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2월] 현장을 좀먹어들어오는 자본의 공세 – 현대자동차 노동강도평가 (1) –

일터기사

[연구소 리포트]

현장을 좀먹어들어오는 자본의 공세
– 현대자동차 노동강도평가 (1)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 해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는 울산공장을 중심으로 2005년 3월부터 10월까지 ‘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평가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연구는 현대자동차의 노동강도 기전을 밝히고 인간의 ‘몸’을 중심으로 한 노동강도 완화 투쟁의 단초들을 찾기 위해 기획되었다. 연구는 크게 1) 고용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현장 이데올로기 분석, 2) 노동강도의 강화의 결과로 나타난 자본과 노동자의 상태 진단, 그리고 마지막으로 3) 육체적 부하 평가를 중심으로 한 노동강도의 평가로 구성되어 있다. 조사과정에서 연구진들은 수많은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을 만나고 현장을 경험했다. 이 땅의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대표주자인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삶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었고, 노동강도는 더욱 더 강해지고 있었다. 많은 경험들과 느낌과 자료들을 다 정리하지는 못하겠지만 앞으로 2회에 걸쳐 이 연구의 결과를 간략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1. 현대자동차, 구조조정의 선두주자

2010년까지 세계 자동차 산업 5위를 달성하겠다는 현대자동차의 구조조정 과정은 대단히 치밀하면서도 선도적이었다. 90년대 초반 ‘신경영 전략’으로 시작된 자본의 공세는 97년 말 IMF를 거치면서 98년 정리해고 단행의 충격적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이후 현장 활동가들의 공백과 현장에 팽배한 패배감 속에서 이들의 현장통제는 확대·강화되었으며 모듈화, 해외공장, 모답스 도입 등을 통해 노동의 유연화와 생산의 유연화는 일상적인 ‘위협’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고용불안(감)을 유발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장시간 노동과 강화된 노동강도에 순응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진행된 일상적 구조조정의 위기는 노동자들이 ‘회사의 장래를 자신의 장래’로 ‘물량을 고용’으로 동일화시키며 ‘있을 때 벌자’라는 자발된 순응의 강력한 기제로 작동해오고 있다.

2. 비극의 시작 :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

현대자동차의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은 한국사회에서의 ‘정리해고의 공식화’라는 정치적 의미를 품고 있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었다. 그러나 이는 희망퇴직 합의와 임금삭감안 제출이라는 거듭되는 양보와 공장 점거 천막농성 파업에 이어지는 김광식 집행부의 정리해고로 귀결된 싸움이었다. 이는 대소위원 설문조사 결과 98투쟁에 대한 평가에 대해 성공이라는 대답이 불과 4%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표1>.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실패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실패의 원인일 것이며 그것의 영향이다.

98년 정리해고는 4개월간 8천여 명에 달하는 희망퇴직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노조의 대폭적 양보안에도 불구하고 자본은 7월 31일 1,539명의 정리해고자에게 인사발령을 통보하였고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던 활동가들과 조합원은 극단적 분노를 겪으며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미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통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개별화해온 자본은 공장점거 천막농성 파업의 와중에도 적극적인 갈라치기에 나섰다. 투쟁에 결합하지 않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화하고 최종 정리해고 대상을 ‘여성 식당 조합원’으로 개별화함으로써 동지적 관계를 단절시키는데 성공한다. 문제는 이러한 단절이 조합원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와 동질감에 치명타를 입혔다는 것이다. 파업의 과정에서 손실된 조합의 파업에 대한 지도력과 민주주의는, 이후 고용불안(감) 속에 노동자들이 개별화 되는 것에 촉매작용을 하게 되었다. 또한 임금과 고용에 대한 고통분담론, 혹은 맞바꾸기의 경험은 노동자들의 임금구조 불안정화를 가져오고 장시간 노동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안착화시켰다.

98년의 경험은 ‘더 이상 정규직의 고용안정이란 없다’는 고용이데올로기를 발생시켰다. 한 면접자가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에 고용안정을 요구하지만 고용안정의 실제 요구는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모두들 ‘고용’을 일순위로 꼽고 있지만 그것은 구체적인 실체로 드러나는 요구가 아니라 상시적인 고용불안(감)의 표현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고용안전이란 이전처럼 단순히 ‘안정적인 평생 일터의 보장’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그 자체가 목적하는 – 노동 유연화와 자본의 무한한 자유로 대표되는 – 모든 정책을 막아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고용안정이란 ‘총고용보장’ 혹은 ‘고용안정협약’과 같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요구나 형식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의 ‘이윤 축적 구조’에 대한 저항으로 귀결 될 수밖에 없다. 노동강도 강화와 임금불안의 핵심 요인인 변동급의 증가를 막아내는 것, 각 공장에서 고용안정을 볼모로 밀어붙이는 구조조정을 중단시키는 것에서부터 풀어나갈 수 있다.

3. 고용이데올로기의 실체와 생산·강화 기전

조합원의 인식을 중심으로 고용이데올로기의 확산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그림1>.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의 패배로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된다. 여기에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무급휴직을 받아 현장을 떠나게 되었고, 복귀 이후에도 대응의 미흡함으로 인해 활동가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회복 기회를 만들어 내지 못하였다.

