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월] 혼자만의 산재신청, 힙겹게 싸워 이기다

일터기사

[현장통신3]

혼자만의 산재신청, 힘겹게 싸워 이기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실 이민정

아직 포기하지 않은, 첫 번째 산재신청

고된 노동으로 몸이 망가져도 직업병 인정을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산재신청서를 작성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하기까지의 절차도 까다롭거니와, 회사측의 온갖 회유와 협박을 견디는 것도 만만치 않다. 노동조합 간부가 나서서 도와줘도 쉽지 않은 산재신청을 강영숙(52세)씨는 혼자 힘으로 해냈다. 1992년 수도꼭지를 만드는 대림통상에 입사한 강씨는 대의원, 상집 간부, 부지부장까지 지내며 노동조합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회사에서 강씨를 좋게 볼 리 없고, 남자들도 하기 힘든 쇼트보조작업에 배치되었다. 결국 근골격계 직업병이 생긴 강씨는 팔목, 어깨, 팔 그리고 다리까지 온 몸이 아파서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일은 남자들도 6만원씩 수당을 주면서 시켜요. 오른쪽 발끝이 그렇게 아프더라고. 치료해도 점점 심해지고. 그래서 병원에서 산재신청을 해주기로 했어요. 그런데 막상 입원하려고 오니깐 산재담당자가 ‘아프면 회사를 그만둬야지, 회사를 왜 다니느냐. 회사 가서 도장을 받아와라’고 하더라구요. 회사에서 병원에 뭐가 들어간 거예요.”

강영숙씨는 포기하지 않고 노동안전보건단체인 ‘건강한 노동세상’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인하대 산업의학과에서 직업병 소견을 받았다. 그렇게 어렵사리 2002년 12월에 산재신청을 넣었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병명이 정확하지 않다’며 다음 해인 2003년 봄이 되어서야 특진을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방사선/근전도/신경전도 등 온갖 검사를 다 받아 직업병이라는 결과를 받았지만 공단은 결국 산재신청을 불승인했고, 현재 행정소송 중이다.

두 번째 산재신청하자 징계해고 해버린 회사

강씨가 두 번째 산재신청을 하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은 2004년 4월이다. 이번 산재신청도 승인을 받기란 쉽지 않았다. 공단에서는 ‘업무관련성이 있다’면서도 특진을 결정해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7월에서야 자문의협의회를 열어 결정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건강한노동세상’에서 공단 지사장실을 점거해야 했다.

“모래에 약품을 넣어서 금형에다 찍어 가지고 그거를 다듬는 작업을 하게 됐어요. 좁은 방에 약품에, 열에, 금형이 기계 9대에서 쏟아지거든요. 작년 7월 정도 되니깐 입 주위에 볼록볼록 나오더라고요. 알레르기성 피부염이라고 해서 연고를 바르고 지냈어요. 그런데 겨울 되니깐 환기도 안 되고, 나중에는 입까지 부어서 딱 보기에도 너무 심해졌어요. 병원에서 직업병이라고 해서 4월에 요양신청을 했어요.”

부서 전환도 해주지 않던 회사는 한 술 더 떠 강씨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무단결근 등의 사유를 갖다 붙여 해고시켰다. 하지만 회사에서 무단결근이라고 주장하는 기간은 강씨가 산재요양을 하던 기간으로, 해고는커녕 어떤 징계사유도 될 수 없는 사항이었다.

“회사에 다시 들어갈 때 그냥은 안 들어갈 거예요”

두 번의 산재신청을 하면서 강씨가 겪은 고충은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3년 8개월 동안 ‘일할 자세가 안 됐다’며 회사에서 잔업도 안 시킨 데다 지난 5월에는 총 52,000원의 월급을 받았다. 관리자들은 조회 때마다 대놓고 강씨를 들먹거려 동료들이 눈치때문에 강씨와 말 한 번 나누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던 시간을 강씨는 ‘내가 선택한 게 옳은 것이고, 언젠가는 밝혀질 거다.’라는 생각을 하며 버텨왔다. 이쯤 했으면 ‘할 일은 다 했다’고 한숨 돌릴 법도 하지만 강씨는 벌써 이후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아프면 집구석에 있지 왜 나오냐고 대놓고 욕지거리하고 그래요. 그래서 사람들이 아파도 몰래 외출해서 치료받고, 또 다들 팔이 아파서 팔을 못 올려요. 산재 해야 될 사람들이 아마 반은 나올 거예요. 회사에 다시 들어갈 때 그냥은 안 들어갈 거예요. 회사가 노동자를 괴롭힌 걸 꼭 바꿀 거예요. 잔업도 안 시키고 내보내 통근버스도 못 타고 다녔으니 버스비도 요구해야겠어요.”

힘겨웠던 산재승인을 받아낸 강영숙씨의 앞에는 더 힘든 복직투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해나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강씨의 말처럼 다시 현장에 돌아가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을 이젠 현장 노동자의 투쟁으로 이어나갈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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