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월/노동자문화] 접었던 날개를 활짝 펴고 노(怒)하여 비상할 으/악/새

일터기사

[노동자문화]

접었던 날개를 활짝 펴고 노(怒)하여 비상할 으/악/새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웅진지부 부지부장 박기원

<으악새>의 정식명칭은 ‘노조를 노조라 부르지 못하고 단협을 단협이라 부르지 못하는 노동계의 서자 특수고용직 학습지교사들의 처절한 몸부림 으.악.새’입니다. 아마 한국의 몸짓패 중에서 이름이 제일 길 겁니다. 노동자가 아니라서 노동조합이라 할 수 없다 하고, 우리를 앞집 과일가게 주인과 같이 ‘사장님’이라 하는 대한민국의 법 앞에 ‘으악’할 수밖에 없다 한다면 우리 몸짓패 이름의 설명이 되겠지요.

저희들은 재능교사노조, 학습지 노조 웅진 지부, 한솔의 학습지 교사들입니다. 모두 체격 좋고 성격 좋은 부산 여자들입니다. 노래방에서 놀기 시작하면 5시간씩 놀아대는 사람들이라, 노래 좋아하고 춤이 되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몸짓패를 만들어 보자 하던 차였습니다. 그러다 2003년 113주년 노동절기념 부산시민 마라톤 대회 때 재능의 손배 가압류 철회를 위한 주점을 여는데 많이 와주십사 광고를 하기 위해 첫 공연을 올렸습니다. 수업 마치고 저녁도 거른 채 새벽 한 두시까지 연습한다고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일 날 아침에는 주점 준비 때문에 전날 3시간도 못 잔 데다 끼니도 거른 상태라서 깡소주 한 모금씩 하고 올라가서 주변 분들이 으악했었지요. 그 때부터 정식적인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지하철의 파업 전야제, 화물연대 지원, 사무금융 부산우유, 부산 한진노조 파업 등 바쁜 일정 중에도 열심히 다녔습니다.

으악새만 저지를 수 있는 즐거운 사고도 많이 쳤습니다. 화물연대 부산역 집회였는데 큰 트럭을 개조하여 무대를 만든 것이어서 보기에도 쿵쾅 뛰어대는 우리를 감당할 수 있을 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 까 공연 후 뜨거운 박수 속에서도 화물연대 형님들이 무대가 내려앉았으니 물어 달라, 저 큰 타이어가 훅훅 눌리더라느니 하는, 으악새를 두 번 죽이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후 그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화물연대 파업 중 경찰의 민주노총 지역본부 침탈을 막기 위해 집결할 때였습니다. 밤새 있어야 되었기에 약식의 문화공연 시간이 마련되고 으악새도 나갔지요. 근데 화물연대 동지들이 저희를 기억해 주시며 너무나 뜨거운 박수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으악새 팬이라며 악수를 청해 오셔서 우리의 인기를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잘했던 공연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부산우유 부분파업에는 저희 매니저가 CD를 빠뜨리는 바람에 따라온 재능 간부들이 급하게 노래패로 변신하여, 그녀들이 엉망진창으로 불러대는 생음악에 맞춰 율동을 했습니다. 하필 그날따라 실수도 어찌나 많은지. 정말 진땀 빼는 공연을 하고 너무나 죄송한 마음에 이분들을 웃겨드리기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으악새 단원 모 씨가 마이크를 잡고 파업 대오를 웃음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상상치도 못할 일이지요. 즐거운 파업이 되다니요. 그러나 투쟁은 즐거워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담에 꼭 다시 찾아뵙고 우리의 멋있는 모습을 보여드려야지요.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것은 한진 공연 때입니다. 김주익 열사가 고공크레인에서 투쟁 중이셨습니다. 도착했을 때 눈에 띈 것은 ‘2002년 임단협 승리’라는 현수막이었습니다. 2003년에 2002 임단협이라니, 재능교사 노조도 그러한 터라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쩜 천민자본들은 하는 짓도 똑같을까 싶더군요. 그래서 더 열심히 율동했습니다. 무대를 내려가는데 한진 조합원들이 무대 앞으로 뛰어나와 유인물로 만든 꽃도 주시더라고요. 필자는 닭다리라고 주장했지만 극구 꽃이라 하시면서요. 너무나 소중한 동지를 열사로 만드는 아픔이 있었지만 좋은 결과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공연비로 받은 돈을 기부해서 힘들게 투쟁하고 계시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된 것 같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습니다.

으악새의 활동은 집회의 사전 문화공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게는 특수고용직에 대해서 알리는 것입니다. 고소득의 프리랜서로 위장된 노동자, 학습지 교사들의 이해할 수 없는 법적 지위와 회사들의 노동 탄압을 알려내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잘 모르고 계시고 유인물을 들고 나가 하는 시민선전전만으로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민주노총 조합원으로서 다른 노동자들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되길 바랐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보다 많은 활동을 하고 싶지만 오후 1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수업을 하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으악새 단원들은 수업을 다른 날로 돌려가면서까지 공연을 해내고 있습니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어서 의상부터 모든 것을 자비로 충당하지만 그 누구도 상황을 비관하지 않습니다. 밤늦게까지 하는 연습이 있으면 다음날 일할 때 힘든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이러한데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변분들의 격려와 관심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전문 문예패들보다는 뭔가 엉성하고 안쓰럽겠지요.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전문 문예패 못지않게 되는 것은 앞으로의 숙제입니다.

현재 으악새는 부상을 입은 단원이 있어서 겨울잠을 자고 있습니다. 공연을 하러 다니지는 않지만 부산지역 노동자 자주 통일 실천단의 문예패로 활동을 하고 있고요. 새로운 율동도 배워 놓았습니다. 봄이 되고 임단협 시기가 와서 저희를 필요로 하는 곳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때는 접었던 날개를 활짝 펴고 노(怒)하여 비상할 겁니다. 학습지 교사들의 처절한 몸부림은, 곧 강고한 연대의 몸부림으로 그 진가를 발휘할 것입니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레미콘 기사, 보험 모집인, 골프장 도우미, 학습지교사,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그 날까지 제2의 으악새, 제3의 으악새가 많이 생겨나서 같이 활동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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