이런 조건에서 일상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그림2>들은 모듈화, 외주화, 해외생산, 모답스 도입 등을 통한 일상적 구조조정 공세 속에서 물량과 고용을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는 결국 물량과 구조조정을 맞바꾸는 형식으로 진행이 된다.

조합원들이 고용을 부분적으로 보장받는 대신, 사측의 다양한 구조조정 공세들이 관철되는 것이다. 여기에 자본의 교육과 언론을 통한 시기적절한 위기설 유포와 생산량의 변동, 그리고 개별접촉과 인간관계를 통한 조합원에 대한 포섭은 물량으로 인한 고용불안(감)을 현실인 것처럼 만든다. 자본의 전체 이윤은 결코 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기(특히, 임단협 등을 앞에 둔)에 따른 위기는 항상적으로 존재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조합원들은 개별화되고 생활 임금의 확보를 위해서 잔업·특근을 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또한 물량이 줄어드는 것은 임금의 대폭 감소와 더불어 정리해고의 위협을 주는 것으로 이중·삼중의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이는 물량확보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노동자 내부를 분열시키는 유효한 전술로 작동하게 된다.

이 과정에 현대자동차 역대 집행부의 활동이 이러한 불안(감)과 이데올로기의 확산을 막아내지 못했으며, 자본은 이데올로기적 우위와 현장통제를 계속 확대해왔다<그림3>. 98년 정리해고 투쟁을 경과하면서 극심한 변화를 겪은 조합원과 활동가는 2000년 비정규직을 16.9%로 제한하는 완전고용 합의서를 체결함으로써 변화의 지점을 드러내게 되었다. 고용을 위해 다른 것을 양보하는 전략이 제도적으로 확립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비정규직의 공식적 인정과 제한으로 정규직의 총고용의 보장이라는 가시적 양보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완전히 해결해내지 못했다. 이미 가이드라인을 넘어버린 비정규직을 보면서, 그리고 조직되어 투쟁하는 비정규직들의 현실을 보면서 점점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사슬이 되고 있음을 확인해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장의 주도권을 자본이 가지게 됨에 따라서 활동가들은 조합원들이 인정하고 원하는 것에 따라 자신의 활동을 재구성하려는 경향을 드러내게 되었다. 사측의 구조조정 요구에서 고용 문제만을 우선시하고 다른 사안들은 부차화시키는 경향이 현장에 팽배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경향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활동 양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특히 역대 집행부 활동 과정에서 7·5 연대 총파업 철회, 산별 추진과 실패, 사회공헌기금 추진, 사내하청을 비롯한 비정규직 관련 등 중요한 현안들에 대한 대응 및 공장별, 선거구별로 진행되는 맨아워협상 등의 향방을 결정짓는데 있어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응은 기존의 경향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심화시키는데 기여해왔다. 여기에 해외생산과 모듈화 등 일상적 구조조정에 대한 조합의 대응 실패는 조합원들의 삶을 더욱 사지로 밀어 넣는 꼴이 되고 말았다.

4. 일상적 구조조정의 악순환

현대자동차 안에서는 다양한 구조조정 요인들이 서로 인과관계를 가지고 얽혀 있다. 본 연구에 따르면 현 시점에서의 주요 원인들은 대개 고용의 유연화와 노동시간의 연장 및 유연화로 귀결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로써 자본은 탄력적인 생산 계획에 발맞출 수 있는 유연생산체계를 완성해가고 있으며, 노동자는 생산 중심의 기획 아래 개별화되고 분절화 되어 특정 시기에 극한의 노동강도를 체험하게 된다.

이런 기반 하에 도입되는 모듈화나 해외공장에 대한 대응은 오히려 내부 경쟁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개인과 부서 혹은 공장의 물량이 고용 및 임금과 직결되는 현실에 직면하면서 물량중심, 공장중심, 국내중심의 대응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차종의 이관과 관련해서는 빼앗기는 쪽과 받는 쪽이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지고 갈등하게 되고, 해외공장과 관련해서는 해외공장 노동자에 대한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단협을 만드는 것 등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는 노동의 현장에 대한 통제력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가져오고 노동시간의 연장 또는 노동밀도의 강화를 스스로 요구하게 되는 잘못된 결과를 불러 올 뿐이다.

그 사이 1993년 7조여 원에 불과하던 매출액이 27조여 원으로 증가했다. 98년 이후 현대자동차의 당기 순이익은 급격한 상승의 곡선을 그려가게 되었다. 부채비율이 급격히 감소하고 생산성이 급격한 증가한 것 역시 98년 이후의 일이다<그림4>.

결국 자본은 자신의 총 이윤에 대한 기획과 생산을 훼손당하지 않는 상태에서 노동자들의 내부 분열과 고용불안으로 노동자 스스로 장시간 노동과 강화된 노동강도를 감내토록 하여 이윤율의 극대화를 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2010년 GT-5로의 진입목표는 노사협조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은폐된 강요를 통한 현장 통제와 관리에 의해 추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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