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월] 고수(高手)

일터기사

[세상사는 이야기]

고수(高手)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위원 박주옥

지난 4월 4일 이승엽선수가 시즌 첫 홈런을 쳤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것도 장외홈런으로 말이다.
국내에서 56호 홈런을 친 이승엽선수는 일본으로 갔다. 가기 전부터 말이 많았고 일본에 가서 한동안은 이렇다 할 좋은 소식이 없었다. 오히려 일본 투수들에게 적응하기 힘들어 한다는 달갑지 않은 전문가들의 평가가 신문에 오르내렸다.
우리의 홈런왕은 이렇게 가는 것인가… 나는 야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시아 최고의 홈런왕이라는 야구계의 ‘고수(高手)’에 대해 인간적인 관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이승엽’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평소에는 잘 보지 않던 스포츠 뉴스도 보게 되고 스포츠 신문도 가끔씩 보게 된다. 최근 이승엽선수가 부진하다는 기사를 보면 안타깝고 ‘그도 한때 스타로 그렇게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실망도 하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홈런을, 그것도 끝내주는 장외 홈런을 날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남들이 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던 공 – 인커브로 들어오는 높은 공이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했다. 그리고 일본의 투수들은 제 아무리 이승엽선수라 하더라도 이런 공을 홈런으로 만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 을 멋진 타격 폼으로 보기 좋게 올려서 또 하나의 그림 같은 홈런을 만들었다. 그는 역시 ‘고수(高手)’였던 것이다.

나는 ‘고수(高手)’들을 좋아한다. 아니 존경한다. 삼국지의 관우, 홍콩 무술배우 성룡, 락그룹 비틀즈, 풍자만화가 박재동 등등이 내가 ‘고수(高手)’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30년간 무사고로 운전하신 택시기사 아저씨, 슬쩍 곁눈으로만 보고서도 몇 쪽짜리 책인지 알아맞히는 복사집 아저씨, 단팥방 하나만은 끝내주게 맛있게 만드는 동네 제과점 주인아줌마, 엔진 소리만 듣고도 어디가 문제인지 짚어내는 차량 정비소 아저씨 등등… 이들도 내가 존경하는 ‘고수(高手)’라 할 수 있다.
이런 고수들의 특징은 어떤 일이든 한가진 일을 꾸준히 장기간 해오면서 숙련되고, 그 일의 전 과정에 대해 이해하며 결과적으로 뛰어난 직감으로 판단하고, 능숙한 솜씨로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주목 받지 못하는 일이라도 즐겁게 하며, 세상에 필요한 일이며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완벽하게 해내고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바로 내가 존경하는 ‘고수(高手)’이다.

우리 주변에 또 다른 부류의 ‘고수(高手)’들이 있다. 거짓말의 고수, 착각의 고수, 온갖 비리와 청탁의 고수… 바로 정치인들이다. 그밖에도 잘 하는 게 너무 많은 전천후 고수이다. 사과박스에 돈 담기, 국회에서 패싸움하기, 갖은 욕설하기, TV토론에 나와서 엉뚱한 소리하기, 탈세하기, 군 면제받기 등, 다 열거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이들은 참 독특하게도, 세상에 정말 필요 없고 아무도 하지 않아야 할 일들만 골라서 하며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숙련된 기술을 구사하는 ‘고수(高手)’이다.
정치인들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마음은 20살이 넘으면서 쓰레기통에 처박은 지 오래이다. 그리고 정치 고수(高手)들의 연례행사인 각종 선거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진정 존경할 만한 고수(高手)의 등장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그리고 이 땅의 노동자들이 고수(高手)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경멸의 대상인 정치계의 고수들… 그들로부터 우리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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