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월/기획1] 스크린도어로 기관사 정신건강을 보장할 수는 없다

일터기사

[기획1]

스크린도어로 기관사 정신건강을 보장할 수는 없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실

(intro)
도시철도기관사들의 정신건강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03년 8월 두 명의 기관사가 공황장애로 목숨을 잃은 이후, 특별한 두 명의 문제가 아닌 전체 도시철도, 혹은 지하철 기관사 노동자의 문제라는 것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실태와 이에 대한 대책을 밝히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도시철도는 동종업종에 비해 60% 정도의 실질적 승무인원이 적은 상태이다. 도시철도공사 설립 이후 10년간 진행되어 온 구조조정으로 운행구간은 늘어난 데 비해 인원은 충원되지 않았고, 2002년 말에는 1시간 연장운행까지 강요당한 것이다. 1인 승무의 문제점을 제기하면 오히려 ‘무인운전도 가능하다’는 협박까지 서슴치 않았던 공사의 태도,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철저한 현장통제들이 공사에게는 ‘고객만족도 4년 연속 1위’라는 훈장을, 노동자들에게는 정신건강장애와 각종 건강장애로 나타난 것이다.

편집실에서는 도시철도 노동조합 승무본부 개화산지부 정훈 지부장을 만나 기관사들의 노동조건과 문제점에 대해 들어보았다.

“많은 분들이 기관사 일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거랑 공황장애랑 별개 문제거든요. 실제 본인은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고 있는데, 잘 모르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공황장애로 산재승인을 받은 기관사는, 직업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부분은 없는데 아무리 출근시간이 빨라도 꼭 5분전에 눈이 떠진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시간에 대한 엄청난 스트레스거든요. 일반 직장인처럼 출근시간이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마다 바뀌어요. 진짜 365일 동안 똑같은 출근시간대가 거의 2-3번 있을까 말까 거든요. 그런 분들이 진짜 많습니다.”

단 1명의 기관사가 운전, 출입문 개폐, 사고 처리까지 책임진다.

“출근시간에는 수천 명이나 되는 승객들을 나르고 있는데, 이 일을 혼자서 하고 있다는 거죠. 열차가 자동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는 하지만 운행에 관련된 모든 업무들, 서울지하철 같으면 차장이 하는 출입문 취급까지의 역할을 다 하고 있고요. 앞에 누가 뛰어들지 모르는 돌발상황에 대해서 전도 주시를 하고, 열차 운행간격, 시간 이런 것들 전부 다 조정을 하고요. 고장이 나거나 했을 때도 모든 걸 혼자 다 한다는 거죠.”

특히나 도시철도는 운행구간의 대부분이 지하이다. 기관사 홀로 몇 시간씩 지하터널을 지나다니며 열차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철도는 운행구간 대부분이 지하예요. 특히 5호선은 운행구간이 굉장히 열악하다고 소문이 났거든요. 한 번 운행을 하면 3시간 동안 운전실에서 꼼짝을 못해요. 한 번 3시간 갔다가, 잠깐 쉬고, 또 3시간 운행을 하거든요. 터널 속에서 혼자 6시간을 가만히 있어야 된다는 거죠. 이 차가 과연 고장 안 나고 무사히 운행을 마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걱정을 하면서 운행을 시작하죠. 또, 탈 때 막막해요. 3시간 동안 컴컴한 터널 안에서 혼자 다 해야 되니까요. 특히 두 바퀴라고 3시간 타고 쉬었다가, 또 3시간 타는 근무일 때는 두 번째 탈 때는 진짜 정신이 몽롱하고 아무 생각도 없어요. 서울지하철이나 철도에서 오신 분들은 지하에서 일할 때가 2배 정도 더 피곤하다고 그러더라고요.”

정해진 열차를 타지 못하면 동료가 그 차를 계속 운전해야 하는 결승사고가 된다. 3시간 지하 운전을 하다가 쉬지도 못하고 다시 3시간을 돌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 그래서 기관사들은 자기가 타야 할 열차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수시로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이 저희 같은 경우는 특히 심합니다. 쉬는 시간에도 몇 번이고 시간표 보고 시계 보고 그러거든요. 여기 근무하시는 분들도 다 알람 맞추고 시계 보고. 사람이 일을 하다보면 가끔 시간을 놓칠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이 한 번 발생하면 그 사람을 기관사 자격도 없는 식으로 매도를 해요. 그런 게 싫어서 사람들이 더더욱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을 많이 갖죠.”

사고의 경중과 상관없이 10분 안에 처리해야 한다.

“자동운전이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문도 안 열리는. 그러니깐 직접 자기가 운전을 하고, 문도 자기가 직접 열어야 되거든요. 또 그런 경우는 차가 많이 밀려서 승객들도 많아요. 열차무선이라고 안에 전화기가 있는데, 고장난 열차이기 때문에 사령에서 집중적으로 계속 물어요. ‘열차 상태가 어떠냐, 한 번 또 조치해봐라’는 식으로. 그러니깐 정신이 없어요. 그런 고장은 흔히 나는 고장이에요. 한 번씩들 겪는.”

일단 사고가 나면 사고의 종류, 규모와 상관없이 기관사들은 10분 안에 모든 조치를 취한 후 열차를 출발시켜야 한다.

