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월/기획2] 4.15 총선과 노동자-노동자 정치와 노동안전보건 투쟁

일터기사

[기획2]

4.15총선과 노동자
노동자 정치와 노동안전보건 투쟁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이훈구

‘부담 전가와 한 표 참여’를 강요하는 ‘정치 희롱’을 넘어

부르주아 의회정치의 재생산에 기여하며 우리네 삶을 희롱하는 정치의 계절이 지나고 있다. 국회를 중심으로 소위 정치꾼들에 대한 혐오를 넘어 해체 주장이 제출되고 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현실 ‘정치’는 사회적 부담 전가라는 올가미로 노동자 민중의 삶을 농락한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요구를 ‘한 표’로 제한하며, 지배정치의 재생산이라는 공동목표 아래 다수의석 확보를 향해 그야말로 아귀다툼 중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정국과 관련하여, 소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담은 촛불시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민중의 삶과 저항은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의 야만성에 대해 죽음을 불사하며 저항해야 했던 노동자 민중 정치는 주체와 요구, 그리고 투쟁 모든 면에서 현실 ‘정치’에 의해 왜곡․배제되어 왔다. 지배세력은 노동자 민중 정치의 역동성을 체제내화 하기 위해 의회정치 참여라는 좁디좁은 비상구만을 열어두고 있을 뿐이다. ‘정치희롱’의 질서를 굳히는데 기여할 의회주의적 정치 행보 전체를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거짓 정치’를 끝장낼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에 맞서기 위한 직접적이고 전국적인 대중정치행동만이 노동해방의 대장정을 열어젖힐 노동자 민중 정치의 유력한 방안이다.

민주노동당은 현란한 말잔치에도 불구하고 ‘거짓 정치’의 큰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 당력을 기울인 대중정치투쟁 없이 전 당력을 기울인 선거투쟁도 없다”는 당내의 소수주장은 소위 민주적 조직운영이라는 구색갖추기에 활용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영남권 진보벨트 구성과 비례대표 의석 확보가 골간인 ‘15-15전략’을 중심으로 한 원내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노동자 민중 정치는 의회진출 실현을 위한 한 표 행사로 뒤틀려진다. 계급정치 실현을 위해 주체, 요구,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의회진출 이후로 이월시킬 수밖에 없어 보인다.

2004년 4.15 총선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움직임이 있다. ‘낙천낙선 혹은 당선 그리고 물갈이’를 기치로 한 시민운동의 총선대응이다. 개개인의 의회진출을 중심으로 주관적 정치잣대를 휘두르며, 노동자 민중을 ‘한 표’로 대상화하면서 ‘부담의 전가와 참여의 배제’라는 신자유주의 정권의 정치기획에 주체적으로 동참하자며 아우성이다. 이들의 행보는 탄핵정국에서 스스로의 계급적 본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의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살 수 있는 노동자 민중정치는 애써 무시되거나 아예 없애버리는 부르주아 의회정치의 2중대일 뿐이다.

투쟁으로 부르주아 정치 공간을 폭로하고 노동해방 쟁취를 위한 노동자 정치 실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주체들은 4.15 총선 그 자체와 정국에 대해 무력해 보인다. 원칙적인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은 열사투쟁, 이주노동자 투쟁, 비정규직 철폐투쟁, 부안투쟁 등은 물론 울산의 박일수 열사투쟁과 이주노동자 투쟁 등 현안 실천과제에 조응하여 힘 있는 투쟁전선을 만드는데 힘겨워하고 있다. 면면히 이어져 왔던 노동자 정치를 계승․강화하기 위한 현장 정치활동의 주체세우기에 전면적으로 나서야만 ‘의회정치’의 정치희롱을 넘어 노동자 민중의 정치 전망을 틀어쥘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 민중 정치에 노동안전보건 운동은 어떻게 임할 것인가

