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월] 보건의료산업노조의 가장 작은 지부, 새양산병원지부의 투쟁

일터기사

[현장통신]

보건의료산업노조의 가장 작은 지부, 새양산병원지부의 투쟁
양산노동민원상담소 소장 이보은

‘새양산 병원’은 지난 99년 10월에 건립하여,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단 2년만에 대출금을 갚았다는 소문이 날만큼 대단한 흑자를 낸 병원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만한 내막이 있었다.

초고속 성장, 그 뒤엔 저임금으로 고통받은 직원들의 피와 땀이 숨어 있다.

당시 최저생계비(월 47만여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에 상여금 체불, 년차휴가도 사용하지 못했고 ‘취업규칙’도 없었기에 병원장의 말이 곧 법이었다.
2001년 4월 병원장은 대단한 호의를 베풀듯이 ‘임금을 올려주겠다’고 했으나 기본급의 10%도 아닌 겨우 1%를 인상해 주는 등 노동자들을 기만하였고, 열악한 근로조건과 병원장의 독단적인 경영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2001년 10월 드디어 노동조합원을 세우게 되었다. 10월 12일 노조설립 보고대회를 가지고 36명의 조합원이 가입을 하자, 병원측은 응급실을 폐쇄하면서 간호사들을 3층으로 인사발령을 하고 조합원들에게 잦은 부서이동을 단행하였다.

노조와의 성실한 대화를 거부한 채 행정부장이 지부장을 폭행하고 병원장은 “노조 있는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 민주노총 탈퇴해라. 누구누구는 노조에서 빠져라”며 노조 탈퇴를 강요, 협박하였고, 2001년 12월 12일 일방적인 휴업 공고를 붙였다. 이에 격분한 조합원들이 병원 로비로 들어와 시위를 하자, 그 자리에서 바로 공고문을 고쳐 12월 12일부로 ‘휴업’에서 ‘폐업’으로 고쳐 위장폐업을 단행하였다.

그 이후 노동조합은 위장폐업 철회를 요구하며 단전, 단수된 차디찬 병원 로비에서의 89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에 병원장은 단전, 단수에도 모자라 셔터문, 경보기, 카메라 등을 설치하고, 농성장에 난입하여 깃발을 찢고 선전물과 잠자리로 쓰고 있던 스티로폴을 깨부수는 등 극악무도하게 탄압하였다.

여러 차례 교섭과정에서 병원측은 산별노조 탈퇴와 조합원 범위축소, 순환근무제 도입, 부서이동 인정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였다.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조합원은 13명으로 줄어 힘겨운 투쟁을 전개하다가 89일만인 2002년 4월 1일 노사간의 합의를 끌어내 재개원에 이르게 되었다.

계속되는 부당노동행위, 집요한 탄압

재개원 이후 노조에서는 노사관계가 원만히 정립될 수 있도록, 환자 유치를 위한 캠페인을 수행하고 체불임금 2천만원을 반납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며, 노조에 대한 병원장의 태도변화를 기대하였다. 하지만 노동자의 이러한 노력을 무시하고, 더 노골적으로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끊이지 않는 폭언, 폭행과, 노사협의회 선거에 직접 개입하여 노노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등 비인간적인 처사를 일삼아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여 왔다.
나이어린 조합원에게는 “이 병원에서 일하고 싶지 않나? 계속 일을 하려면 행동을 알아서 해라”라며 협박하였다. 식당게시판에 “노동조합 알림판”이라는 팻말을 붙이자마자 원장이 팻말을 직접 떼서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조합사무실에 붙여놓은 대자보도 원장이 떼어내는 것은 예사로 자행되었고, 방사선과 실장이었던 노조 지부장을 직위해제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멱살을 잡고, 뺨을 때리는 등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해고시켜 버렸다. 수간호사인 부지부장도, 아무도 상주하지 않은 공급실로 인사발령 시키고는 외부인 출입금지 간판을 붙여 고립시키다가 정직 2개월, 대기발령 등 징계조치시키고 사무장에게는 오후와 밤근무로 편중해서 근무편성을 하는 등 조합원에 대한 심각한 차별대우를 하여 노동조합의 씨를 말리려고 하였다.

새양산병원지부는 노조를 설립한 지 2년 가까이 되었으나 단체협약조차 체결되어 있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지부장 해고, 수간호사와 부지부장 3교대 근무명령, 조합원에게는 유급휴가, 여름휴가 박탈, 병원장의 폭언과 횡포에 시달렸다. 노동조합은 2003년 8월 23일 단체협약체결을 위한 파업투쟁을 선포하고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당시 조합원 3명에 해고자 1명이 출발한 파업투쟁은 5개월을 맞는 150일차에 노동부 근로감독과장, 근로감독관2명, 정보과 형사까지 참관한 자리에서 단체협약 조인식을 가지고 정리되었다. 그리고 이 파업투쟁 과정에서 지부장이 중노위 재심청구 기각되어 당시 부지부장이 지부장이 되었다.

병원장의 부당노동행위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더 유치해졌을 뿐이다.

병원장은 노조를 파괴하는 조건으로 관리자를 채용하고는 노조에 대한 서슬 퍼런 탄압의 칼날을 겨누고 있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13년차 베테랑 수간호사임에도 신임간호사로 인사발령을 받고, 심지어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의 생명이 위급한 와중에서도 지부장은 흔들리지 않고 굴함 없이 싸워나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민주노조 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의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철의 노동자를 외치며 수백명이 달려들어도 고작해야 석 달만 버티면 한결 순해져서 다시 그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우리가 얼마나 같잖았겠습니까?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린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음으로 깨지는 겁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 김주익열사 투쟁집회장에서 김진숙동지가 외치던 절규를 파업기간 내내 외우다시피 읊조리며 자신을 가다듬던 지부장과 조합원들은 아직도 자신의 자리를 힘겹지만 씩씩하게 지키고 있다. 그리고 병원측의 폭언, 폭행, 해고, 접근금지 가처분 등의 비인간적인 처사로 극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의 고통을 안고서도 1년 7개월 가까이 꿋꿋이 버티고 있다. 그들의 고단한 투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남단의 조그만 중소도시 양산에서 나부끼는 새양산병원노조 깃발 뒤에는 4명 노동자의 치열한 투쟁과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와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헌신적인 연대가 있었다. 그러나 조금은 소원해진 지금, 그 깃발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4명의 노동자에게 우리의 연대가 얼마나 강고한가 돌아보고 다시 한 번 연대의 대오를 정비해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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