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월/특집2] 치료받는 게 힘드네요

일터기사

[특집3]

치료받는 게 힘드네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위원 신상도

일류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한 김씨 아저씨의 사연

지난 2003년 12월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다리를 헛디뎌 3층 높이에서 추락한 김씨는 허리와 머리를 크게 다쳤다. 인근 병원으로 호송되어 검사를 시행한 결과 뇌출혈 및 두개골 골절, 요추부 척추골 골절 등의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뇌출혈은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아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으나, 허리는 골절 정도가 심하여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아야 할 상태였다. 마침 아들 친구 중에 A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의사가 있어서, 아버지의 치료에 대해 상의를 하였다. 아들 친구는 가지고 간 소견서와 방사선 필름을 정형외과 의사에게 보여 주었다. 환자를 진찰한 의사는 응급수술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리고, 입원하도록 주선해 주었다. 같이 따라온 현장 반장도 이제 한시름 놓게 되었다면서, 회사에 연락을 취하고, 산재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원무과에 같이 갔다.
그런데, 원무과 직원은 A 대학병원은 근로복지 공단과 보험 계약을 맺지 않아서 산재 환자 진료를 하고 있지 않고, 산재환자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집안 형편도 넉넉지 않고, 또 골절도 심하여 수술 후에 후유증이나 장애가 남을 수도 있는데, 산재 처리를 하지 않고 치료하기에는 너무 부담이 컸다. 그래서 친구 의사에게 수술을 잘하는 다른 대학병원이라도 소개해 달라고 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국내에서 가장 좋다는 B, C, D 등 소위 일류병원은 하나같이 산재환자를 받지 않고 있었다. 산재보험에 의해 치료받아야 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이들 일류병원에서 치료받을 기회는 처음부터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결국 김씨는 허리 치료를 잘 한다는 인근 종합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게 되었다.

2인실 병상료는 나더러 내라구요?

허씨 아주머니가 공장에서 일하다가 허리를 다친 것은 1년 전이었다. 당시 물건을 들어올리다가 허리를 삐끗한 뒤부터 늘 허리가 불편하고, 가끔은 아래쪽으로 땡기면서 통증이 심해지면 움직이기조차 힘들곤 하였다. 최근에는 오른쪽 엄지발가락 부분이 잘 안 움직이는 등 걷는데도 많이 불편한 것 같았다. 집 근처 정형외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더니, 허리디스크가 너무 심해진 상태라며 큰 병원에서 수술을 권유하였다.
허씨 아주머니는 너무 놀라고 걱정이 되어 노동조합 대의원에게 상태를 설명해주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였다. 노동조합 산안 활동이 왕성한 회사인데다가, 허씨 아주머니가 지난 해 다쳤을 때 사내 물리치료실을 이용한 기록이 있었기 때문에, 작업관련성 입증은 어렵지 않았다.
허리 수술을 잘한다는 대학 병원을 소개받아서 외래 진료를 한 후에 수술 날짜를 잡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도 해야하고,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자꾸 흉흉한 소문이 도는 차에 혼자 삼남매를 돌보고 있는데 일을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등 허씨 아주머니는 입원을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걱정이었다. 마침 수술 전날이 되었고, 병원에서 입원을 하라는 반가운 전화가 왔다. 원무과에 들려 병실을 확인하니 4층에 있는 2인실 병상이었다. 2인실이면 비싸겠지 하면서도 산재보험으로 진료를 받는다는 생각에, 그냥 입원하여 수술을 받기로 하였다. 그런데 원무과 직원이 하는 말이 상급병상료 차액은 본인이 부담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들어보지도 못한 낯선 단어들이었지만 대충 생각하기에 2인실 병실료 일부를 환자가 부담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알아듣고 얼마나 되는지 물었더니, 하루 1만 5천원 정도를 본인이 부담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술하고 퇴원하기까지 2주는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입원료만도 140만원이 넘는 돈이었다. 허씨 아주머니는 일하다가 다쳐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왜 병실료는 내가 내야 하냐며 통사정을 하였지만 산재보험 규정이 그렇다고 하였다. 화가 나서 입원을 안 할까도 생각하였지만, 같이 간 여동생이 그냥 입원하자고 하여 결국 2인실에 입원하고 말았다.

