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월/특집4] 과로사 대응, 어떻게 할 것인가?

일터기사

[특집4]

과로사 대응, 어떻게 할 것인가?
울산 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 현미향

다시 현장에서 반복되는 과로사

지난 5월 이래 현대자동차에선 5명이 노동자가 과로사(추정)로 죽어 갔다. 엔진사업부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고, 4공장 사업부 63세 늙은 노동자가 출근하다 쓰러져 죽고, 모비스 공장 36살 하병웅 노동자가 주간 근무 후 집에서 자다 죽고, 공작기계 정규직 노동자가 작업하다 죽고, 중형엔진부 정규직 노동자가 집에서 자다 운명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만 5명의 노동자가 두 달 사이에 운명을 달리했다.

98년 8명, 99년 5명, 2000년 15명, 2001년 14명, 2002년 17명.

98년 8명, 99년 5명, 2000년 15명, 2001년 14명, 2002년 17명. 이것은 현대자동차에서 과로사로 사망한 수치이다.
주 5일 근무를 실시하고 있지만 실질 노동은 주 6일 근무. 14시간 철야특근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주 60시간 이상의 노동이 계속되면서 과로사 사망 수치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과로사는 현장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채 장례가 치루어지고, 노조나 노동보건운동단체의 지원 속에서 장의비, 유족 급여 지급 신청으로 이어지고,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점점 잊혀져 간다. 유족이나 노조가 사측에 책임과 보상을 요구할라치면 회사는 ‘근로복지공단 결정이 나 봐야 안다’, ‘개인이 건강관리를 잘못한 것 아니냐’며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지 않는다. 중대재해에 꽤 대응력이 있는 노조들도 과로사만큼은 유족을 지원하여 유족보상 서류를 만들고 지원하는 일로 거의 지원활동을 마감한다. 하루아침에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심각한 문제인데 조직적 대응은 참 어려운 경우이다. 하지만 그간 숱한 과로사를 겪으면서 울산지역에서 과로사문제를 조직적으로 대응했던 두 가지 경우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는 진행이 끝났고 하나는 진행 중인데, ‘과로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던져 주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현대자동차 과로사 투쟁 경험

2002년 9월 28일 현대자동차 1공장 의장부 정만호 조합원이 야간 근무 도중 아침 6시 50분경 쓰러져 울산대학병원에 이송되었으나 당일 ‘고혈압, 뇌간출혈, 뇌간마비’로 사망한 일이 있었다. 고인의 근무형태는 주, 야 맞교대로 통상 근무시간은 정취근무 8시간과 연장근무 2시간이었다. 사망 전 3개월간(88일 기준)은 11일의 야간 특근(7월-5회, 8월-4회, 9월-2회)을 했고 하루 평균 10.5시간 중노동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사측은 고인이 쓰러진 당일에도 철야 특근을 강행하겠다 하여 조합원들로부터 빈축을 샀다고 말했다. 고인이 사망하자 승용1공장 조합원들은 바로 9월 28일 토요일 철야특근을 거부했고, 9월 30일부터 잔업을 거부하며 규탄집회를 가졌다. 현대자동차에서 과로사 발생 후 사업부에서 조직적으로 잔업과 특근을 거부하며 추모집회를 갖기는 처음이었다. 그 후 유족은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에 장의비, 유족급여 지급 신청을 했다. 하지만 고인의 죽음은 12월 17일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에서 업무와 관련이 없다며 장의비, 유족급여 부지급 판정을 받았다. 이에 당연히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판정을 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던 현장 조합원들은 분노해서 12월 27일 잔업 거부, 철야특근 거부, 규탄집회를 진행하였다. 대의원과 소위원으로 구성된 <고(故) 정만호 조합원 산재승인 쟁취를 위한 승용1공장 대책위>를 만들고 노동조합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산재인정투쟁에 결의를 모으기로 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들이 모색되었다. 승용1공장 대책위는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 앞 200여명이 참여하는 항의집회와 항의면담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고, 사측에도 잔업거부와 특근거부로 맞대응했다. 생산 차질에 압박을 느낀 회사는 1공장 공장장에게 직접 탄원서를 작성하게 해, 근로복지공단 본부에 제출하게 하는 일까지 벌어졌고, 여기에 조합원들의 연대서명과 연대탄원서까지 제출하여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는 심사에서 마침내 장의비, 유족급여 지급 결정을 받아냈다.

