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월] 멀기만 한 양성평등

일터기사

[문화마당]

멀기만 한 양성평등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문화국장 박선봉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아들 녀석이 나를 무척 싫어했다. 아내가 퇴근 후에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올라치면, 그 녀석이 꼭 물어 보는 말이 있단다.
“엄마, 오늘 아빠 들어와?”
“아니. 못 들어온다는데.”
아들 녀석은 그 말에 “앗싸”를 연발하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고 한다. 그럴 때면 곰곰이 생각을 해 보곤 한다.
‘내가 이 집에서 그 정도밖에 안 되나?’

나는 한 번도 가장의 대접을 요구해본 적도, 가장이 되고픈 적도 없다. 우리집에서는 돈을 가장 많이 벌어 오는 사람이 가장이 되기로 했고, 당연히 아내가 가장으로서 전권을 휘두르며 우리들을 탄압하곤 한다.
그래도 내가 아내보다 잘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가사노동이다. 자취생활 10년의 경험은 나를 집안일 도사로 만들어 버려, 웬만한 것은 한 쪽 눈만 뜨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내는 그 걸 잘 못한다. 특히 청소하는 건 정말 한심할 정도다. 한 쪽을 치우면서 또 한 쪽을 어지르다가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기가 일쑤다. 그래서 가사노동의 많은 부분은 내가 한다.

퇴근 후에 집에 들어와 부인을 하인 다루듯이 한다는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나 정도면 괜찮지 않느냐는 생각에 가족들에게 서운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나의 생각이 한참 잘못 된 것이라는 걸 요새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전적으로 가족의 생계비를 책임지고 있는 노동자들은 말 할 것도 없고,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맞벌이를 하고 있는 경우에도, 가사노동은 항상 여성들의 책임으로 떨어지기 일쑤다. ‘아니, 나는 아닌데.’ 하고 의문을 제기할 남성 노동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남성들은 항상 가사노동에서 방관자이거나 도움을 주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지,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하는 경우는 정말 눈을 씻고 찾아봐야 할 정도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밖에 나가서는 똑같이 힘들게 일하는데, 집에 돌아와서 남편은 집안일을 그저 생색내기 정도로 하고, 아내는 여성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그 책임을 도맡아야 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행태가 깨지지 않는 한, 부부간의 갈등은 계속될 것이고 양성평등은 먼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다.

5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