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월/되돌아보기]직업성 피부질환

일터기사

[되돌아보기]

직업성 피부질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교육실장 김정수

정희양.
아직도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벌써 5년 전, 그러니까 1999년 이름도 매우 생소한, 수십만명 중에 하나꼴로 발생한다는 외이도 선암으로 투병하다 돌아가셨다. 89년 스판덱스 원사를 생산하는 경북 칠곡군의 동국합섬에 입사해서, 이름 모를 독한 화공약품을 매일같이 들이마시며 일했다. 그렇게 일한 지 10여년 만에 그가 얻은 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암이었다. 그는 자신의 암이, 매일같이 들이마셨던 그 수많은 화공약품들 때문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회사는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암은 개인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컴퓨터를 다루지 못했던 그는, 경북 구미의 한 PC방 종업원에게 부탁해 인터넷에 편지글을 올렸다고 한다. 그의 사연은 사이버 공간으로 빠르게 퍼졌고, 수많은 네티즌을 흥분시켰다. 노동부가 진상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암은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했던 암의 원인이 자신의 노동과정에 있음을 증명하고자 외롭게 투쟁했던 한 노동자는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씁쓸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싸움이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노동부의 진상조사 과정에서 정희양씨 뿐만 아니라, 공장 가동이래 100여명의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직업성 피부질환에 시달려왔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가 일했던 2공장에서 합성섬유 제조과정의 용매로 사용되는 DMF(디메틸포름아마이드)가 문제였다. 2공장 노동자 수십명이 수년동안 온몸에 붉은 반점과 가려움증을 동반한 피부질환에 걸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실이 밝혀졌고, 이 중 증세가 심한 10여명의 노동자들은 검진결과 화학물질에 의한 알레르기성 피부질환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도 회사에서는 낡아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환기시설을 교체하는 등의 보다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는 매우 인색하고, 증상이 심해 작업이 어려운 노동자들을 다른 공장으로 전환 배치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전 공장의 모든 노동자들을 직업성 피부질환 환자로 만들겠다는 무식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현장에서 사용하는 각종 유기용제에 의한 직업성 피부질환은 노동자들에게 너무도 흔한 질환이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한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제대로 보고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직업병을 진단할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특수건강진단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고 있고, 산재보험 요양승인 통계에서는 직업성 피부질환에 대한 별도의 분류가 없어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일년에 10건 이내로 추정된다고 한다. 최근에는 몇몇 대학병원의 산업의학과를 중심으로, 지역별로 직업성 피부질환에 대한 감시체계를 만들어 직업성 피부질환을 관리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감시체계가 실제 작업환경개선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다행스럽게도 직업성 피부질환이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피부는 매우 재생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나중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도 많지 않다. 그래서 많은 노동자들이 직업성 피부질환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자. 피부에 물집이 잡히게 하고, 피부를 녹여 껍질이 벗겨지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가 피부를 뚫고 내 몸 속으로 들어온다면? 숨을 쉬고 있는 동안 내 폐 속으로 들어온다면?

4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