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2월] 승무노동자, 터널을 벗어나 현장투쟁으로 간다

일터기사

[현장통신3]

승무노동자, 터널을 벗어나 현장투쟁으로 간다
서울도시철도노동조합 승무본부장 정흥준

기관사. 낯설고 생소한 직업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기관사직업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긴 열차에 많은 승객들을 싣고 운전하니까 ‘재밌겠구나’하는 생각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기관사라는 직업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최소한 지하철 기관사만은 그렇다. 왜일까? 우선 지하철 기관사들은 지하에서 운전한다. 당연히 햇볕 한 줌 없다. 특히 5~8호선 도시철도는 7호선 청담대교와 8호선 남한산성 두 구간을 제외하면 전부 지하이다. 참고로 도시철도는 전국 지하철 중에서 가장 긴 구간을 운행하고 있으며 가장 긴 지하운전을 한다. 이 곳에서 850여명의 기관사들이 하루 5~6시간씩 매일매일 운전한다. 한 번 열차를 타면 2~3시간 내내 운전에 집중해야 하고, 출입문 취급해야 하고, 안내방송해야 하고, 고장나면 응급조치해야 하고… 사상사고라도 날라치면 간이 콩알만 해진다. 정말 힘든 건 이 모든 것을 혼자서 해야 하는 1인 승무이다. 열차운전 중에는 아무도 없다. 오로지 열차무전기만 있을 뿐이다. 화재가 나도 혼자서 처리해야 하고 사상사고가 나도 사체처리를 혼자 해야 하고.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처리를 10분 내 하지 못하면 사고에 대한 책임과 인사 상 불이익이 뒤따르는 ‘살벌함’이다. 그래서 지하철 기관사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두 동지를 잃고 나서 알게된 진실

2003년 여름, 도시철도 기관사 2명이 자살을 했다. 한 분은 자신이 매일 운전하던 6호선 선로에서, 또 한 분은 고향인 여수대교에서. 그런데 그 원인을 찾다보니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돌아가신 두 기관사 모두 기관사업무의 스트레스로 인해 수년간 우울증과 적응장애로 치료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침 현장조합원들을 확인해 보니 6명의 기관사들이 ‘공황장애’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열차운전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때부터 도시철도노동조합 승무본부는 문제의 심각함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하였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4명의 동지들에 대한 직업병 인정을 받아 기관사 건강권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고 공사에는 임시건강검진을, 노동부에는 역학조사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공사도, 노동부도 묵묵부답이었다. 답답한 심정에 할 수 없이 2004년 7월~10월 석 달 사이에 84명의 기관사들이 노동조합과 함께 자체검진을 하였고, 이를 통해 18명의 기관사들이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 유소견 진단을 받았다. 그 중 7명의 기관사들이 2004년 11월 집단요양신청을 한 것이다. 정말 아쉬운 것은, 그리고 노동조합 간부로써 반성하는 것은, 인생을 채 피워보지도 못한 젊은 기관사 두 명을 잃고서야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정치적 판단으로 희생된 3명의 동지들

지난 12월 31일 근로복지공단은 7명의 신청자 중 4명을 승인하고 3명을 불승인하였다. 승인과 불승인의 주된 기준은 ‘사상사고 여부’였다. 사상사고가 있으면 승인을 했고 없으면 불승인하였다. 그런데 7명의 집단요양신청자 이전의 4명 기관사들은 사상사고가 없었어도 승인이 된 바 있었다. 그렇다면 왜 근로복지공단은 스스로 다른 기준을 적용했을까. 설마 했지만 공단은 스스로의 한계를 답습하며 ‘정치적’으로 판단해 버렸다. 도시철도에 공황장애 기관사가 집단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이상, 더 이상 공황장애를 기관사의 업무상 질병으로 보지 않겠다는 의도를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또 7명 모두를 불승인하기는 부담스러우니까 사상사고 여부를 잣대로 삼아, 승인과 불승인을 4:3의 황금비율(?)로 나눠버린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의 비상식적 용기가 어처구니없을 따름이다. 기관사들은 1인 승무와 장시간 지하운전, 불규칙한 교대근무, 사상사고 등 사고에 대한 부담이 총체적으로 작용하여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받는다. 즉, 기관사의 전반적인 노동조건과 작업환경이 공황장애의 진짜 주범인 것이다. 그런데도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애써 부정하고 있다. 노동부가 그러하고 도시철도공사가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듯 말이다. 한 통 속이 되어서.

‘진실’과 ‘시민안전’을 위해

아직 돌아가신 두 기관사의 ‘한’이 풀리지 않았다. 분명한 원인이 밝혀지고 대책이 마련되어야 이들도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던 도시철도 기관사들도 마찬가지이다. 당연히 노동조합과 승무조합원은 불승인 3명의 조속한 승인은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인 2인 승무, 운전시간단축, 작업환경개선, 현장통제 중단을 쟁취하는 날까지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 서울시와 도시철도공사를 상대로 투쟁할 수밖에 없다. 상대가 아무리 많고 강할지라도 ‘진실’마저 숨길 수는 없다. 누가 진짜 정당한 지, 최소한 누가 시민의 생명을 담보로 모험을 하고 있는지 우리들은 투쟁을 통해 밝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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