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월] 착취의 발견 – 영화를 만드는 스탭들의 이야기

일터기사

[일터이야기]

착취의 발견
– 영화를 만드는 스탭들의 이야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위원 허 경

(intro)
부산에서 상경하여 일을 시작한 첫 해, 그가 받은 임금은 140만원. 다음해 100만원을 포함하면 2년 동안 일하고 받은 돈은 모두 240만원이다. 개발독재 시절쯤 <착취의 추억>에 대한 회고담이 아니다. 상업 영화 제작현장에서 일하는 스탭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온라인 모임인 ‘비둘기 둥지’라는 곳의 운영자인 고병철씨의 불과 몇 년 전 경험이다. 그를 통해 들어본 영화를 만드는 스탭들의 이야기. <착취의 발견>이다.

영화제작사들은 대부분의 인력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보다는 프로젝트별로 고용하고 작품제작이 끝나면 해산한다고 한다. 최근 4부(조연출, 제작, 촬영, 조명)조수연합에서 발표한 ‘영화현장 스탭의 근로조건 개선과 전문성 향상을 위한 연구’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영화 제작현장 하위 스탭의 고용 및 임금계약 방식을 알아본 결과, 조사대상자 중 정규직으로 고정급을 받는 인력은 조사대상의 1.3% 뿐이고, 나머지 인력들은 대부분 작품별로 계약하는 임시직이었다. 2003년 현재 비정규직의 규모가 약 55%이고 영화산업이 속한 오락․문화․운동․서비스업종도 약 69%인 점을 고려할 때, 현장 제작인력들 중 90%이상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다는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 혹은 상품이 대박을 터트렸다고 해도 정작 그것을 만들었던 노동자들은 비정규적으로 노동을 제공하므로, ‘태극기 휘날리며’가 남긴 781억원의 흥행 수익(04년 4월 5일 현재)에 기뻐할 이유가 없다. 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수익의 규모가 커진다 해도 유연화된 노동시장의 노동자들은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고용되고 해고될 뿐, 이미 분배에서는 제외되어 버리는 신자유주의 모순의 첨단에 영화스탭들 역시 서있는 것이다.

영화스탭의 처우와 관련된 이러한 불합리를 고발하는 글이 2001년 영화진흥위원회 자유게시판에 ‘비둘기’라는 필명의 한 시나리오작가에 의해 올려졌고 영화스탭들의 목소리 내기는 시작되었다. 이후 현장에서 불합리함을 몸소 느끼고 있었던 많은 이들의 참여로 ‘비둘기 둥지’라는 온라인모임이 만들어졌고, 2001년 대종상 영화제 행사장 앞 피켓팅을 시작으로 비둘기 둥지는 영화스탭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토론과 실천의 구심이 되었다. 이제는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소개되어 꽤 알려진 ‘비둘기 둥지’의 운영진과 회원들은 그간 쌓인 경험을 토대로 영화스탭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서 노동조합의 설립에 대한 어느정도의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외형상 온라인 모임에 불과한 ‘비둘기 둥지’의 역할에 대해 신중히 고민하고 있다고 고병철씨는 말한다. “아직은 제작 파트별로 조직되고 성숙해야 될 단계인 것 같아요. 그리고 각 파트들의 연합체를 만들고 그리고 난 후에 노동조합이라는 형태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비둘기 둥지’는 전체 흐름을 조망하면서. 파트별 협회체계가 단순한 이익단체의 수준에 머물지 않도록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일터>가 TV방송사의 연예프로그램들처럼 제작 중인 영화에 대한 광고매체의 역할을 해낸다면 영화제작사측에서 취재요청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리가 ‘없을’ 관계로 이번 취재에서는 영화스탭들의 일터에 직접 가볼 순 없었다. 다만 영화에 처음 발을 들여 놓고 수년간 조명부 스탭으로 일했던 고병철씨의 얘기를 통해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조명부는 새벽6시에 집합해요. 기본장비만 2톤 정도가 되는데 현장에 도착하면 5명이서 그걸 다 내리죠. 낮 촬영이 시작되면 조명부가 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낮에는 더 많은 조명이 필요할 경우도 많기 때문에 촬영 전에 셋팅을 하죠. 그리고 해지면 또 조명부가 먼저 밤 촬영 현장으로 가서 세팅을 해놔야 해요. 건물 위에 조명을 설치해야 될 때는 무거운 조명기들을 직접 건물꼭대기까지 올려야 돼요. 건물과 건물사이의 길에서 밤 촬영할 때가 제일 싫어요.”

“제작비를 아껴야 되기 때문에 한 번 촬영하면 보통 24시간을 계속 촬영하죠. 특히 새벽 4~5시쯤, 해가 뜨려고 하면 다들 급해져서 제일 힘들고 피로도 밀려올 때라 사고위험도 높아요. 그리고 동트면 다들 돌아가고 조명부만 남아서 조명장비 정리해서 차에 싣고 운전해서 숙소로 가죠. 졸음이 밀려오는 때라, 저도 운전하다 한강에 빠질 뻔한 적도 몇 번 있어요.”

그의 얘기 속엔 빛을 다루는 예술로서 조명은 없었다. 가혹한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노동자, 세상을 표현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매력적인 매체인 영화에 대한 열정만으로 그것을 감내하는 젊은 노동자가 있었다. 그의 얘기 속엔 예술적인 관점을 가지고 영화를 제작하는 제작자는 없었다. 영화에 대한 뜨거운 애정만을 가지고 노동하는 이들의 노동은 물론 꿈까지 착취하는 장사치들, 진정한 ‘착취의 제왕’만이 있었다.

‘비둘기 둥지’의 자유게시판에서 발견한 글. 어느 예비 영화인이 ‘나도 곧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제목으로 쓴 글의 일부이다.

우리도 얼른 영화인 노조 만들고 힘 키워서 노동절대회 나가면 발언도 하고 단체행동도 하고 영화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세상 만들어야 할텐데. 더 이상 과 선배들이 농담처럼 새내기들 붙잡고 이런 얘기 안하게…
“너 돈 많냐?”
“아뇨”
“니네 부모님 부자냐?”
“아뇨”
“근데 영화과 왜 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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