쫓겨난 박씨 사연

응급실에 실려온 박씨는 2달 전에 공사장에서 추락하면서 목을 다쳐 사지 마비가 된 환자였다. 인근병원에서 2달 동안 입원하여 치료받았던 박씨는 그 병원에서 이제 급성기 치료는 마무리되었으니 다른 요양병원을 알아보라는 말을 한 달째 계속 들어왔다. 박씨 부인이 통사정을 하여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그 병원을 퇴원하게 되었다. 박씨의 진단은 경추 5번 골절 및 척수 마비였으니, 아마도 평생 사지 마비 상태로 살아야 할 처지였다. 박씨 아주머니가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들은 이야기는 이 병원에는 이런 장기 요양 환자를 받을 수 없으니 원래 그 병원으로 가든지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원래 병원에서 쫓겨난 처지에 다시 어느 병원으로 옮긴단 말인가? 더구나 작은 병원들은 박씨가 중환자실 치료를 받아야 하므로 받을 수 없다고 하고, 조금 큰 병원은 급성기 치료는 끝났으니 요양 병원을 알아보라고 하니, 박씨 아주머니는 응급실이 떠나가라 울어내며 세상을 원망하였다. 산재 환자가 입원을 하게 되면 장기 환자가 되니 병원마다 입원을 꺼리게 된다는 게 이유였다. 박씨 아주머니가 응급실에서 3일을 버티다가 결국 다른 병원을 알아보고 퇴원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산재보험은 모든 사업장에서 가입하여야 하는 강제보험이지만 건강보험과 운영, 재원, 대상이 다르게 되어 있는 이중적인 보험체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산재를 인정받는 것도 물론 어렵겠지만, 인정을 받은 후에도 여러 가지 진료 차별과 진입장벽을 맞게 된다. 앞에 예를 든, 김씨, 허씨, 박씨의 사례는 산재보험으로 치료받는 과정에서 흔히 부닥치는 장벽들 중의 일부이다.

산재보험에 따른 요양 치료의 문제점을 정리하면, 첫째 과도한 본인 부담금 문제, 둘째 대형병원 산재보험 계약 회피, 셋째 산재환자 치료거부 등이다.
건강보험에서도 문제가 되는 바처럼 우리나가 의료제도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본인이 치료받을 때 자비 부담이 많다는 점이다. 대략 전체 의료비의 50%를 넘는 돈을 자비로 부담하게 되는데, 산재보험은 건강보험의 보험 적용 규정을 그대로 원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건강보험에서 보험대상이 아닐 경우 산재보험 역시 개인이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병실 차액료(상급 병상 이용료), 초음파 진단, 반복적인 MRI 촬영, 특징 의사 비용 등 엄청나게 많은 개인 부담을 강요받고 있다. 산재보험을 이용해본 노동자라면 누구든 이런 불합리를 경험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좋은 병원들은 산재보험과 계약을 맺고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조금 난이도가 높은 질환을 앓고 있거나 어려운 수술이 요구된다고 하더라도 이들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는 애초부터 봉쇄되어 있다. 지난 1999년 신촌 세브란스 병원이 산재보험 계약을 맺지 않겠다고 발표하였다가 노동자들의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 때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서울대병원, 아산중앙병원, 삼성의료원 등 대부분 일류병원들은 근로복지공단과 산재보험을 체결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계약을 맺고 안 맺고는 병원당사자들 자유라니, 산재보험으로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게 한다고 하면서도 의료이용은 차별적일 수밖에 없다면, 이처럼 불쾌한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산재환자들은 치료과정에서 병원을 옮기라는 요구를 많이 받게 된다. 의사들 얘기로는 치료가 끝이 나도 도대체 퇴원할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즉 산재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일부 산업의학을 전공하는 교수나 학자들도 이에 대해 동감하고, 나아가 산재 환자들의 장기 입원 실태를 보고하면서 강제적 퇴원규정이 필요하다는 강변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은 일부 현실에서 보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산재환자들이 대부분 직장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산재로 치료를 받다 보면 장시간근무를 못하게 되고, 후유증이나 장애가 남을 경우 직장을 잃게 되는데, 만약 치료마저 종결이 된다면, 더 이상 치료비는 물론 휴업 급여도 더 이상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산재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치료기간을 연장하여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다. 물론 직장에 곧바로 복귀할 수 있는 노동자들은 치료가 끝나면 대부분 퇴원하고 복귀를 서두르게 된다. 그러나 산재환자의 원직장 복귀가 원천적으로 어려운 조건에서 산재환자들이 마지막 남은 요양기간 마저 연장하지 못한다면, 물에 빠진 채 마지막으로 잡고 있던 줄을 놓아버리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재보험제도는 노동자에게도,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들에게도 불쾌하고 부족하며, 많은 부분이 개선되어야 하는 골칫거리 중의 하나이다. 노동자들은 충분한 권리를 받지 못하고 있고, 의료진들은 산재환자를 귀찮고 돈도 안되며 병상만 차지하는 존재들로 인식한다. 산재보험을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과 정부 당국은 산재환자들이 병원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경험하는 짜증과 불쾌감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우리나라 산재보험의 가장 큰 문제는 당국자들이 그 문제의 깊이를 모른다는 점,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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