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월]공교육을 희생시켜 사교육을 잡는 법

일터기사

[칼럼]

공교육을 희생시켜 사교육을 잡는 법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 송원재

약발이 언제까지 갈까?

정부가 ‘사교육비 경감방안’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보충수업’을 부활시켜 아이들을 학교에 붙잡아 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터넷이나 위성으로 ‘과외방송’을 해서 사교육을 줄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응이 갖가지다. 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큰둥해 하는 사람도 있다. 또 효과는 별로 크지 않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으냐는 사람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방안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보충수업은 수십년동안 학교에서 실시되다가 폐해가 크다고 해서 금지된 것이고, 위성방송도 지난 1997년 안병영 장관이 교육부장관이었을 때 이미 한 번 시도했던 것이다. 그 때 도입한 수백억원어치 위성방송 수신 장비가 지금도 전국의 1만여개 학교의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녹슬어 가고 있다. 그런데 당시에도 사교육은 여전히 성행했고, 그 규모는 날로 커지기만 했다. 이번 방안도 단기적으로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얼마 안 가 약발이 떨어질 것이다.
왜 그럴까? 상대방을 눌러야 내가 들어가는 일류대 입학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남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다. 모두가 다 보충수업을 받는다면, 그 결과는 아무도 보충수업을 받지 않는 것과 같다. 보충수업이 모든 학교에서 일제히 부활되고 위성방송을 누구나 다 시청할 수 있게 된다면, 제3의 차별화된 교육에 대한 욕구가 다시 등장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교육의 적응력은 또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수능방송 핵심정리 백발백중 과외’ 같은 게 등장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방안은 한 마디로 말하면, ‘공교육을 희생타로 날려 사교육을 잡는 방안’이다. 딛고 설 땅이 좁아진 과외는 학교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보충수업’이라는 형태로 부활할 것이고, 그 와중에 공교육은 극심함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분당에서는 벌써 개학하자마자 밤 12시까지 아이들을 강제로 학교에 남겨 보충수업, 자율학습을 시키기 시작했다. 이 열풍은 머지않아 강남 8학군으로 번지고, 지방 대도시를 거쳐 삼천리 방방곡곡 모든 학교로 번져 갈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공교육은 30년 전의 ‘입시망국 과외망국’ 시대로 돌아가는 셈이다.

부와 권력으로 대물림되는 교육의 악몽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학원에서 이뤄지는 ‘과외’든 학교에서 실시하는 ‘보충수업’이든, 그 본질은 똑같이 ‘암기 위주 입시교육’이라는 것이다. 결국 온 나라를 들썩거리게 만들어 놓은 이번 방안은 ‘학교 밖 입시교육’을 ‘학교 안 입시교육’으로 바꾸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소리 높이 외치는 ‘공교육 내실화’ 라는 구호가 민망하게 여겨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머지않아 보충수업의 폐해를 우려하는 지적이 쏟아질 텐데, 그때는 다시 ‘학교 안 입시교육’을 ‘학교 밖 입시교육’으로 바꿀 것인가?
입시경쟁의 여러 병폐 가운데 사교육이 끼치는 해독은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얼마 전 서울대 입학생들의 가정환경을 조사해 본 결과, 고학력 고소득계층의 자녀가 차지하는 비율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는 연구발표가 있었다. 이것은 사교육의 막강한 지원사격을 받는 고소득층일수록 입시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훨씬 많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결국 사교육이 범람하면 할수록 있는 사람들이 고등교육 기회를 독점할 가능성은 더 커지게 마련이고, 그 결과는 ‘부와 권력’이 교육을 통해 대물림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쯤 되고 보면 교육은, 기회균등을 통해 평등을 창조하는 ‘신화’가 아니라 기회독점을 통해 불평등을 확대재생산하는 끔찍한 ‘악몽’이다.

학벌주의와 대학의 서열화를 깨자

문제의 뿌리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이 사회에 고질병으로 자리 잡은 ‘학벌주의 관행’과 ‘대학 서열구조’다. 이게 깨지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다. 한번 죽을 고생을 해서 일류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평생 온갖 특권이 따라오는데, 제 정신 가진 사람치고 일류대 들어가기 위해 투자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식을 줄 모르는 입시경쟁도 그 때문이고, 수그러들지 않는 사교육 열풍도 바로 여기서 파생되는 병리현상들 가운데 하나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입시경쟁을 촉발하는 대학의 서열구조를 타파하는 것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한 번 입학하면 평생 특권을 독점하는 지긋지긋한 대학 서열구조를 깨려면, 프랑스가 했던 것처럼 ‘대학 평준화’를 과감히 단행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그게 너무 어렵다면 우선 국립대부터 학점을 공유하고 공동 학위제를 도입하고, 교수와 학생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점차 사립대로 확산시켜 나가는 유인책을 도입하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또 ‘학력차별 금지법’을 만들어, 입사원서를 내 보기도 전에 학력과 출신대학만 보고 사원을 뽑는 기업은 이 사회에 아예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들어가기 위해 가산을 털어가며 사교육에 목숨을 걸 사람이 있을 것인가?

해법이 빤히 보이는데도 정부가 이것을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가진 자들이 경쟁을 선호하기 때문이고, 그들 스스로가 과거 명문고의 뿌듯한 프라이드와 아련한 추억에 발목을 잡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쟁력’이란 시대적 화두가 그들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평준화 폐지’ 논란도 여기 맞닿아 있다.
정작 그 속에서 희생되는 것은 국민대중의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다. 공교육은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의 교육적 특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대다수 보통사람들의 보편적 교육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뭔가 다른 ‘특별한 교육’을 원하는 사람은 공교육을 가지고 이런저런 장난을 칠 게 아니라, 아예 짐 보따리 싸서 외국으로 가든지, 소리 소문 내지 말고 가정교사를 두고 안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일이다. 공교육 정상화는 공교육의 본질과 역할을 직시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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