고(故) 정만호 조합원 산재인정투쟁은 그간 유족보상 지원 위주의 과로사 대응방식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승용1공장 조합원들은 근로복지공단 산재 결정 이전에 사측에게 과로사를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과로사가 잔업, 철야특근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잔업, 철야특근 거부로 회사에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고 분노를 표출했다. 더욱이 산재불승인 이후 조합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대책위의 조직적 대응은 회사와 근로복지공단을 압박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생산에 대한 압박을 통해 산재승인 과정에 회사가 실질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이 투쟁으로 과로사에 대한 조합원들의 관심과 인식은 높아졌고 이후 1공장 사업부내에서 과로사문제는 조직적인 대응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비록 과로사를 발생시키는 근본 원인의 해결로까지 나가지는 못하지만,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투쟁의 경험이었다.

과로사를 계기로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진상규명에 나선 구몬 학습지 노동자들

지난 4월 19일 구몬 학습지교사였던 28살 이정연 노동자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빈맥과 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 학습지회사의 부당한 영업 강요에 시달리다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하는 상황에서 눈을 감았다. 며칠이 지난 후 이정연교사의 관리과목을 인수인계 하던 후임교사들을 통해, 실제 살아 있는 관리과목이 47과목 뿐이고 나머지 과목은 소위 ‘가라(회원이 없는 과목)’ 과목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매달 400만원의 회비를 고인이 대납해왔던 사실을 확인하고 동료들은 웅성거렸다. 그 와중에 다른 지국에서 관리자들이 고인의 죽음에 대해 ‘다이어트 하다 죽었다’, ‘소녀 가장 이었다’라는 말을 유포하며 고인의 죽음을 왜곡, 은폐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교사들이 분노했다. 교사들은 관리자들에게 면담을 요구하고, 따지고, 확인하고, 관련 자료를 모았다. 울산지역 선임교사들은 빈번하게 서로 만나, 사측의 파렴치한 태도를 비판하고 대책을 마련하자는 의견들을 모았다. 울산지역 구몬학습에는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조합원이 한 명도 없었는데 자연스럽게 노조에도 연락을 해서 도움을 요청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고인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추모제를 6월 26일 울산대공원에서 갖기도 하였다. 추모제는 동료교사와 유족의 편지글, 대교 학습지교사의 부당 영업사례 발표와 추모, 고인 사망 이후 경과보고 등으로 구성되었고, 같이 울고 분노하는 자리였다. 추모제를 전후하여 동료교사들은 구몬학습지 울산지회를 결성하고 100여명의 교사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참고로, 울산지역 구몬 학습지 교사는 140여명이다) 그리고 그들은 요구한다. 철저한 진상규명, 공개사과와 부당 영업을 강요했던 책임자 처벌, 유족보상 그리고 모든 학습지 노동자를 고통으로 내모는 부당 영업 강요 반대를…

이제 구몬 학습지 노동자들은 고인의 죽음에 대한 분노를 넘어 자신들의 처한 문제를 직시하게 되었고 스스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조합으로 단결했다. 또 그를 통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조직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한 젊은 교사의 죽음이 이제 학습지 시장에 만연한 부당한 영업강요와 전근대적인 노무관리문제, 학습지 노동자들의 건강권의 실태를 사회적으로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7월 16일 전국학습지산업노조는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고(故) 이정연교사와 지난 6월 18일 수업 도중 뇌출혈로 쓰러진 구몬 탄현지국 황순길교사의 산재를 신청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산재보상보험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기에 산재신청은 그 자체로 산재보상보험법의 한계를 지적하고 모든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 적용대상을 확대하라는 절박한 요구이기도 하였다.

현재 고(故) 이정연교사의 과로사 인정 투쟁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미 이 투쟁은 절반의 승리를 얻어냈다. 과로사 진상규명 투쟁이 노조 결성으로, 학습지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요구하는 투쟁으로, 자신들의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는 투쟁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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