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월] 독버섯

일터기사

[칼럼]

독버섯
노동자의 힘 사무처장 황금춘

내가 어렸을 때 살던 곳은 남원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산골마을이다. 그 시절 나는 어머니의 만류를 제치고 땔감을 구하려 산에 올라가는 어머니를 종종 따라 갔던 기억이 있다. 물론 어머니는 어린 자식이 따라가는 것이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당연히 거추장스러운 대상이었겠지만, 나는 어머니가 없는 집이 무섭기도 하고, 산에 따라가면 그런대로 재미난 일이 꽤 있었기 때문에 기어코 어머니의 뒤를 따르곤 했다.

어머니를 따라 산에 갈 때 나에게는 조그만 망태가 주어지곤 했는데 그것은 땔감을 마련하면서 쉬는 짬짬이 거두어들인 고사리, 버섯 등 산나물을 담는 그릇이었다. 사실 먹을 것이 귀한 산골 마을에서 이렇게 거둔 산나물은 우리 가족의 요긴한 반찬거리였다. 이것저것 구경하며 산을 돌아다니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산나물을 뜯어 오면 ‘어이구, 우리 아들이 이제 다 컸구나!’ 하면서 엉덩이를 두드려 주시는 어머니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하곤 했었다.

한 번은 버섯을 한 움큼 뜯어 손에 들고 어머니에게 달려가 “엄마 내가 버섯 엄청 따왔어.”했다. 그런데 당연히 즐거워해야 할 어머니의 얼굴이,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준 버섯을 받곤 “다시는 이런 버섯 따지 마라.” 하면서 멀리 풀숲 사이로 내팽개치셨다. 당시에는 서운했지만 땔감을 다 마련하고 산을 내려오면서 ‘그런 것은 먹으면 큰일나는 독버섯이야.’라는 설명을 듣고, 다음에 산에 갈 때는 그와 비슷한 것에는 손을 대지 않게 되었다.

‘민주노총 32차 임시대의원대회가 오는 9월21일로 확정되었다’는 것과 이번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다룰 주요한 안건 중의 하나가 ‘사회적 교섭기구’에 관한 내용임을 접하면서 나는 어린 시절 ‘독버섯’에 대한 기억을 다시 하게 되었다. 노무현 정권이 ‘상생과 타협의 노사관계’ ‘선진 노사관계’ 등의 미사여구로 선전해온 새로운 사회적 교섭기구! ‘새로운(?) 교섭구조’를 마련한다면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할 수 있다는 민주노총의 기대! 이미 낡은 것일 뿐 아니라, 지난 경험 속에서 노동자계급에게 치명적이었던 노사정 합의 기구! 요란스런 자태 속에서 어린 시절 독버섯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면, 그것은 억지일까?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사회 통합적 노사관계를 표명하면서 노사정위원회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노태우 정권부터 지금까지 정권과 자본의 줄기찬 요구였다. 단지 역대 정권들은 때마다 ‘고통분담론’ ‘국제경쟁력 강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 등으로 그럴 듯하게 색깔을 덧칠해왔지만, 본질적으로 정권과 자본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관철해나가는 기구에 다름 아니었다. 고운 색깔로 유혹하고, 귀한 자태를 흉내 내는 독버섯의 본질을 노동운동의 지도부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노무현 정권이 민주노총을 향해 이미 다 죽은 ‘노사정위원회로의 복귀’를 그토록 제기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노사정위원회의 역사적 경험에 기초한다. 민주노총이 없는 노사정위원회는 김영삼 정권 당시 경험(1993년 한국노총을 포섭하여 저임금정책을 위한 노-경총 합의를 끌어냈으나 민주노조진영의 강력한 투쟁으로 실패함)에서 그 실효성을 의심받게 되었다. 즉 민주노조 운동의 포괄 없이는 노동자 대중을 자본의 의도대로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된 것이다.

산에 나는 독버섯이 스스로 독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인 것처럼, 자본과 정권은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고자 하는 ‘자본의 독’을 품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1400만 노동자계급의 구심임을 자처하는 민주노총은 그 독버섯의 본질을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독버섯을 먹을 만한 것이라고 현혹하고, 먹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강변하면서,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가피하지만 교섭을 통해 노동자들의 요구와 그 정당성을 대내외적으로 알려내고, 조합원들의 관심을 집중시켜 투쟁을 효과적으로 조직할 수 있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따낼 수 있다는 “독버섯 활용론”이 지금 공공연하다.

민주노총 4기 지도부는 출범과 동시에 노사정복귀를 향한 잰걸음을 걷기 시작하였다. 3월 3일 중앙위원회에서 사회적 교섭에 대한 방침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4월 20일 이수호위원장은 매일경제와 단독 인터뷰에서 “대기업이 임금동결로 생긴 이익금을 하도급업체 노동자나 비정규직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사용한다고 약속하고 …(중략)… 04년 임금인상 자제를 설득하겠다.” 나아가 노사정 복귀에 대해서는 “바람직한 노사정 대화기구의 형태에 대해서 민주노총 내부에서 토론이 들어갔으며, 공청회와 토론을 통해 그 대안을 마련하고 복귀시점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급기야 5월 31일에는 임시적인 노사정대화기구의 구성에 합의를 함으로써 노사정복귀를 기정 사실화 했던 것이다. 독버섯은 자본이 재배하였지만 그것을 먹자고 요구한 것은 민주노총의 지도부이다.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완전한 관철과 전면화를 위해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의 공세를 결코 늦추지 않고 있다. 03년 화물노동자들과 철도노동자들의 절박한 생존요구에 대한 묵살과 폭력적 탄압, 그리고 배달호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분신과 자결에 뒤이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짓밟아 버렸다. 올해 노사정위 복귀를 이야기하는 와중에서도 궤도 노동자, LG정유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에 대해 ‘직권 중재’라는 이미 다 ‘낡아빠진’ 칼을 꺼내어 휘둘러 대었다. 그러나 결코 그 칼은 낡지 않았고, 노동운동의 패배와 굴복을 얻어내고 있다. 노동자 계급과 정권(자본)의 새로운 합의는 있지도, 있을 수도 없다. 만약 새로운 합의가 있다면, 그것은 자본의 세계화에 요구되는 노동유연화의 제도화,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확대, 노동 강도의 강화,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 이 모든 독성 증상에 대한 합의뿐이다.

독버섯을 먹을 것인가? 버릴 것인가? 이 단순한 질문에 대해 나의 어린 시절의 선택은 분명하였다.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대로…

“독버섯은 먹지말고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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