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월/특집1] 윤필씨, 산재보험 역경기

일터기사

[특집1]

윤필씨, 산재보험 역경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교육위원 김재광

(intro)
1963년 11월 5일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의결/공표되어 1964년 7월 1일이 시행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올해로 시행된 지 만 40년이 되었다. 총 21차의 개정을 통해 보험급여 대상자나 범위가 확대되었다는데 아직도 재해를 당한 노동자에게는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산재보험 구조상의 문제 뿐 아니라, 재해노동자가 산재를 인정받고 모든 보상을 타먹기(?)까지의 과정 역시 쉽지만은 않다. 재해노동자 윤필씨의 사정을 통해 산재보험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눈앞이 캄캄해지다

타워크레인 기사인 윤필씨는 타워파워에 입사해서 만세건설이 시공하는 현장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일하게 되었다. 공사현장에서는 보통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작업을 하는데, 윤필씨는 만세건설 소장이나 반장의 부탁에 사장의 눈치도 있고, 특별수당 역시 무시할 수 없어서 밤 9시나 10시까지도 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던 중 올해 3월 들어서는 다리가 떨려 타워크레인에서 내려오기가 힘든 날이 있는가 하면, 점점 눈이 보이지 않는 등 몸의 이상을 느끼게 되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가까운 내과와 안과를 찾았지만 과로니까 쉬라는 둥, 정밀진단이 필요하다는 둥,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하고 일을 계속하게 되었다. 4월 초.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너무 힘들어서 조퇴하고 집에서 쉬는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한동안 정신을 잃었다. 종합병원에 가보니 병명은 ‘소뇌경색’. 과로로 인해 소뇌로 가는 혈관에 문제가 생겨 팔다리가 맘대로 안 되고, 눈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정신이 들어 병석에 누운 자신을 보자, 윤필씨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요양신청, 이렇게 힘들지는 몰랐다

다행히 뇌경색이라도 몸을 일으키고 걸어다닐 수는 있게 되었다.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타워파워 사장이 전화를 해서 ‘치료비는 걱정하지 말라’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치료비만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일을 못해 임금을 받을 수 없고, 내 잘못도 아니지 않는가. 해서 사장한테 산재보험 처리에 대해 전화를 했다. 그런데 사장은 정색을 하며 실업급여는 타게 해줄 테니 지금 사표를 쓰라는 것이다. 윤필씨,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자니, 병든 몸에 스트레스까지… 정말 힘겹다. 그러나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산재신청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막상 신청을 하려니 어떻게, 어디에 신청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수소문해서 구한 요양신청서는 달랑 한 장인데, 이 많은 사연을 어떻게 적어낼까부터, 사업주 날인을 받을 때 만세건설에서 받아야 하는지, 타워파워에서 받아야 하는지도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터넷 등을 이용하면 이 정도는 알 수가 있었는데,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윤필씨로서는 마치 사막에 덩그러니 놓여진 느낌이다. 맨 처음에는 타워파워에 찾아가서 사업주날인을 받았는데 마침 사장이 없고, 사장의 부인이 있어 운 좋게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사고경위도 친한 사람의 도움으로 요양신청서 말고 별지를 붙여 깔끔하게 만들었다. 이제 되었다 싶어 복지공단에 제출하고 기다리는데 공단에서 전화가 온다. 사업주날인이 잘못 되었단다. 타원크레인도 공사현장의 작업이니 시공사의 도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공사현장에 찾아가서 만세건설 소장을 만나니, 자기가 결정할 것이 아니라고 2-3일 여유를 달란다. 한 이틀 지나니 아니나 다를까 ‘공상’으로 처리하잔다. 타워파워 사장은 자기 사업 망칠거냐며 ‘공상’으로 하자고 떼를 쓴다. 윤필씨, 가뜩이나 힘든데 사업주날인이 없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머리가 어지럽다. 결국 현장소장은 날인을 거부했고 날인이 없는 상태로 다시 신청서를 접수했다. 신청서에는 7일 후 조치로 되어 있으나, 담당자 하는 말이, 사업주날인이 없으니 한 1달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젠장!” 이때가 쓰러진 지 거의 두 달이 지난 5월 말 무렵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여기저기 다니고 했는데 또 한 달을 기다리라니…