탄핵정국에 대한 판단 및 대응과 관련하여 노동자 정치운동 진영의 혼돈과 동요를 자양분으로 삼아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은 정세주도력을 강화하고 있다. 촛불로 상징화되고 있는 왜곡된 민주주의의 실현, 즉 의회정치라는 제한된 공간에 갇혀 노동자 민중 정치를 배제시키면서 말이다.
여하튼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 양날개의 지지를 빽(?)으로 삼아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을 이루면 노동자 민중의 삶이 억압과 착취, 그리고 차별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명백히 아니다. 그러나 해방을 위한 터전과 주체의 현실 역시 녹녹치 않다. 노동자 민중 정치의 현장은 무너지고 지향은 교란당하고 있다. 현장 주체는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아니 움직이지 못한다. 민주적인 노조집행부조차 “우리가 자판기냐”며 오히려 현장동력을 탓한다. 현장권력 쟁취를 위한 현장조직 활동가들 역시 현장의 요구와 주체들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현장의 요구를 중심으로 노동자 민중 정치에 복무하기보다는 소위 현장파, 중앙파, 국민파로 불려지고 있을 따름이다. 스스로를 현장 그 자체에 매몰시키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노동자 민중 정치를 실현할 전망과 주체의 부재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절박한 노동과 자본간 대립과 투쟁의 장인 현장에서 노동자 민중 정치는 실종의 위기에 있다. 노동해방의 전망을 열기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힘겹지만 의연하게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만이 총단결 총투쟁의 힘을 요청하며 해방의 단초로 서 있다.

총선정국에 제한되지 않고 정치적으로 돌파하기 위해서는 반제 반세계화 투쟁기치 아래 반자본의 대중행동을 조직할 핵심주체들을 묶어 세워야 한다. 세상을 바꿀 전망은 그림 그리기로 누군가 대신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운동주체들이 활동하는 영역-현장/지역/부문-에서 억압과 착취, 그리고 차별에 대항하는 정치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자본에 저항하는 모든 실천은 지배세력의 재창출을 통한 신자유주의 공세의 교두보 확보라는 총선정국의 본질을 폭로하고 넘어서는데 주력해야 한다. 노동안전보건운동 역시 예외일 수 없다. 특히 노동안전보건 투쟁은 한 영역운동의 과제를 넘어 반자본의 지향을 명확히 하면서 자본의 현장통제에 맞선 일상적인 실천을 조직하고, 투쟁요구의 확장을 의식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더불어 즉자적이고 자발적인 현장투쟁 요구에 내재한 계급정치를 심화하기 위해 전국적 차원의 공동실천 조직에 주력해야 한다.

현 시기 노동안전보건운동은 총선정국을 실천적으로 돌파하고 노동자 민중 정치 실현을 위한 주체로 서야할 것이다. 우회로는 없지 않은가. 자본을 넘어 해방세상을 열어 갈 희망의 전망과 주체를 만드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우선 신자유주의 분쇄를 위한 반자본의 전략적 지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전체 노동자 투쟁의 승리에 대한 전망을 실천적으로 부여안기 위해, 신자유주의 분쇄라는 투쟁과제를 중심 잣대로 삼았는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자본의 세계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빈곤의 일상화, 사회적 억압의 체계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양산된 노동의 불안정화 등을 야기하고, 노동자의 골병과 죽음을 전국/ 전산업/ 전지구에 걸쳐 양산해 온 신자유주의 세계화 분쇄를 직접적인 대중투쟁 요구로 자리매김하자.
둘째, 신자유주의의 일상화된 현장 통제에 맞서, 노동자의 현장통제 강화라는 투쟁요구에 담아야 하는 요구의 결집과 심화를 관철시켜야 한다. 노동강도 강화 저지라는 투쟁과제의 외연을 확장하고 심화시키기 위해, 직접적인 생산과정에 대한 노동자 통제력 강화와 함께 일상화된 빈곤과 실업 그리고 구조화된 노동의 불안정화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공동행동의 질서 구축을 위해 나서자.
셋째, 노동자 전체의 투쟁으로 묶어 세우기 위해 구체적인 현장의 요구에 기초한 광범위한 대중행동 조직을 기획/집행하여야 한다. 교섭과 투쟁에 대한 이분법적 접근, 투쟁주체들을 대상화하는 대리주의, 투쟁과제 중심의 공동투쟁 방기, 실리주의와 노사협조주의 등 넘어야 할 산이 수없이 많다. 대중정치행동의 힘으로,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혁할 계급적 단결과 실천의 주체로 현장의 노동자들을 조직하자.

의회정치의 한계를 뛰어넘고 ‘정치희롱’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 민중 정치의 영향력을 확대하여야 하며, 동시에 계급정치 실현의 주체 형성에 복무해야 한다. 4.15 총선 뿐 아니라, 선거정국 때마다 반복되는 혼란과 동요는 노동자 민중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주체와 전망의 부재 때문이지 않은가. 계급정치의 무기와 주체, 그리고 기풍을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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