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2월] 새해소망은 “해고자 복직”

일터기사

[일터이야기1]

새해소망은 “해고자 복직”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실

세계 4위의 종합 무선조종기 제조사라고 자랑하는 하이텍알씨디 코리아. 하지만 하이텍알씨디코리아(이하 하이텍) 본사가 위치한 구로공단에서는 악질 부당노동행위로, 횟수로 4년째 장기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사업장으로 더 유명하다. 공장 입구의 수위실에는 ‘노조탄압공장, 전국금속산업연맹 선정1호’라는 현판이 크게 걸려있다.

장기투쟁 4년, 변화한 조합원들의 생활

하이텍의 점심시간은 12시 30분부터이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자마자 식판 위로 밥과 반찬을 높이 쌓아올린 조합원들이 하나둘씩 조합사무실로 모여든다. 한 사람의 식사량으로 보기엔 너무 많은 밥과 반찬은 해고자들의 몫까지 조합원들이 챙겨오기 때문이다. 처음 해고됐을 당시에는 해고자라며 막아서는 구사대와의 몸싸움을 벌여가며 식당진입투쟁(?)까지 했었지만, 점심때마다 치러내야 하는 싸움이 지긋지긋해서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이 밥을 타오기 시작한 것이 벌써 해를 넘겨버렸다.

“식당에서 밥 안 먹은 지 꽤 됐지. 1년 반 정도 됐나. 해고당했을 때 못 들어가게 막 막잖아. 그래서 차라리 우리가 밥 갖고 오기로 해서 그때서부터 시작한 게 이거야. 그리고 우리가 왜 이렇게 많이 갖고 오냐 하면 직장폐쇄 때 식당에서 못 먹게 6개월 동안 막았잖아. 앞문도 막고, 뒷문도 막고 우리 못 들어가게. 그 때 한이 맺혀가지고 요만큼만 갖고 와야지 생각하면서도 밥만 보면 미쳐.”

농성장인 조합 사무실에서 익숙하게 밥상을 차리고 식판의 밥을 나누어먹은 조합원들은 점심시간 내내 조합 사무실에 앉아 담소를 나누다가 끝날 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생산라인으로 들어간다. 횟수로 4년차가 된 장기투쟁은 조합원들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다. 직장폐쇄가 끝나고 조합원들이 현장에 복귀하자 회사에서 조합원들로만 이루어진 라인을 따로 만들어놨다고 한다. 관리자와의 사소한 말다툼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고, 관리자들이 언제 뒤질지 알 수 없는 불안함에 개인 사물함까지 모두 조합 사무실로 옮겨왔다.

떨쳐지지 않는 감시의 기억

회사에서는 조합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관리자를 동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생산현장을 비롯한 공장 곳곳에 감시카메라까지 설치했었다. 현장에 설치했던 카메라는 언론에 보도가 되고 문제가 되기 시작하자 ‘공식적’으로는 철거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아직까지 ‘나의 모습이 카메라로 감시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현장에 들어가 일하기 전에 반드시 주변을 신문지로 가리고 나서야 일을 시작한다.

“감시카메라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어디서 감시하고 있을지 모르니깐 우리는 한시도 안심할 수가 없어. 그래서 현장에서도 신문지 붙여놓잖아. 그래야 안심이 돼. 라인에 개인사물함으로 바구니를 뒀는데 그것도 막 뒤져. 관리자들도 항상 우리 주위를 돌아. 돌면서 뭔 얘기하나 귀를 기울이면서 빙빙 돌아. 우리는 항시 긴장을 해야 돼. 전쟁하는 기분으로 살아.”

