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월/기획1] ‘죽음의 공장’ 에서 하청노동자로 살아남기

일터기사

[기획1]

‘죽음의 공장’ 에서 하청노동자로 살아남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실

어떤 위험작업에서도 무사히 살아남기

2003년 9월 8일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던 강OO씨(42세)가 16미터 높이의 수직사다리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수직사다리에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설치하도록 되어 있는 안전참도 없었고, 조명등마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강씨는 건조3부에 소속된 그라인더공으로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강씨가 추락하던 그 순간에도 다른 하청 노동자들은 비슷한 수직일자사다리에 매달려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 하청노동자인 서OO씨도 3미터 높이의 일자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강씨가 사망하자 소속업체는 ‘재해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며 보상문제에 난색을 표했고, 안전시설 설치의 책임이 있는 현대중공업은 사고 당일 중대재해속보공문을 통해 ‘사고당사자의 부주의 때문’이라고 밝힌 후 침묵으로 일관했다. 강씨가 추락한 9월 8일은 추석연휴를 이틀 앞둔 날이었고, 유족들은 눈물과 분노의 추석을 보내야만 했다.

사실 조선업종의 중대재해사고는 한두 해 문제가 아니다. 2003년 국정감사 때 발표된 ‘산재다발 상위 20대 사업장 현황’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가 노동재해 발생 1위 사업장으로 나타난 데 이어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대우조선해양, 기아자동차, 삼성중공업의 순으로 조선․자동차 업체가 단연코 노동재해가 많은 사업장으로 꼽혔다.

그런데 지난 2-3년 간 조선업종의 중대재해사고들을 살펴보면, 사망․부상자 명단에 나오는 상당수가 사내하청 노동자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청노동자가 유해, 위험작업에 중점적으로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수칙까지 무시한 채, 위험한 작업을 강요당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조OO씨는 밀폐된 탱크 안에서 유독성 세척제를 이용해 세척작업을 하던 중 질식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비가 웬만큼 오면 직영은 쉬는데 하청에서는 그런 게 없죠. 바닥에 빗물이 흘러도 440에서 220까지 쓰는 전기코드 꽂고 일해야 되고. 비와도 그냥 왔다갔다 해야 되고, 비 오면 도크 위가 미끄럽거든요.”

2003년 한 해 동안 추락, 압착, 질식, 과로로 사망한 사내하청노동자는 모두 8명이다. 엔진 폭발, 전기 스파크 사고로 13명의 하청노동자가 크게 다쳤다. 하지만 크게 알려진 사고 몇 개를 제외하면, 얼마나 많은 하청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다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자료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철야 24시간, 야간 12시간, 다시 야간 12시간, 그리고 주간 출근

저임금으로 인해 강요되는 장시간 노동 역시 하청노동자의 건강은 물론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지난 10월 과로사한 하청노동자 강OO씨는 주간 3일, 곧바로 철야 24시간, 야간 12시간, 다시 야간 12시간의 작업을 하고 일요일 새벽 4시에 퇴근했다. 그리고 다시 월요일 주간 작업을 하기 위해 출근했으나 결국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하청노동자 대부분이 출근시간 30분 전에 작업준비를 마치고 일을 시작해 밤 9시, 12시까지 철야작업을 해야 한다. 토요일 오후 5시까지 잔업은 거의 의무사항이고, 일요일 특근을 하는 하청노동자도 절반을 넘는다. 워낙 저임금이라 잔업, 특근을 마다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는다. 웬만한 경력과 배짱이 아니면 월차 한 번 써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현대중공업이 1,221억원의 순이익을 냈던 2003년에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은, 많게는 50만원까지 줄었다.

“친구가 잔업 쳐서 390시간인가 일한 적 있거든요. 맨날 열한시에 퇴근하고 매주 일요일날 나갔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180인가 받았어요. 그 친구는 기본이 8시 퇴근이에요. 우리 업체는 잔업이 항상 있어요. 10시, 11시까지도 하고. 옆 반 거 빵구났다고 하면 1시까지도 하고. 일이 갑자기 많아지면 거기다 사람을 계속 밀어 넣는 거예요. 그래도 워낙 임금이 낮다 보니깐, 회사에서 일요일날 나오라고 하니깐 현장에서 고마워하죠. 돈 되잖아요.”

다쳐도 절대! 회사에 책임을 묻지 말 것

하청노동자들이 중대재해와 과로사에 여지없이 노출되어 있지만 사망사고가 아닌 이상에야 제대로 알려지는 경우는 드물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 김주익 조합원은 “처음에는 직영 활동가들이 알려줘서 가면 대부분 회사에서 먼저 손을 써놓은 상태였죠. 요즘은 조합원들이 사고 나면 연락을 해주고요. 회사나 직영노조에서는 하청노조로 연락 안 해주죠. 그래서 응급실 가면 업체 관리자들이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깜짝 놀라죠.”라고 말한다.

비밀 조합원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사고 신고가 들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하청 노조에 파악되지 않은 사고들이 더 많다.

