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월/기획2] 조선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

일터기사

[기획2]

조선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서울대 보건대학원 산업의학교실 공유정옥

1. 조선 하청 노동자의 규모와 현황

조선업종 하청 노동자의 수는 199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5.5배나 증가하였다. 이는 같은 시기 조선업종 전체 인력 증가분의 82%에 해당하는 것이다. 특히 97-98년의 인력 감축 시기를 지나 인력의 재호황기를 맞은 1999년 이후 정규직의 숫자는 거의 정체된 반면, 하청은 21,623명이 증가하여 조선업종 전체 인력 증가(22,569명)의 95.8%를 차지하고 있다.

그림 1. 연도별 조선인력 현황 (자료 : 한국조선공업협회)

이처럼 조선업종 하청 노동자가 급증한 원인은 조선산업의 호황과 각 조선 자본들의 적극적인 구조조정 전략 때문이다. 조선산업은 생산 과정을 자동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인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1990년에 비해 2002년에 선박 건조량이 3.6배로 늘어나면서 조선업종 고용 규모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조선산업 자본은 선박 건조량에 따라 꼭 필요한 만큼의 노동자를 보다 싼 값에 고용할 수 있고 생산량이 줄어들더라도 손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정규직 대신 대규모 하청 노동자를 도입하는 전략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조선업종 하청 노동자들은 물량이 언제 떨어질지 몰라 한 달 뒤의 일감에 전전긍긍해야 할 만큼 일상적인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고스란히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오로지 일한 시간에만 비례하여 돈을 받는 일당․시급제의 임금 구조 속에서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더 오랜 시간을 노동해야만 하며, 또한 직영 노동자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달성해야만 고용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라도 스스로의 노동강도를 극대화해야 하는 것이다.

2. 조선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

조선업종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를 채용 과정, 노동 과정, 법제도적인 권리, 그리고 질병이나 재해의 경험 과정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1) 채용 과정의 문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채용시 건강진단은 노동자를 신규로 채용하는 때에 사업주가 실시하는 것으로서, 사업주의 비용 부담을 명시하고 있다(시행규칙 98조). 그러나 2001년 79개의 조선업종 하청 사업장을 조사한 결과, 75.9%의 하청업체가 채용시 검진 비용을 노동자 본인에게 부담시키고 있었다. 사업주의 의무가 노동자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산안법 제43조에서는 ‘건강진단의 실시결과를 근로자의 건강보호․유지 외의 목적으로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채용시 건강진단이 건강하지 않은 노동자를 골라내어 탈락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조선 하청 사업장 중 채용시 건강진단으로 취업 부적격자를 선별해내는 곳이 94.9%에 이르고 있었다. (고상백 등, 2001년)

이렇게 건강진단 결과를 핑계로 고용을 기피하는 것은 산안법 위반인 동시에, 건강에 따라 고용을 차별하는 일종의 인권침해이다. 그런데 조선업종의 원․하청은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건강진단상 이상이 있는 노동자를 선심 쓰듯 채용해주는 대가로 나중에 직업병이나 노동재해를 당하면 노동자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미리 받아놓거나 심지어 공증을 요구하기도 한다. 채용시 건강진단이 산재 은폐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2) 노동 과정의 문제

하청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고용불안에 처해 있다. 따라서 ‘짤리지’ 않으려면 아무리 무리한 작업량이라 해도 무조건 달성해야 하며, 일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벌어놓아야 한다. 시급․일당제의 임금 구조 속에서 최대한 많이 벌기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조건은 노동강도의 극대화로 이어져 근골격계 질환 등의 직업병과 각종 재해 및 사고를 증가시킨다.

유기용제, 분진, 소음 등 노동 과정상의 유해 요인들은, 하루에 폭로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하청 노동자들은 주로 물량이 많은 시기에 집중적으로 투입되는데다가 저임금과 고용불안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하는 경향이 있어, 유해 요인에 집중적으로 폭로될 위험이 크다.

하청 노동자들의 업무 내용은 대개 직영 노동자와 비슷하다. 그러나 똑같은 일이라 해도 주로 환경이 열악한 장소에 배치되며, 때로는 직영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업무를 전적으로 담당하기도 한다.

3) 법․제도적인 권리에서의 문제

하청 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 및 관련 제도를 통해 안전보건 기본권을 보장받기 어렵다. 우선, 사업장 이동이 잦기 때문에 산안법에 따른 작업환경측정, 건강진단의 주기가 돌아오기 전에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하청 노동자는 포괄되기 힘들다.

