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이야기]
– KT상품판매전담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위원 허 경
(intro)
최민동(가명)씨의 일터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일터에 가볼 수도 없고 최민동씨의 사진도 공개할 수 없으며 일하는 곳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도 없다. 그렇다고 그가 일하는 곳이 비밀정보기관쯤 되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일터이야기를 쓸까?’를 고민한다. 또는 ‘쓸 수는 있을까?’
질문을 바꾸기로 했다.
‘그의 일터를 왜 이야기해야 하는가?’
자, 그의 일터이야기를 쓰자!
최민동씨를 만나기 위해서 우선 김미영씨를 만나야 했다. 현재 KT(전 한국통신) 서울동부영업총국 동대문영업부 시장관리1팀 과장인 김미영씨는 ‘전국상판모임 집행위원장’이었다. ‘상판모임’을 알기 위해서 한국통신의 민영화에 대해 들어야 했다.
노태우 정권의 ‘공기업 민영화추진위원회’의 설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KT의 민영화는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가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을 모두 설명하기엔 지면의 한계가 있으므로 과정의 특성만을 언급한다면, KT의 민영화과정은 정부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된 가운데 상황에 따라 휘둘리는 것이었고 IMF 경제위기 이후 KT의 해외매각 중심의 민영화과정은 KT 내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영과 비용감소를 위한 구조조정의 정착과정이었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감원위주로 진행되었고 명예퇴직을 강요했으며, 2003년 9월 KT는 국내 단일기업으로는 최대 규모의 명예퇴직을 단행했다. 거듭된 구조조정의 반복으로 인해 더 이상 자발적인 명예퇴직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자, 인사권을 남용한 강압적 수단이 이용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노동자들이 나타나자 KT 경영진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것이 상판팀, 즉 ‘상품판매전담팀’의 구성이다.
명퇴대상자 중 명예퇴직을 거부한 노동자들을 2003년 12월 1일자로 상품판매전담반으로 인사조치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상판팀은 명퇴 거부에 따른 인력퇴출 프로그램의 일환이고 최민동씨로부터 들어야 할 일터이야기의 무대이다.(최민동씨의 ‘상판팀’이야기를 듣기 위해 만나야 했던 김미영씨는 상판팀은 아니고 KT상판팀 투쟁을 진행했던 전국상판모임의 집행위원장이었다. 본인은 상판팀 투쟁을 ‘조합주의의 타성에 젖어 있던 우리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일깨워준 인간해방운동’이라고 밝혔다.)
일터라곤 하지만 명퇴 유도를 위해 구성되었던 상판팀은 퇴출을 위한 갖가지 ‘인권침해 프로그램’, ‘차별과 감시 프로그램’이 실시되었던 노동자지옥이었다. 수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역시 일일이 나열하기보다는 쪽지 하나를 소개한다.
<영업국장님 안녕하십니까?
mnp와 영업활동 등으로 매우 바쁘시죠.
상품판매전담 직원 관리가 아직 정착되지 않아 몇 가지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상품판매전담 직원에 대한 복무관리 및 상품판매 활동에 대해서 일일보고체계를 강화해 주시고 이미 통보된 "1일 활동 수칙"을 철저히 이행해 주실 것을 각 시장관리팀장에게 주지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상품판매전담 직원에 대한 관리의 최종 목표는 <퇴 출>이므로 근무태만, 업무 불성실 등에 대한 복무와 채증관리를 철저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상품판매전담 직원에 대한 관리요령을 보내드리오니 참고하시고 본사 등 점검시에는 특별한 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에 철저를 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쁘신데 여러 가지로 많은 부담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자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ㄱ본부 ****장 ****>
김미영씨가 최민동씨와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그의 일터 근처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가 있는 곳은 상판팀이 아닌 서울의 한 KT지점이었다. ‘인간해방운동’을 통해 상판팀은 2004년 12월 31일에 해체되었고 그의 일터는 바뀌었다. 하지만 그를 만난 곳은 새로운 일터가 아닌 근처 커피숖이었다.