“모르고 넘어간 경우도 많죠. 추락사고가 있다고 연락 받고 병원 갔더니 미포조선에서 1명, 중공업에서 2명이 추락으로 와 가지고 있더라고요. 밖에서는 죽거나 열댓 명 정도가 다쳐야 아는 거죠. 울산대병원 응급실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중공업, 미포조선에서 환자들이 계속 와요.”

하청노동자들이 산재 처리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산재처리를 모르는 경우도 많지만 설사 알더라도 ‘중공업 밥 계속 먹기 위해서’ 본인 부담으로 치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청업체에서 ‘중공업에는 산재 없다’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닐 뿐만 아니라 ‘산재 리스트’가 있어 산재 들어가면 다시 중공업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노동조합 사무실로 찾아와서 상담하시는 분도 있죠. 요양신청서 쓰는 법도 가르쳐드리고 해도, 실제로 산재 잘 안 해요. 업체에 가서 ‘산재 알아봤다’고 하면 깜짝 놀라서 쉬게 해 준다던가 공상한다던가 해버리죠. 얼마 전에는 디스크 판정난 분이 어차피 중공업 안 다닐거니깐 산재 처리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쟤 때문에 업체 망한다. 어떻게 벌어먹고 살래’ 하니깐 사람들이 와서 ‘안 하면 안 되겠냐’고 하는 바람에 결국 공상으로 정리했죠.”

중공업 안에서 일어나는 사고 기록은 원청에 남게 되므로 현대중공업에서 소속 업체들의 재해, 사고를 관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업체들은 ‘사망사고가 나면 업체가 날라간다’며 웬만한 사고들은 숨기고 사망사고의 경우 철저히 ‘작업자의 부주의’로 돌린다.

사내하청노동자 박OO씨는 작업 중 눈에 철심이 박혀 총무에게 연락을 했지만 응급조치를 회피해 결국 혼자서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다녀야 했다. 총무와 사장은 그 와중에도 ‘작업복 입지 말고 의사한테 오토바이 타고 가다 눈에 박혔다고 해라’는 말만 했고 결국 박씨는 인공 홍채를 삽입해야 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공상 처리도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업체는 아파서 쉬면 무급 처리를 하고, 산재나 공상을 요구할 경우에는 출입증을 갱신해주지 않는 등, 간편하게 하청노동자를 짤라 버린다. 회사 책임을 묻지 않는 각서를 쓸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같은 업체에 형님 한 분이 허리를 삐끗했어요. 회사에서 쉬라고 해서 2주 정도 쉬고 나와 보니깐 걸쳐진 2달 전부를 무급처리 해놓은 거예요. 그거 따져서 1달치 달아주기로 하고 더 쉬다 오기로 했는데 그때 딱 출입증 갱신기간이 걸렸어요. 갱신할 때 주민등록증하고 출입증을 같이 주고 들어가서 나오면 새로운 출입증을 같이 줘요. 그런데 이 형님은 주민등록증만 딱 주더라고요. 완벽하게 산재 은폐에다가 공상 처리까지 안 하면서 말썽 있으니깐 짤라 버린 거죠.”

설사 어렵게 싸워서 공상이나 산재처리를 한다 해도 현장에 복귀하면 감당하기 힘든 일을 시키거나 시급을 깎으면서 알아서 나가도록 종용한다.

“친구가 떨어져서 허리를 다쳤었는데 그 이후로 시급이 많이 낮아졌어요. 산재 처리했는데 딴 데서 일 못할까봐 그 이야기도 못하는 거예요. 일을 시켜주는 것만 해도 어디냐 이거죠.”

‘피땀 흘려’ 일군 거대한 ‘죽음의 공장’에서

“현대중공업은 약 5만 명이 일하는 거대한 회사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야말로 피땀 흘려 일구어 온,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터다. 작업도 참으로 위험한 것이 현실이다. 회사는 이러한 위험성을 고려하여 엄청난 금액의 안전설비를 갖추고, 안전요원을 투입하고, 교육까지 하고 있다. 심지어 사고를 낸 당사자까지도 징계할 정도로 안전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의 현실을 비아냥거리고 심지어 현대중공업이 죽음의 공장이라고 하니, 그러면 현대중공업과 관련된 수많은 가족들은 모두가 죽음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박일수열사의 투쟁이 한창이던 지난 3월 현대중공업의 이사는 신문을 통해 분신대책위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 바 있다. 1970년 현대중공업 창립 이래, 35년여간 모두 16,500여명의 노동자가 다치고 330명이 사망했다.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일군 선박 건조량 세계 1위의 현대중공업에는 약 만명의 사내하청노동자가 지금도 팔 다리에 파스를 붙인 채, 쇳가루, 페인트 분진, 용접가스를 뒤집어쓰며 일하고 있다.

한 하청노동자가 “저번 겨울에 사망사고 얘기를 한참 하다가 누가, ‘그놈도 집에서 나올 때 ‘일찍 올게’ 하고 나왔을 거 아니야’ 하는 순간 섬뜩했죠. 다들 아무 말도 못하고 한동안 있었어요.”라고 했듯 바로 옆에서 일어난 사고가 언제 내 일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밀폐된 탱크 안에서, 십여 미터 높이에서 잔업․특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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