설령 평가에 포괄된다고 하더라도 건강진단을 통해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질병이나 재해로 건강이 나빠지면 어떤 보호 장치도 없이 바로 퇴출되므로 현장에는 비교적 건강한 노동자들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조합 등 조직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작업환경측정이나 건강진단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를 감시하고 개입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사업장 안에서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는 안전보건체계로는 단협과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이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 하청 노동자의 참여를 확실히 보장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취약한 하청 노동자들이 단협이나 산보위 등의 체계에 직접 결합하거나, 직영 노동자 중심의 체계에서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를 능동적으로 처리할 가능성은 낮다.

산안법에서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과 관련한 규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산안법 제29조에 의하면 도급 사업에서 사업주는 안전보건에 관한 원․하청 사업주의 협의체 구성․운영, 2일에 1회 이상 작업장 순회점검 등 안전보건관리, 하청업체에서 행하는 노동자 안전보건교육에 대한 지도와 지원 등을 해야 하며, 2개월마다 한 번 이상 원․하청 사업주와 해당 공정 노동자 1인을 포함한 합동 안전보건점검을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 법안에는 합동 안전보건점검시 해당 공정 하청 노동자 1인이 참여하는 것 이외에는 하청 노동자가 안전보건의 주체로서 참여할 여지가 전혀 없다. 그나마 합동 안전보건점검에는 ‘해당 공정’ 노동자가 참여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어 실제 활동의 여지를 제한하고 있다.

4) 노동재해 및 직업병 피해 노동자가 겪는 문제

재해, 질병으로 인한 건강 훼손은 하청 노동자들에게 있어 곧 해고와, 재취업의 장애물을 뜻한다. 여기에는 원청이 하청에 대해 무소불위의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원-하청 구조가 큰 영향을 준다.

우선 조선업종의 하청업체는 노동자의 채용과 해고, 작업 과정과 산재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면적인 원청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하청업체에서 산재가 발생한 사실이 알려지면 원청으로부터 계약에 불이익을 받거나, 이를 우려하여 업체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폐업을 하기도 한다. ㅎ중공업의 경우에는 각 하청업체들을 원청 부서 하부 단위로 편재하여 하청에서 산재 발생시 해당 부서의 평점을 깎는 방식을 도입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재해나 질병을 당한 노동자는 원청 관리자나 하청업체 사업주는 물론, 동료 하청 노동자들로부터도 산재 처리를 하지 말고 공상 처리하거나 개인적으로 치료하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또한 조선업종 내에는 ‘산재 환자 블랙 리스트’가 있어서, 산재를 당한 사람은 다른 어떤 조선소에도 취직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되므로, 본인 스스로 산재 처리를 기피하기도 한다.

또한 채용시 건강 진단 결과에 아무리 작더라도 흠이 있으면 이를 빌미로 고용 관계 자체가 부정됨으로써 산재처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흔하다.

5) 비공식적 계약 관계의 경우

조선업종에는 건설업종과 유사한 일명 ‘물량떼기’ ‘야리끼리’ ‘때려먹기’ 등으로 불리는 독특한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존재한다. 이들은 정식으로 등록된 하청업체 소속이 아니며, 한두 명의 숙련공을 중심으로 적게는 서너 명, 많게는 십여 명이 팀을 이루어 특정 작업을 통째로 떼어 받는다.

이들은 일반적인 하청업체 소속보다 높은 임금을 받지만, 직영 노동자들보다 더 빠르고 더 값싸게 일을 마친다는 조건 하에 일하기 때문에 노동강도가 높다. 또한 정식 계약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노동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하다가 재해를 당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더라도 아예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당연히 산재 보상은 커녕, 공상 처리조차 힘들다.

3. 조선 하청 노동자 안전보건 문제의 본질 및 과제

전통적으로 조선소에서 일하는 여러 직종은 대부분 여러 종류의 직업병에 걸리기 쉬운 고위험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위험들은 하청 노동자의 만성적인 고용불안과 착취적인 임금 구조, 노동조합 등 조직적 대응력의 부족, 그리고 법․제도적 보호 장치의 미비함으로 인해 한층 증폭되어, 조선소의 하청 노동 과정은 그야말로 ‘안전보건의 무법지대’가 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림 2)

그림 2. 조선업종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

한마디로 조선업종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는 이들의 노동기본권을 배제해온 원-하청 고용 구조의 태생적 한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있는 하청 노동자의 건강 및 건강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밑바탕에 있는 고용불안과 착취적 임금 구조를 깰 수 있는 조직적 대응력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청 노동자의 조직화 및 원-하청 노동자의 조직적인 단결이 가장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현재의 조건에서 하청 노동자에게 필요한 법․제도적 보호장치라는 것은 산보위, 명예산업안전감독관 등 안전보건체계 속에 하청 노동자의 참여를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하청 노동자가 현장에서 조직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단결권과 단체 행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이를 빌미로 한 자본의 탄압을 근본적으로 금지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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