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월] 불평등 3원칙

일터기사

[세상사는 이야기]

불평등 3원칙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위원 박주옥

공상과학 영화에 사람처럼 움직이고, 사람처럼 말하고, 가끔 사람처럼 생각도 할 수 있는 로봇이 등장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명한 스타워즈 영화에 나오는 삐걱거리는 로봇에서부터 터미네이터까지 영화기술이 발달하면서 이 로봇들은 점점 사람을 닮아가고 있다. 영화에서 뿐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로봇 애완견이 등장하는 등 로봇이 인간과 같이 살아갈 미래가 먼 것만은 아닌 듯하다.

이 로봇에게는 3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제 1원칙은 ‘로봇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으며 인간의 위험을 간과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 2원칙은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명령이 1조에 어긋날 때는 따르지 않아도 된다.’이고 제 3원칙은 ‘로봇은 1조와 2조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신을 지켜야만 한다.’라는 것이다. 단 세 줄의 문장에 불과하지만 로봇의 행동에 대한 원칙으로는 너무 완벽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 원칙은 로봇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불평등하다. 자신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도 인간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불평등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차에 치일지라도 차도에서 위험하게 놀고 있는 어린이를 구하고, 자신은 빠져 나오지 못할지라도 사람을 먼저 건져내야 하고, 어떤 위험이 있는지 모르는 위험지역 -땅속, 추운 극지방, 우주 같은-에 먼저 가서 그 모든 위험 가능성의 시험대상이 되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자신을 망가뜨리는 인간에게 저항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이 원칙의 핵심인 것이다. 이 로봇 3원칙은 사실 지극히 불평등하고 일방적인 원칙이다. 그러나 상대가 로봇이기 때문에, 로봇이 인간과 공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에게 종속된 존재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는 원칙이다. 따라서 인간들의 관계에서는 이런 원칙이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굴욕적인 노예 관계가 맺어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실을 보자. 이런 관계는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국내 여론뿐만 아니라 국제 여론까지도 미국에게 등돌릴 때, 우리나라 정부는 ‘우방’인 미국의 입장을 곤란하게 해서는 안되고, 미국의 요청에 따르는 것이 ‘국익’이기 때문에 이라크 파병을 한다고 했다. 심지어 우리의 선량한 시민이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을지라도 파병을 철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무기를 개발하고 방어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지만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는 알아서 포기해야 하고, 근처에 있는 북한도 핵무기를 가지지 못하도록 말려야 한다. 비록 우방과 국익이란 말로 포장되기는 했으나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고 복종하면서 그 범위 안에서만 스스로를 방어하는 로봇의 입장과 다름이 없다.

아테네 올림픽 경기에서 미국 선수가 입장할 때 관중석은 썰렁했다고 한다. 반면 이라크 선수단이 입장할 때는 모두들 성원을 보냈다고 한다. 비록 미국이 로봇 3원칙 같은 방침을 도입해서 세계 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바꾸고 싶어해도 국제사회는 그렇게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로봇’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번 이라크 파병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모든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사람으로서 유감스럽다. 올림픽의 성화 아래에서 그런 것처럼, 모든 국제관계가 평등하고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2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