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월] 어린아이처럼 그림을 그리자!!

일터기사

[문화마당]

어린아이처럼 그림을 그리자!!
김병돌

(편집자주 : 이 글은 김병돌님께서 참세상방송국 ‘김병돌의 그림세상’에 게재하셨던 글을 필자의 허락 하에 옮겼음을 밝힙니다.)

나는 그림 그리기가 두려웠다.
먼저 무엇을 그려야 할지도 몰랐고, 그 표현기술도 미숙하여 제대로 된 멋진 그림이 나올 것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노동자 그림반을 꾸려나가고 있었지만 내가 그려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이 잠자는 모습, 남편 공부하는 모습, 친구 밥 먹는 모습, 야외스케치, 정물화 등을 그릴 수 있을 뿐이었다. 물론 이것은 기술습득 과정이어서 불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림은 단순히 기술습득의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자체가 그림이긴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그림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왜냐면 이 그림 속에는 그림을 그린 ‘나’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지, 내 삶의 느낌이 쏙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깨달았다. 그림이 무엇인지, 왜 예술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었는지를. 그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이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자신의 안을 깊이깊이 성찰하지 하지 않으면 끌어낼 수 없는, 충분한 내면의 고뇌를 거치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고도의 추상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우지 않은 우리 노동자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것일까. 나는 어려운 작업이지만 쉽게 접근해야 됨을 또한 깨달았다. 먼저 자신의 기대 수준을 낮출 것. 당연히 숙련이 덜 되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미숙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 기술에 연연해하지 않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세련된 기술이 없는 대신 자신만이 그려낼 수 개성이 있고, 자신의 생각, 내용을 가진 장점이 있다. 해서 어설픈 제도교육의 습득으로 그려내는 그림보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남아있는 순진한 그림들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자신의 공장생활을 그려내고, 자신의 투쟁을 형상화한 그림은 비록 표현에서는 서툴렀지만 얼마나 정감 있고, 그 노동자가 그 속에 있고, 그 자체로서 작품으로의 완성감이 있었는지 내가 느낀 그 환희는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 물론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매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 단점을 뒤덮고도 남음이 있는 우리 노동자들만의 위대한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우리 노동자가 그려낼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내가 이러한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작은 소모임인 노동자 그림반을 해오면서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깨달음이다. 막연히 제도 미술교육에 대한 항변을 하고 있었지만 정말 나에게는 대안이 없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막무가내로 꾸려왔던 노동자 그림반이지만, 새롭게 꾸려질 미술운동의 맹아가 되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천천히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가려 한다. 또한 미술운동에 뜻이 있는 노동자, 미술인, 학생들이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4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