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월/특집2] 영필씨, 원직장 복귀 역경기

일터기사

[특집2]

영필씨, 원직장 복귀 역경기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이경호

영필씨는 19살부터 노동현장에서 프레스를 배우기 시작해서 12년 동안 중소사업장에서 프레스작업을 했다. 그런 그가, 얼마 전 프레스 압착사고로 손가락 다섯 개를 잃었다. 사장의 “공상 처리해도 될 것을 왜 자꾸 산재처리 하려 그러냐?”는 말에, 다친 곳은 손인데 영필씨는 머리가 더 아파왔다. 어렵게 가족들이 백방으로 어렵게 뛰어서 2달만에 산재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승인이 나도 병실 차액분이나 간병비 문제가 걸렸다. 가뜩이나 어려운 집안 사정에 어머니는 간병을 하기 위해 하시던 청소용역일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다 더 열 받는 건, 주사바늘 같이 아주 작은 것들도 산재보험 급여가 안 된다며 사오라고까지 한다.

두 달 동안 치료를 받으니, 그래도 비몽사몽 지나가는 사고의 후유증에서는 약간은 벗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일들이 영필씨를 괴롭혔다. 고용보험은 자동으로 중단되었으나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을 영필씨보고 내라는 게 아닌가. 연금공단과 건강보험공단은 빨리 내라고 독촉장을 보내왔다. “이것까지 내가 내야 하다니!” 회사에서는 몇 번 방문을 하더니 이제는 아예 배째라는 식인 것 같다. 일을 못하게 되니 당장 먹고살 수가 없었다. 영필씨는 사장에게 “제 월급은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사장은 공단에서 주는 휴업급여를 받으라고 말했다. 70% 뿐이지만 그거라도 받아야 생활문제가 조금이나마 해결될 것 같아서, 영필씨는 휴업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그 절차가 너무 까다롭고 힘들었다. 사업주 날인이 있는 신청서와 사업주 날인이 있는 임금대장이 필요했다. 한숨이 나왔다. 70%가 만족할만한 액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거라도 받아야 살수 있을 것 아닌가.

두 달 동안 영필씨는 몇 번의 수술과 손을 완전하게 하는 이식수술을 했다. 손을 처음 풀었을 때, 30여 년 동안 사용했던 손가락이 없어졌지만 마치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이 허전했다. 마치 손으로 잡으면 뭐든 잡힐 것 같지만 실제로는 손이 없음을 문득 깨닫곤 한다. 손 재활치료에 들어갔다. 미래가 암담하다. 치료가 끝나면 회사에서는 자리를 만들어 놓겠다고 오라고 했다. 하지만 치료기간 내내 공단과 회사는 각종서류나 사고경유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서류를 많이 첨부하라고 해서 고통스러웠다. 지금은 몇 번의 피부이식수술을 제외하고서는 재활치료를 한다. 그러나 이 손으로 어떻게 재활치료를 한단 말인가? 재활치료를 6개월 동안 열심히 해왔다. 하지만 단지 굳은 손을 제대로 움직이게 하는 작용을 할 뿐이다.

이제 현장에 복귀를 하라고 한다. 영필씨의 사회적 재활과 노동의 적성을 확인하지도 않고,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치료를 종결하라고 한다. 더 치료는 받자고 하던 주치의는, 공단에 눈치가 보였는지 어쩔 수 없이 치료를 중단하자 했다. 회사에서는 3일만 쉬고 출근을 하란다. 영필씨, 출근했는데 적응이 안 된다. 치료가 끝나고 무턱대고 출근하라고 회사에서 강요해서 나오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기존에 하던 프레스 일은 무리일 것 같다. 사고 후유증도 있고 해서 겁이 난다. 며칠 전에 병원에서 나보다 조금 일찍 치료를 종결한 형님을 만났다. “복귀하고 싶었는데 회사에서 허리병신은 못 쓰겠다고 아예 나오지 말란다. 보상금이건 위로금이건 한 푼도 못 주겠대.”

회사에서는 영필씨를 다른 곳에 배치해 주었다. 영필씨가 하던 일은 이미 그 곳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일을 하고 있단다. 그래서 영필씨는 용접부서의 잔일을 하는 곳으로 보내졌다. 하던 일이 아니어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회사 사람에게 용접을 전공으로 하기 힘드니, 자재부서로 전환배치를 해달라 얘기했다. 회사에서는 그렇게는 안 되고 그곳에서 어떻게든 일들을 해보라고 했다. 영필씨로서는 정말로 적응하기 힘들었다. 손가락이 절단된 상태에서 조급하게 일찍 복귀를 했고, 주어진 일에 정말로 적응도 안 되서 고통스러웠다. 힘들어 하는 영필씨를 보며, 회사에서는 안 되겠다 싶던지 일 안해도 좋다면서 사무실에 책상 하나를 내줬다. 그 곳에서 시간만 지내다 가란다. 참으로 힘들다. 적응하기도, 먹고 살기도 힘들다. 이러한 일들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영필씨는 얼마 후 결국 회사를 그만 두었다.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했다. “앞으로 20년 이상 더 일해야 할텐데…” 가족들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공단에 도움을 요청해 보기도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현재 영필씨의 유일한 수입은 실업급여이다. 가정을 이끌어 나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내가 다쳤을 때 산재보험이 도움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겪어보니 너무 부당한 것 같다. 영필씨 같은 노동자들이 다쳐도 마음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고, 또 부담 없이 원 직장에 복귀할 수 있는 그런 날은 언제나 올까?
영필씨의 하루하루는 힘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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