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월/특집3] 학습지, 부당영업 강요하며 사람 목숨 앗아가

일터기사

[특집3]

학습지, 부당영업 강요하며 사람 목숨 앗아가
– 동료교사들의 노조결성으로 이어진 구몬학습 이정연교사의 과로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실

가라과목 떠안고 스트레스로 과로사한 학습지교사

지난 4월 19일 구몬학습 동울산지국에서 4년간 학습지 교사로 일해온 이정연(28세)씨가 호흡부전, 경련으로 병원에 입원한 지 사흘만에 사망했다.

고 이정연교사가 담당하던 과목을 인수인계 받던 중 동료교사들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정연교사의 담당 과목은 204개 과목이었는데 동료교사들에게 실제 인수인계된 과목은 47개 과목이었고, 확인해보니 이 중 150개 과목 이상이 속칭 ‘가라(회비대납회원)’였다. 이정연교사는 250만원 가량의 월급을 받으면서 매달 400만원이 넘는 돈을 회사에 가라과목의 회비로 대납했고, 결국 1500만원의 빚을 떠맡게 된 것이다. 관리자와 면담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동료교사들에게 ‘너무 힘들다’고 울며 하소연하던 이정연교사는 결국 회사측의 강요에 의해 퇴회 과목을 정리하지 못한 채 극심한 스트레스로 더 이상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소중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사실 학습지의 가라과목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구몬 뿐 아니라 재능, 대교, 튼튼영어 등 대부분의 학습지회사에서는 실적을 빌미로 교사들의 퇴회 처리를 강제로 막는다. 구몬 동울산지국만해도 교사 1인당 20-30개의 가라 과목을 가지고 한 달에 70-80만원을 회사에 대납해야 하는 상황이며, 재능 창원지부는 10여명의 교사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가라회원만 380개가 되어 약 1000만원의 돈을 교사들이 대납하고 있다.

한 교사의 죽음이 노동조합 결성으로 이어져

이정연교사의 죽음 이후 숨겨진 사실들을 하나하나 밝혀내던 구몬학습 교사들에게 회사측은 ‘다이어트를 심하게 해서 죽었다, 소녀가장이어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며 책임을 회피하는가 하면, 이를 계기로 교사들이 자주 모임을 갖고 노조 결성을 준비하게 되자 ‘교사들 모임에 누구누구 왔었냐’고 캐묻고 노조 지회장 선거까지 막고 나섰다.

하지만, 회사측의 이런 태도들은 오히려 교사들의 분노를 샀고, 교사들은 ‘철저한 진상규명, 사측의 공개사과,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상적용, 노동자성 인정, 유족보상’ 등을 요구하며 노조 집단가입을 추진해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구몬지부 울산지회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울산산추련 현미향 사무국장은 “교사들이 처음에는 분노해서 참여하다가 지금은 자기 문제로 생각해요. 자기가 갖고 있던 가라과목들을 당당하게 털고 이야기하는 분위기고요. 분회별로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모인다고 하더라고요. 11시, 12시까지 일하고 새벽 1, 2시까지 회의하고, 이번에 단합대회도 해요.”라고 상황을 설명한다.

이정연교사의 유족은 수업 중 뇌출혈로 쓰러졌던 구몬학습 황순길교사와 함께 지난 7월 16일 근로복지공단 본사에 각각 산재보상과 산재요양을 신청했다. 현미향 사무국장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이잖아요. 현재 산재보상대상이 안 되는데 정식으로 산재신청을 하기로 했어요. 반려되면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산재 적용하라는 요구를 갖고 싸울 거고요.”라고 이번 산재 신청의 의미를 밝힌다.

노동자성 인정 등 무수히 남은 과제들

회사의 온갖 책임회피성 발언과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교사의 죽음은 동료교사들의 노력과 유족의 결연한 의지 속에 부당영업에 의한 스트레스로 인한 과로사라는 점이 밝혀졌다. 하지만, 학습지 교사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이교사의 경우도 업무상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한 사망이라서 산재로 인정받아야 당연하나 특수고용노동자는 현행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학습지 교사를 포함한 특수고용 노동자 일부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할 것이 고려, 혹은 추진 중임을 알고 있다. 고 이정연교사와 황순길교사부터 당장 적용하라! 또한 산재보험 적용만으로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인간답게 살 권리, 건강하게 노동할 권리를 온전히 보장할 수 없다. 회사에 소속되어 회사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학습지 교사를 개인 사업자로 분류하는 것은 오로지 회사의 편의와 이윤만을 위한 것이다. 학습지 교사의 노동3권을 인정하라!”
– 7월 16일 학습지 교사 산재보험 신청 기자회견문 중 –

이교사의 과로사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그리고 또 다른 학습지 교사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 남은 과제들이 많다. 이번 산재신청에 대한 승인부터 시작해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산재 적용, 더 나아가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3권 인정까지. 하지만, 동료교사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모였던 교사들이 이제 자신의 문제로, 전체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문제로 싸우기 시작했다. 이제 노동조합 결성으로 그 첫걸음을 띤 그들의 투쟁이 산재승인, 그리고 더 나아가서 노동3권 쟁취까지 나아가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2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