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월/만나고싶었습니다] 얽매이지 않은, 뜨끈한 웃음을 웃는 사람 – 근비노조 위원장 정종우

일터기사

[만나고 싶었습니다]

얽매이지 않은, 뜨끈한 웃음을 웃는 사람
–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조합 위원장 정종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실 박지선

(intro)
하필이면 그 맑고맑은 날들 가운데, 봄비 추적추적 내리는 날로 인터뷰를 잡게 되었다. 아무리 볕이 봄볕이라고는 해도, 비가 내리니 바람이 스산하고 마음도 싱숭한 게, 뭔 얘기나 제대로 할 수 있을려나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연구소가 어딘데요?” 연구소에 와본 동지들은 알테지만, 교통편이 그야말로 형편없다. 무엇보다, 비도 오고해서 움직이는 게 귀찮을 수도 있었을텐데 선선하게 연구소 사무실을 찾아와 뜨끈한 웃음을 웃는 사람, 그가 바로 정종우동지였다.

#1. 얽매이지 않은 사람

“지금 싸우고 있지 않다면, 아마 농촌에 가 있을 거예요. 고향이 전북 장흥이거든요. 서울생활 정리하고 시골 내려가서 농사 지을려고 했거든요. 아니면 다른 직장이 있을 수도 있고. 제가 학교 때 재활 했었거든요. 상담부터 재활 프로그램 만드는 거 같은 거요.”
짧은 인터뷰 시간동안 몇 번에 걸쳐 들은 말이다. 시골에 내려가 땅을 일구면서 살려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약간 검은 편인 게, 땅과 잘 어울릴 것도 같다. 공단에 들어오기 바로 전에는, 원래의 관심사였던 재활과 개인적인 정신수양 차 조계사에 있기도 했다고. 살면서 특별한 경험이 많냐고 했더니, 특별나게 경험이 많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해보고 싶어서’ 해본 것들이 있는 정도라며 민망해 한다.
“이러다가 또 몰라요. 갑자기 염세주의 철학에 빠질 수도 있고. 어떤 부분에서 확 드러나는 건 아닌데, 염세적인 부분도 있긴 있어요. 어쨌건 저는 뭐, 부담 없이 살아왔던 거 같아요. 부담 없이 하고싶은대로.”

#2. 깔때기 같은 사람

하지만 그의 다양한 경험과 느낌의 끝은, 항상 작년의 파업투쟁과 비정규직에 대한 고민들로 흘렀다. 무슨 얘기를 하건, 작년 파업투쟁과 활동근황으로 이어진다. 깔때기 같다.
“작년 파업 끝냈을 때 모든 게 다 끝난 것은 아니었어요. 비정규직을 확대하지 않고,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제도개선위원회로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한다는 정도의 큰 틀을 공유한 정도였죠. 조합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쥐여지는 성과는 없었을 수 있지만… 열사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지 않았고, 사회적으로 비정규직을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고, 점차적으로 정규직화 하게는 한 것 같아요. 현재는 제도개선위원회로 비정규직이 차별받는 인사, 복리후생 부분 차원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어요.”
얘기를 하다 보니, 살면서 가장 슬픈 일도 노조 활동 중에 느꼈고, 지금 활동을 하는 것도 비정규직이 되고나서부터 생긴 마음임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이 문제죠… 우리 이용석동지 죽었을 때, 전혀 예상 못했었고… 평생 못 잊을 거 같아요. 평생 마음이 아플 거 같아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되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데, 이놈의 세상은 그게 심한 거 같아요. 뭐랄까, 이 하나의 사회, 시장을 움직이는 시스템 자체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고 하는데 참 도움이 안 되는 그런 것 같고.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비정규직 노조 관련해서는 내가 받았던 차별에 대해서 누군가는 문제제기하고 고쳐야 하는 거니까 그렇고. 하나의 어떤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질지 안 만들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죠.”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설립한 지 이제 간신이 1년쯤이 된,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진 조합이다. 게다가 전국에 흩어져 일하게 되는 근로복지공단의 특성 상, 조직을 꾸리고 추스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작년 싸움의 가장 큰 성과는 조합원들이 스스로 자신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의 모습과 권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상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작년에 싸움을 통해서 우리가 받았던 도움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요. 그리고 실제 비정규직 싸움이 단위노조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공유가 있어서, 요즘 비정규직 집회에 조합원들이 열심히 참여하고 있어요.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것을 봤을 때, 그리고 ‘노동조합이 무엇인가’라는 점에서 봤을 때, 끝까지 남아있던 150명 정도의 조합원들은 많이 배웠고, 앞으로 자신이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향후 싸움에 임할 수 있게 된 거죠.”

#3. 잘 웃는 사람

그는 자신을 ‘잘 웃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무슨 말만 하면 웃어서, 앞에 함께 있는 사람도 웃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속절없이 잘 웃는 사람 같아 보여요. 파업 기간, 그 심각한 기간에도 웃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그러더라구요.”
파업 기간, 단식을 하는 와중에도 그의 웃음은 빛났다 한다.
“평소에, 건강 단식 같은 거 하는 친구 얘기를 들으면서 저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은 해봤는데, 결국 파업 중에 한 번 해보게 됐죠. 사람들이 말하길, 위원장이 단식을 하면 좀 비틀거리고 쓰러지고 해야 조합원들이 딱 뭉치고, 힘내고 그런다고 하는데, ‘니는 그렇게 빨빨 거리고 잘 돌아다니고 그러면 어떡하냐’ 그러더라구요. 하하. 하여간 단식은 별 무리 없이 잘 진행이 됐는데, 단체협상 도장 딱 찍고 나서는 그냥 힘이 쫙 풀려 버리더라구요. 나중에 생각하니 단식은 가장 할 일 없을 때 하는 투쟁이 아닌가 싶더라구요. 할 수 있을 때 많이 돌아다니고, 조직하고 해야 하잖아요. 그래도 10일 넘게 굶어봤으니 성공했죠. 한 15킬로 넘게 빠졌으니까. 조합원들이 ‘더 살찌지 마십시오. 그게 제일 보기 좋아요. 몸관리 하십시오’ 그러더라구요. 하하.”

인터뷰를 마치고 술 한 잔을 권하자, 정종우동지는 급하게 가봐야 할 데가 있다며 자리를 챙겼다. 입 안에서 소주 한 잔이 자꾸만 뱅글뱅글 돌아서 옷깃을 붙잡고 늘어지니, 사실은 애기가 아프단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니. 정말 대책 없이 뜨끈한 사람이다. 부랴부랴 일어서는 동지의 뒷모습에서, 어찌 보면 팍팍하달 수도 있겠지만, 다시 보면 치열하고 성실한 현장노동자의 삶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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