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월] 노동운동의 다중인격 : “지킬박사와 하이드((Dr. Jekyll And Mr. Hyde)”

일터기사

[칼럼]

노동운동의 다중인격
: “지킬박사와 하이드(Dr. Jekyll And Mr. Hyde)”

자유기고가 박일평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R.L.스티븐슨이 1886년에 발표한 기괴소설인 ‘지킬박사와 하이드(원제 :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는 인간 성격의 이중적 측면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용어가 되었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학식이 높고 자비심이 많은 지킬박사는 인간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악의 모순된 이중성을 약품으로 분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상에서 약품을 만들어 복용한 결과, 악성을 지닌 추악한 하이드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점차 악이 선을 이겨, 약을 먹지 않아도 하이드로 저절로 변신하여 지킬박사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드디어 악인 하이드는 살인을 하고 경찰에게 쫓겨 체포되려는 순간 스스로 자살하여 모든 것을 유서로 고백하면서 소설은 마무리된다. 비록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인간 심리의 복잡한 이중성을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예술 형태로 재창작되었다. 이미 1931년 루벤 마물리안이라는 감독이 프레드릭 마치(Fredric March), 미리엄 홉킨스(Miriam Hopkins), 로즈 호바트(Rose Hobart) 등을 중연으로 캐스팅하여 공포영화로 만들었는데,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1인 2역으로 소화해낸 배우 프레드릭 마치가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룹 서태지가 ‘교실이데아’ ‘발해를 꿈꾸며’ 등과 함께 3집에서 노래 제목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의 성격 중 선(善)과 악(惡)을 상징하는데, 이들 성격이 한사람에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신경 정신과적 용어로는 이러한 성격을 이중인격(二重人格)이라고 하는데, 만약 그 질적으로 다른 성격이 여러 개이면 다중인격(多重人格)이라 한다. 이러한 정신질환 상태는 ‘자아분열’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자아분열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거나 자신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할 경우에 생기는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적으로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나타나며, 자신의 실제 성격과 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평소 자신이 바라던 이상형 혹은 그 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아분열과 달리 다중인격장애는 해리성(解離性)장애로도 불리우며, 예전에는 ‘빙의’라고도 하였다. 이 질환의 90%는 여성에서 발병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100여 년 전부터 의학계에 알려져 왔다. 가장 간단한 형태는 이중인격이고, 3개부터 수십 개까지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다중인격은 실제로 한 사람 안에 여러 개의 인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내부에서 오랫동안 형성된 정신 상태의 일부분들이 일시적으로 그 사람의 전체를 조종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에 따라 1994년 다중인격장애라는 병명을 해리성 정체장애로 변경하였다.

