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월] ‘노동자 건강권 투쟁의 달’ 이야기

일터기사

[칼럼]

‘노동자 건강권 투쟁의 달’ 이야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교육위원 / 전국철도노동조합 산업안전차장 이김태영

예년과 달리 봄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 3월쯤에는 봄 가뭄을 걱정해야 한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는데 어제는 수해(水害)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참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대부분의 통계수치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그야말로 ‘경험’을 중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불확정성이 높아진 요즘에는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도박이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을 쓸데없는 행위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무엇인가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일어날 미래에 대해 준비하는 것을 부질없는 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사회가 삭막해진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이 예측하고 기대하고 희망을 가지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과거를 평가하고, 현재를 진단하고, 좀 더 나아질 미래를 희망하고, 이 희망을 위해 부단히 행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꼭 있기 때문이다. 누가 무어라 해도 말이다. 노동자의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 만들기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이라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요구된 시대부터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위협은 항상 존재해 왔다. 계급이라는 것이 사회에, 그리고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이 뿌리박힌 뒤부터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건강과 안전은 ‘권리가 아닌 선택’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제국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고 금융자본이 인간을 그리고 노동을 집어삼키는 지금의 시대에서 안전할 권리, 건강할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의 외침은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노동자의 건강권ㆍ안전권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은 운동적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몇 년 동안 노동조합운동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면서 제도와 법률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사명감(!)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활동하는 단체가 많아지고 활동가들이 배출-물론 사라지는 사람도 있지만-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활동하던 것들을 하나로 묶어서 집중적으로 선전하고 조직하기 위해 ‘노동자 건강의 달’을 정해서 추모사업도 하고 선전전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일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듯 시간이 흐르면서 초기의 목적의식과 역동성은 행사를 치루는 것에 치여서 사라지고, 그야말로 ‘일’이 되어 버렸다. 참여하는 사람이 적어지고 시기적으로 임ㆍ단투가 진행되고 있거나 혹은 임ㆍ단투가 끝나버린 시점이어서 집중성도 낮아지고. 결국 관심 있는 소수만이 기억하고 참여하고 그리고 지치는. 몇 번의 논의를 거치면서 이상하게 집중사업을 펼치는 ‘시기’가 속칭 난신적자(亂臣賊子)로 치부되면서 시기가 옮겨졌다. 하지만, 어렵기는 여전히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공공부분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나도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몰랐다. 이렇게 된 것이 나의 게으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언가 분명히 잘못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나의 게으름을 채찍질할 구조가 없거나 나의 무지함을 꾸짖을 사업이 진행되지 않거나 혹은 사업의 방향이 사람들의 시선을 잡을 수 없거나 등등.

내가 글로 쓰고자 하는 것은 단 하나이다.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쟁취하기 위한 활동을 기층에서 펼치는 활동가든 상급구조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간부이든 지금까지의 ‘관행’을 벗고 장기적인 전략을 새롭게 수립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천덕꾸러기 위해서 필요한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 전략, 조직골간, 활동방식 등에 대해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두가 어느 곳에서 활동하든 모쪼록 건강하고, 치열한 논쟁이 건강한 활동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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