마침 이날은 만근반지가 나오는 날이었다. 조합원들은 하나둘씩 만근반지를 끼어보더니만 “관리자들이 이거 조합원 주면서 얼마나 배 아팠을까”를 이야기하며 웃기 시작한다. “하이텍 마크 들어간 건 싫어. 재수 없어.”라는 소리가 나오자 한편에서 “왜? 그것도 노동조합 투쟁의 산물이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만근반지는 단협으로 노동자들에게 지급하게 되어 있는 사항이란다. 조합원 중 몇몇이 해고자에게 만근반지를 주겠노라 나서자 해고자인 부위원장의 답변이 걸작이다. “위원장이랑 나랑 만근했으니깐 조합원들이 만들어줘. 농성을 했으니깐 확실히 만근이지.”란다.

힘든 위기를 함께 이겨내고 ‘끝까지’를 결의하다

하이텍 투쟁의 처음 시작은 2002년 임단협 투쟁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투쟁이 길어질 지 미처 예상 못했으리라. 하지만, 회사는 노조의 공동투쟁을 문제 삼으며 교섭을 지지부진 끌다가 공격적 직장폐쇄를 자행했고, 결국 조합원 5명을 해고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4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지난 1월 3일은 하이텍노조가 투쟁을 시작한 지 1,0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사실 투쟁하면서 1년이 넘으니깐 그 다음부터는 날짜 세는 것조차 큰 의미가 없더라고요. 우리는 해고자가 발생하고 회사도 독일의 동종업체를 인수하면서 직접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장이 독일공장으로 아예 나가 있는 특이한 상황이죠. 2003년 하반기부터 2004년 상반기까지는 독일원정투쟁이 계속 미루어지고 좌절되는 그런 과정들이었던 것 같아요.”

김혜진 노조 위원장은 직장폐쇄 때가 가장 큰 위기였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위기를 함께 이겨낸 조합원들은 더욱 강해졌다고도 덧붙인다.

“직장폐쇄 막바지 때 수련회를 했어요. 그때 분위기가 최악이었거든요. 조합원들이 5개월 넘게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투쟁을 하다보니깐 생활이 파탄나는 상황들이었어요. 우리 조합원들이 술 안 마시는데 그날은 소주 진짜 많이 먹었어요. 회사가 노조를 깨려고 작정한 이 마당에 백기항복하고 들어가는 건 결국 노동조합도 포기하고, 조합원도 포기하는 게 아니겠냐고 이야기했어요. 조합원들도 스스로 그런 얘기를 하시고, 그래서 그 때 ‘완전한 승리를 하던가, 완전한 패배를 하던가, 둘 중에 하나밖에 없다. 우리는 끝까지 간다.’ 그렇게 결정을 했죠.”

4년째 장기투쟁을 하면서, 곳곳에 연대투쟁을 하면서 조합원들의 모습도 변해왔다.

“조합원들이 이제는 연대가서 딱 보면 흔들리고 있는지 딱 알아요. 그래서 한 번은 한 사업장을 위해 뭔가를 해야 된다고 하면서 ‘힘내세요’라는 글씨를 만들어서 꽃을 접어 채워넣은 적이 있어요. 그렇게 전해줬는데 그 사업장이 그 다음 주에 정리를 한 거야. 우리 조합원들이 진짜 존경스러운 거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연대집회에 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간다는 거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사실 대단한거죠.”

새해소망을 묻자 망설임도 없이 “해고자 복직”을 이야기하던 하이텍 조합원들은 이 날도 어김없이 목요일 정기집회를 진행했다. 이 날 집회는 2005년에 진행한 첫 집회였다. 집회준비를 위해 스티로폼 방석을 깔고, 북과 꽹과리를 꺼내오고 집회 참석자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씩을 돌리는 조합원들의 모습에서 이제 익숙함까지 느껴진다.

하이텍의 투쟁이 언제 끝날지는 여전히 예측하기 힘들다. 13명의 조합원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대단하다 할지 모르지만 조합원들은 이미 “절대 우리가 먼저 투쟁을 접지 않는다”고 결의하고 있다. 투쟁의 끝은 예측할 수 없지만, 어떤 투쟁의 현장에서도 하이텍 조합원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난다. 그리고, 정말 노동자들이 투쟁의 주도권을 잡고 정세를 만들어가는 그 날 하이텍의 투쟁도 반드시 승리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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