“출입문 사고는 기관사 100%가 당해봤다고 장담하거든요. 그리고 열차 고장도 100% 다 당해봤어요. 사상사고도 상당히 당해봤고요.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몇 분만에 처리해서 차를 몇 분만에 출발시켰냐’ 이런 걸 엄청나게 따져요. 규정상 보면 조치를 못해서 차가 10분 이상 서있으면 경위서를 써야 된다는 말도 안 되는 규정이 있어요. 고장이 무엇이냐에 상관없이 10분 이상 서있으면 중대사고니까 써야 된다는 식이죠. 그러니깐 기관사들이 문제나 고장이나 사고가 생겼을 때 시간에 엄청나게 신경을 써요. 만약 여유를 가지고 했으면 충분히 조치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도리어 당황해 가지고 잘못 조치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더 큰 사고로 발전하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거든요. 빠른 시간 안에 조치한 기관사는 훌륭한 기관사라는 거죠. 열차가 만약 안 달리면 민원이 들어오잖아요. 그걸 무서워하는 거죠. 공사에서 얘기하는 ‘도시철도는 깨끗하고 안전하고 시간을 잘 지킨다’는 이미지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거든요. 차가 문제가 있으면 차를 바꾸는 게 아니라 오로지 기관사를 쫌으로써 이미지를 유지시키려 한다는 거죠.”

모든 기관사들이 차를 탈 때마다 사고가 일어날까 두려워하지만,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조치는 취해지는 것이 없다. 잦은 열차 고장에도, 취해지는 조치란 기관사의 경위서 쓰기뿐이다.

“사상사고는 3일 동안 휴가를 줍니다. 사상사고 외에는 쉬는 사고 하나도 없어요. 그냥 욕먹고 경위서 쓰고 차 타는 거예요. 큰 사고면 감사실도 불려가고, 안전방지실도 불려가고 운행은 계속 하는 거죠. 사고 겪고 나면 사람들이 굉장히 위축되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고나 고장은 기관사 본인의 책임이 아니거든요. 차량의 고장이라든지 사상사고 같은 경우도 그렇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관사들이 죄책감을 가지고, 자신을 비하시키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건데,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이 회사가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러니깐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을 일으킨 사람이기 때문에 경위서를 쓰는 거예요.”

달리는 열차에서 각종 훈련까지

“FTX라고 실제 운행하고 있는 열차에 어떤 상황을 부여하는 훈련이 있었어요. 화재가 났다든지 무슨 고장이 일어났으니 조치를 해라고 가정해서. 엄청 스트레스 받아요. 그런 상황이 되면 아는 것도 제대로 이야기 못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럴 때 근평으로 올라갈 때도 많고요. 작년에 한 기관사는 야간근무를 나왔는데 휴게실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길래, 문을 열었더니 식은땀 흘리면서 얼굴이 창백하고 그랬던 경우가 있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깐 정신분열 초기증상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도 전날에 FTX 했거든요. 작년에 공황장애로 돌아가신 기관사도 바로 그 전날 FTX를 했어요. 실제 기관사들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아요. 못하면 기관사의 자질이 떨어지는 것처럼 매도를 하거든요. 관리자들이 ‘차는 자동으로 간다, 니네들은 고장처치라도 잘해야 된다’는 얘기를 얼마 전까지도 하고 다녔어요.”

노동조합에서 FTX훈련을 막아내긴 했지만 공사는 FTX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기관사의 사고 대처능력을 시험하려 한다.

“가끔가다 공사에서 웃긴 짓을 많이 해요. 얼마 전에 답십리에서 민방위날 기관사의 대처능력을 시험해본다고 아무 얘기도 없이 차에 타 가지고 뒤쪽 기계 스위치 하나를 내려버린 거예요. 일부러 고장을 낸 거죠. 달리는 차안에서. 그리고는 고장처치를 제대로 못했다고 경위서를 쓰라고 한 적이 있었거든요. 운행하는 열차에 그런 식의 실험을 한 거죠. 진짜 무지막지한 일을 저지른 거죠. 잘 달리던 열차가 갑자기 삑삑 소리 나면서, 고장표시가 뜨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결국은 2인 승무 아닌가

계속되는 열차 사상사고에 스크린도어가 안전대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그걸로 기관사들의 정신건강까지 보장할 수 있는 걸까. 정훈 지부장은 2인 승무가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힌다.

“스크린도어는 안전대책이 맞아요. 기관사 스트레스를 감소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해요. 하지만 시민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을지라도 기관사들이 겪고 있는 공황장애에 대한 대책은 아니죠. 공황장애는 단지 사상사고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지하근무환경, 소음, 1인 승무, 현장통제와 공사의 강압적인 태도들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하는 거라고 보고 있거든요. 여러 가지 문제가 많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국은 2인 승무가 아닌가. 결국은 사람 일이니깐 사람밖에 없는 거고. 어떤 문제가 났을 때도 해결할 수 있는 건 사람밖에 없는 거고요. 나 혼자만이 아닌 나를 도와줄, 내가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는 건 그 사람에게 심적인 안정을 줄 수 있다고 보거든요. 저희는 운행할 때 퇴근하는 사람 붙잡고 음료수 사주면서 내 차 타고 어디까지 가자 이런 얘기 많이 해요. 혼자 운행한다는 게 두렵고 힘들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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