“상판팀은 해체되었지만 여전히 퇴출프로그램은 진행되고 있어요.”
“저는 78년부터 95년까지 시험실에서 일했어요. 근데 지금은 개통일을 하고 있어요. 전혀 모르는 일을 시키는 거죠. 개통일을 하려면 오토바이를 타야하는데, 그래서 오자마자 오토바이 연습을 했어요.”
신노사문화대상을 받았던 KT는 상판팀의 투쟁이 거세지고 외부로 알려지자 1년여만에 상판팀을 해체했다. 하지만 최민동씨처럼 생소한 업무를 해야되는 인사발령이 이루어졌다. 최민동씨가 하게 된 개통업무는 인터넷 가입신청을 받아 가입자의 집에 가서 직접 설치하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보통 젊은 연령대가 하는 일이다. 20여년을 일한 베테랑에게, 그것도 정년을 8년 남겨두고 새로운 일을 준다는 것을 어떻게 납득해야 하는 걸까?
“깍두기에요. 다른 사람들 일하는 곳에 따라가서 보고… 우리 세대는 아직도 컴퓨터에 익숙치 않거든요. 또 조금 하면 할 수도 있어요. 근데 익숙치 않기 때문에 고객들이 좋아하지 않죠. 요즘은 고객들에게 매우친절, 친철, 불친절, 매우불친절, 이렇게 조사를 하거든요. 그러면 익숙치 않은 사람은 당연히 불친절이죠. 제가 볼 때 지금은 상판팀 이상이에요.”
그의 일터이야기를 들으면서 시험실 업무와 관련된 특별한 자격증까지 취득한 그에게 굳이 익숙치 않은 일을 시키는 이유가, 명퇴강요에도 버텨낸 것, 상판팀에서도 투쟁했다는 사실, 95년부터 2002년 까지 한 지부의 지부장으로서 조합활동을 했던 전력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KT가 수상한 신노사문화대상의 권위에 대한 믿음이 나에겐 부족했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일터이야기를 들려준 최민동씨는 먼저 일어서서 다시 그의 일터로 돌아갔다.
나는 고민했다. ‘도대체, 어떻게 일터이야기를 쓸까?’
상판팀 시절 그의 일터는 없어졌고 지금의 일터에는 들어갈 수도 없다. 그런데, 정권과 자본이 ‘업무와 효율성을 비상하게 높인 공기업 민영화의 대표적 성공사례’라고 얘기하는 그의 일터에는 비밀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최근의 상황에 절절한 경고로 다가올 비밀을 알리기 위해서, 일터에 가보지도 않았고 사진도 없지만 최희선씨의 일터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밀, 하나.
‘KT의 구조조정은 IMF 사태 이후 봇물처럼 쏟아진 적자, 부도, 퇴출사업장에서 있었던 기업 존립 위기에 따른 구조조정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IT산업은 정보화의 진전에 따라 성장일로에 있었던 산업이었고 특히 한국은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망과 무선통신 보급률을 자랑하는 IT강국이었으며 KT는 그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통신사업자였다. 따라서 이러한 위상을 갖고 있는 KT의 구조조정은 기업의 위기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보다 많은 수익의 창출을 위한 비용감소 차원으로 제기되었다. 특히 해외매각을 앞두고 이른바 ‘매각 가치의 극대화’가 구조조정의 핵심이었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은 일관되게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를 내보내고 그 업무를 비정규직, 외주, 하도급으로 대체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비밀, 둘.
‘2005년 2월 16일 국회 앞에서 진행된 ‘노동법개악저지, 권리입법 쟁취, 불법파견 정규직화, 최저임금 50% 쟁취 투쟁 결의대회’에는 건설운송노조, 타워크레인기사노조, 시설노조, 여성연맹, 금속노조 하이닉스매그나칩지회, 서울지역통신비정규직노조, 서울대병원간병인지부, 평등노조, 전국학습지산업노조, 덤프연대,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민주노총 서울본부,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 3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다. 정규직노조로는 서울대병원지부가 유일하게 참여했다.’
<미디어참세상 기사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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