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월] 희망의 새싹을 새로이 틔우자!

일터기사

[현장통신]
(편집자 주 : 아래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 부산연구소 성원 중 한 명이, 진주햄 노동자의 투쟁에 함께하면서 공감한 이야기들을 진주햄 노동자의 입장에서 서술한 글임을 밝힙니다.)

희망의 새싹을 새로이 틔우자!
한국노동안전보건 부산연구소

(intro)
2003년 여름은 진주햄 노동조합운동의 새 역사를 여는 뜨거운 여름이었습니다. 진주햄 노동조합은 한국노총 산하 전화노련 소속의, 전통적으로 노사협조주의를 추구하는 노동조합이었습니다. 현장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어떠한 조직인지 잘 모른 채 회사의 눈치 속에 하루하루 벌어먹으면서 사는, 정말로 순진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2003년 임금협상이 결렬되면서 노동조합은 파업을 선포(노동조합이 이 시기 파업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복잡한 사연은 생략합니다)하였고, 파업참여 저지를 위한 사측의 극심한 탄압이 시작됐습니다.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대오를 지켜낸 조합원은 겨우 43명에 불과하였습니다. 비록 적은 참여였지만 참여조합원들은 최종까지 대열을 이탈하지 않고 굳은 의지와 결의로 43일이라는 장기간의 파업을 승리로 마감하였습니다.
파업기간에 자행된 사측의 비인간적인 탄압과,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던 조합원들과의 갈등, 그리고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경제적 손실을 참여조합원들은 기꺼이 감수하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지켜낸 파업대오가 이후 우리 진주햄 노동조합의 중요한 재산이고, 조합원들에게는 큰 희망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저 신나는 마음으로 다들 현장으로 복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현장 복귀 첫날부터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우리가 겪게 될 엄청난 정신적․육체적 피해의 시작이었습니다.

파업 이후, 희망을 안고 현장에 복귀했지만

현장 복귀 첫날부터 사측과 작성된 합의서는 모두 쓰레기에 불과했습니다. 업무상 불이익은 없다고 합의하였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파업 참여조합원 43명 중 불가피한 공정(출고 담당하는 영선반) 외에 자신의 공정으로 복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20년 넘게 자신의 몸처럼 애지중지했던 기계 앞에 서보기도 전에 모두 다른 공정으로 쫓겨 갔으며, 이에 항의하자, 사측에서는 구차한 변명만 할 뿐, 시정조치 할 의지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과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들, 특히 파업기간 사측의 사주로 구사대로 나섰던 조합원들과의 갈등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파업을 이끌었던 노동조합위원장이 사직을 하고 사측은 이들을 사주하여 노노갈등을 심각한 상황으로 몰고 갔습니다.
현장 분위기는 극도로 얼어붙었습니다. 참여는 못하였으나 파업을 지지했거나 또는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과 친하게 지내는 조합원들은 가차 없이 업무적으로 불이익을 당하였습니다. 전체 조회시간에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기도 하였고, 업무 배치시 이리저리 돌리거나 잔업에서 빼기도 하였습니다.(진주햄은 해마다 최저임금에 걸리는 저임금 사업장입니다. 그러므로 대다수 조합원들이 잔업, 조출, 특근 등에 목을 매는 상황이지요.)
물론 파업조합원들의 불이익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대다수 조합원들은 그런 마음은 아니었으나 파업조합원들과 말을 섞었다가 혹시 자신이 불이익을 당할까봐 모두들 움추려 있는 상황이었기에 파업 참여조합원들의 집단 왕따는 기본이었습니다. 그리고 벌써 파업이 끝난 지가 해를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전 자신의 공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공정 저공정을 떠돌아다니면서 온갖 수모를 겪고 있는 조합원들도 많습니다.

파업 참여라는 이유만으로 해고라니

잔업을 고사하고 몇 달째 현장에 발도 못 붙인 채 남녀 화장실 청소, 남녀 탈의장 청소, 눈썰기, 페인트 칠하기 등 여자의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조차 가리지 않고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현장의 떠난 조합원들도 10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소 같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도 않는 사유로 해고․정직을 당하는 조합원들도 속출하였습니다.
파업 참여조합원들이 다수 속해있던 영선반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부서는 업무 특성상 토요일이나 명절 전날 현장사무실에서 조합원들이 모여 간단하게 술도 한잔씩 하곤 하였습니다. 때론 생산부장이라는 사람이 와서 같이 자리를 하곤 했습니다. 파업 이후에 이런 자리가 있었는데, 그날따라 노무 담당하는 관리자가 와서는 이를 문제 삼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중 가려 일부는 감봉이라는 경징계를 내리고,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해고를 시켰습니다. 정말 기가 찰 노릇입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파업 참여조합원 중 현장 복귀 후 업무상 과다한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과 진료를 받아오던 분이었는데, 그날따라 몸이 안 좋아서 탈의장에서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업무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어 같이 퇴근을 하였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이것조차 파업 참여조합원들에게는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누군가가 이 사람이 몇 시 몇 분에 현장에서 나왔는지를 보고하여, 한 달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파업조합원들은 집단 왕따, 비상식적인 파견근무, 게다가 감시까지 받으면서 하루하루 지쳐 갔습니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심각한 상황에 다다랐습니다. 우울증과 불안, 그로 인한 불면증으로 많은 조합원들이 고통 받고 있으며, 무리한 파견근무로 허리, 어깨, 손목 등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으며, 견디다 못해 회사를 그만두는 조합원들 또한 속출하고 있습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 힘들지만 묵묵히 현장을 지키고 있는 파업조합원들과 이제 산재 투쟁이라는 새로운 투쟁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너거가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니냐’며 외면하는 노동조합과 구사대 놈들에게, 그리고 파업조합원들의 씨를 말리고자 이성을 잃고 설쳐대는 사측에게 그에 걸맞는 댓가를 요구할 생각입니다.
현재 세 분의 아줌마가 근골격계 직업병, 우울증으로 산재 신청을 한 상태입니다. 그 중 한 분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승인이 난 상태이고, 다른 두 분은 현재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나머지 조합원들도 모두가 골병을 호소하고 있고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간에 자행된 사측의 탄압과 그로 인해 지친 몸과 마음 때문에, 또, 아직은 ‘내가 또다시 뭘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 때문에 쉽게 투쟁에 나서지는 못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사측의 탄압과 집단 왕따로 여전히 추운 봄을 살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앞선 동지들의 투쟁이 희망의 새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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