결국 기업들이 원하는 형태의 노동력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청년실업의 근본적 문제는 그대로 둔 채 단기적 수치만 줄이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하지만 청년실업문제는 정부가 내놓은 단기적 정책으로, 그리고 학생들이 치열하게 공부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또한 TV시트콤의 고시생이 말하는 것처럼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한’ 것도 아니다. 청년실업을 비롯한 비정규직 등의 불안정노동의 문제는 산업자본의 수익성 하락에 따른 위기책으로서의 노동시장 재편에 의한 구조적인 현상이다. 결국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접근이 없이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졸업식=실업자집단배출식, 졸업증명서=실업증명서

2003년 11월,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생회 선거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도 처참했다. 전체 대학의 절반이 운동권이 아니거나(비권) 운동권을 반대하는(반권) 학생회로 세워졌다. 나머지 절반이 자주계열, 좌파, 시민운동계열 등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에도 그나마 계급적 관점을 가지고 청년실업의 문제를 바라보는 당선자는 10%도 되지 않는다. 비권/반권 학생회는 정치문제 보다는 무료토익시험을 열고, 취업박람회를 개최하는 등의 학생들이 가장 바라는 취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을 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학생들은 취업난의 근본원인은 보지 못한 채 그들의 공약이 자신의 취업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기에 그들을 지지한 것이다. 학생회조차도 자본주의에 편입하려하고, 학생들은 점점 더 개인화, 파편화 되어가고 있는데 자본주의의 공격은 더욱 날카로워져 저항할 새도 없이 우리의 삶을 옥죄어 오고 있다.

며칠 있으면 졸업시즌이 다가온다. 하지만 이제 졸업식은 ‘실업자 집단 배출식’이 되었고 졸업증명서는 실업증명서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청년실업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과 희생으로 개별화시켜서는 안 된다. 민중들의 집단화된 투쟁으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해야만, 그제서야 청년실업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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