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류미례 소개
98년부터 푸른영상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왔던 감독은 결혼과 출산의 문제로 잠시 활동을 접었다가 <엄마…>로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푸른영상 류미례
드디어 신발을 샀다. 구멍난 지 일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적당한 신발을 구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 발은 235mm, 특별히 크거나 작지도 않은데 맞는 신발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마음에 들고 치수가 맞는 신발을 골라도 예쁜 신발들은 대부분 발도 들어가지 않았다. 볼이 너무 넓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여자 발이 그래서 어떡하냐며 혀를 차곤 하셨다. 나는 내 발이 부끄러웠다. 신발을 살 때마다 나는 내 발이 미웠다. 도대체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거야?
<엄마…>를 만들었던 시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나는 항상 우리 엄마가 부담스러웠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하하 웃으며 “우리 엄마는 춤추는 거 좋아하셔”라며 짐짓 유쾌하게 말했지만 아주 오랫동안 술 마시고 춤추는 우리 엄마는 외면하고 싶은 존재였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제 나는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딸을 가진 엄마가 되어 늙은 엄마를 바라본다는 건 묘한 경험이다. 어느덧 나는 엄마의 과거가, 엄마는 나의 미래가 되어있는 것이다. 첫애 하은이를 낳고 집에만 있으면서 나는 일하고 싶은 내 마음을 죄스러워 했다. 세상의 많은 엄마들은 아이를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아이의 모습에 온통 마음을 뺏기며 황홀해하는데, 나는, 엄마 자격이 없는 나는 일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맞아. 우리 엄마도 정이 없었어. 아아, 딸은 엄마를 닮는다더니 나도 엄마처럼 독살스런 엄마가 되겠구나’
어떻게 이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을까 궁리하며 허둥대던 나는 내 세 번째 영화로 엄마의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 <엄마...>는 나를, 그리고 우리 엄마를 옹호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나는 더 이상 엄마를 닮을까봐 걱정하는 딸이 아니라 엄마를 옹호함으로써 나의 정당성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나 류미례는 하은이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술 마시는 것,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 카메라를 들었을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 독립적인 한 ‘사람’이라는 것, 그 사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예기치 않은 둘째아이의 임신과 출산 때문에 쫓기듯 세상에 나온 <엄마...>는 2004년 4월, 여성영화제에서 관객들과 첫 대면을 했다. 영화가 끝나고 앞 다투어 감상과 질문을 쏟아놓는 관객들 앞에서 나는 행복했다. 그들이 쏟아놓는 많은 말들에 나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반응은 “우리 엄마는 더해!”라는 수많은 딸들의 고백이었다. 세상에 우리 엄마같은, 나같은 엄마는 무수히 많았던 것이다. 인자한 웃음을 흘리며 손주 돌보는 것을 낙으로 삼는 TV 속 할머니들, 한없는 사랑으로 외손자를 감싸는 <집으로...>의 착한 외할머니. 미디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여성, 어머니, 할머니의 모습은 천편일률적으로 헌신적이고 희생적이고 지고지순하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거꾸로 우리들을 억압해왔던 것이다. 내가 내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보니 나처럼 억압당해왔던 수많은 딸들이 외쳤다. 우리 엄마는 더하다고. 그리고 그 말들을 서로 쏟아놓으며 우리들은 힘을 얻었다. 더 이상 나의 모습을, 내 어머니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다양한 모습을, 더 나아가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인정하고 자연스레 드러내며 살아가자.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더 이상 주어진 틀을 그저 받아들이며 나를 숨기지 말자… 영화제에서, 극장에서, 지역의 작은 강당에서 만나는 수많은 여성들과 나는 그렇게 마음을 나눴다. 그것이 내게 기쁨이었다.
다시 내 발을 생각한다. 내 발처럼 볼이 넓은 발을 가진 사람들을 나는 무수히 많이 만나왔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못생긴 자신의 발을 미워하며 신발에 나를 맞춰왔다. 이제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 넓적하고 못생긴 발이라도 내 발을 아껴주고 싶다. 보기 좋게 규격화된 신발에 발을 맞추며 살아가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나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다행히 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엄마…>를 만들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던 지난 1년의 시간은 내게 평생을 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나는 나와 내 어머니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나의 욕망을 죄스러워 하고 ‘보통의 엄마’와는 다른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 미디어가 부추긴 착각이었을 뿐이다. 또 좀 다르면 어떤가? 다수의 삶이 항상 올바른 건 아니다. 나는 아주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다. 영화를 본 누군가가 내게 “그럴 줄 모르고 결혼했냐?”고 물었을 때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렇다. 나는 그럴 줄 몰랐다” 결혼이라는 세계에 발을 디디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그리고 내가 새롭게 맞닥뜨리는 기묘한 요구들, 관계들을 나는 “왜 이런가?”라고 차근차근 따져볼 것이다. <엄마…>의 관객들이 내게 불어넣어준 자신감은 그렇게 나를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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