산재인정, 되기는 하는 것일까

어찌하겠는가. 힘없는 윤필씨 기다리는 수밖에… 기다리다 보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동료들 말을 들어보니 사고가 아니라서 인정받기 어렵다는 둥, 산재보상법에 과로에 대한 규정이 있어서 이것에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둥, 산재승인 받아도 요양비 전부를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는 둥, 자기 일이 아니니 말들은 부담 없이 잘들도 한다. “아!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그냥 공상을 받을 걸 그랬나…”

한 달이 넘었는데도 공단에서는 기다려보라는 말밖에 들을 수 없다. 사장과 소장은, 확인할 수는 없으나 공단 직원도 액수가 작으니 합의하라고 했다면서 계속 얼르고 달래고. 정말 피곤하다. 일하다 과로로 쓰러진 것이 이렇게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냔 말이다. 하긴, 그러고 보면 주위에서 종종 산재 인정의 어려움을 듣기는 들었다. 내 일이 아니라서 흘려듣기는 했지만 “과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퇴행성이라 안 된다”, “업무연관성이 없다” 등등. 이런 얘기가 생각나니 참 난감하다. 두 달이 지날 무렵 공단에서 편지가 왔다. 승인통보였다. 아. 정말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고, 눈물이 핑 돈다. 이제 다 되었구나.

산재승인만 나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줄 알았지…

승인이 났지만 그동안 치료비 등은 병원에서 처리할 것은 하고, 약제비 등은 영수증을 모아서 다시 신청해야 한다. 또 보험급여가 모두 되는 것이 아니어서, MRI 촬영 등은 제한 횟수가 있고, 병실 등도 마찬가지여서 얼마나 돌려 받을지, 앞으로 얼마가 들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이건 그렇다 치고 윤필씨 머리에 다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휴업급여’다. 평균임금의 70%이니 만족할 수는 없지만, 얼른 신청해서 받아야 그동안 못 번 것을 그나마 충당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공단에 찾아가니 평균임금을 계산하는데 윤필씨 월급명세서와 통장은 필요가 없단다. 사업주날인이 있는 신청서와 사업주날인이 있는 임금대장을 가지고 오란다. “아니 이런. 젠장할!” 그동안 틀어진 사업주의 얼굴을 또 봐야 하고, 날인을 또 받아 오라니. 현장소장을 찾아가 그럭저럭 도장을 받고 나니 임금대장은 파워타워 사장에게 받아야 한단다. 임금대장을 늦게 주면 늦게 줄수록 윤필씨의 생활은 쪼들릴 것이고, 특근수당을 임금대장에 기입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 씨바, 그때 그냥 공상할 걸 그랬나…” 윤필씨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요양종결 이후에는 어떻게 하나

윤필씨, 걱정이 또 있다. 요양이 끝나더라도 눈이 정상으로 돌아올 지는 모르겠다고 주치의가 얘기한다. 소뇌 경색으로 인해 마치 깨진 거울을 보듯이 사물이 균일하지 않다. 직업이 정밀을 요하는 타원크레인 기사인데, 앞으로 이 일을 업으로 할 수 있을지 두렵다. 알아보니 눈의 장애는 실명, 시력 정도, 시야변상 등이 기준인데, 그 보상이 노동력의 상실을 전부 고려한 것이 아니라서 이후 타워기사 일을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나이 마흔 중반인데 일할 날이 적어도 10년은 더 되는데 이 일을 어쩌나 생각하니 우울해진다.

쓰러졌을 때 산재보험이 있으니 이것이 도움이 되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적은 보상과 과정상의 어려움을 생각하니 가슴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솟아오른다. 그나마 자신은 승인이라도 받았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오죽하겠는가를 생각하니 괜히 미안하고 한숨이 나온다.

재해노동자에 진정 힘이 되는 재해보상은 언제나 가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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