다중인격의 형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제기되고 있다. 대개의 원인은 유년시절에 받은 육체적 또는 성적 학대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 끔찍한 사고의 목격 등 정신적 외상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증세는 특정한 인격이 그 사람의 마음을 장악할 동안 경험한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며, 그러한 인격의 존재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여러 성격 중 한두 인격이 다른 성격들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각각의 인격은 서로 다른 취향과 나이, 특징을 보이며, 드물게는 환자 자신이 전혀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들은 자신의 증세를 감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신의 증세를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도 있다. 진단 및 치료법으로는 최면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최면은 존재하는 다양한 인격들을 불러내고, 한 인격이 다른 인격을 점차 알게 하며, 이들 사이에 의사소통을 촉진시키는 기술을 선택하여 궁극적으로 부정적 인격의 파괴적 요소들을 조절하고 방어하는 인격으로 융합시키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뇌물은 직권(職權)을 이용하여 특별한 편의를 봐달라는 뜻으로 주는 부정한 금품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뇌물만큼 막강한 영향력과 파괴력을 가진 것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보편적인 관행이자, 도덕과 윤리의 범주 대신 상식이나 관행으로 치부되었던 것이 바로 뇌물이었다. 권력 내부에서, 권력과 기업에서, 권력과 언론에서 등장하는 뇌물의 기본적 능력은 관료와 기업, 관료와 개인, 교육현장, 의료계 등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세계에 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한국에서만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제도가 정착된 상당수 나라에서 보편적인 현상으로 나타나 있다. 이러다 보니 국제 상거래에서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관행을 없애자는 국제적 협약, 즉 뇌물 방지 협약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1997년 5월 OECD 각료이사회에서 구체적인 형사처벌규정을 담은 국제협약을 제정하고 시행토록 하는 권고안이 채택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국제 협약 말고도 해외에서 공사를 따내거나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 그 나라의 관리들에게 뇌물을 줄 경우 국내법에 따라 처벌하도록 하는 ‘해외뇌물방지법’이 있는데, 이 법은 범세계적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반부패라운드의 첫 번째 구체적인 조치로, 해외에서의 상거래관행이 상대적으로 투명하지 못한 우리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러한 뇌물 방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뇌물공여지수(賂物供與指數, bribe payers index)는 여전히 낮은 형편이다. 이 지수는 국제적인 부패감시 민간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2000년부터 격년제로 발표하는 지수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인 부패지수(CPI)와 함께 한 국가의 청렴도를 재는 주요 잣대로 사용된다. 부패지수와 다른 점은 부패지수가 공무원, 즉 뇌물을 받는 쪽에 초점을 두는 반면, 뇌물공여지수는 뇌물을 주는 쪽, 즉 기업에 초점을 둔다는 점이다. 지수가 높을수록 국가 청렴도도 높은데, 2000년 처음 발표된 뇌물공여지수는 스웨덴이 8.3으로 가장 높고, 이어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8.1), 오스트리아(7.8)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무역량 상위 19개국 가운데 18위(3.4)이다. 2002년 발표에서는 조사 대상 21개국 가운데 오스트레일리아․스웨덴․스위스․오스트리아 순으로 청렴도가 높았고, 한국은 2000년과 마찬가지로 18위를 차지해 역시 경제 규모에 비해 부패한 국가라는 오명을 남겼다.

국회 원내 제 3당으로 화려하게 진입한 민주노동당의 창원시 의원 뇌물수수사건이 발생한 2004년 8월만 해도 노동운동 진영의 뇌물수수 행위는 반성과 사과로 일단락될 수 있는 우연한 사건으로 이해되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경찰에 긴급체포된 정동화 창원시 의원의 뇌물수수사건에 대해 발 빠른 진화에 나섰고, 사과문에서 “큰 책임을 느끼며 깊이 사과드린다”며 “어떤 부정과 비리도 용납하지 않고 아픈 상처를 도려내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당내 조사활동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이후 지방의원단 총회를 개최해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해 벽두부터 노동운동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뇌물과 부패 혐의가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의 특종으로 대두되고 있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조 간부가 채용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이 수사에 나서 광주 지부장 등이 구속되고 집행부 다수가 입건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노동조합의 핵심 간부가 회사의 용인 아래 직원 채용의 권한을 가지게 되면서, 취업의 대가로 수천만원씩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노동조합의 핵심 지도부가 직원 채용의 대가로 뇌물을 수수하였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한국 노동운동의 주요한 위기 징후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연이어 부산지검 특수부는 3월 16일 박이소 전 부산항운노조 위원장을 전격 체포했는데 감천 연락소 건립 공사비 횡령에 박 전위원장이 연루된 혐의였다. 검찰은 이미 감천 연락소 공사비 횡령에 관련된 기업 간부를 구속하고 긴급 체포된 항운노조 박모 후생부장에 대해서도 17일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미 검찰은 노조간부 8명에 대해 추가로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이번 출국금지 대상자들은 채용 비리와도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현재까지 드러난 노조공금 횡령 비리 외에 항운노조의 채용비리 의혹에도 휩싸여 있는 셈이다. 한편 인천 지방 검찰청은 17일 직원 채용과 승진 명목으로 수천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인천항운노조 전 조직부장 전모씨(56)와 현 조직부장 최모씨, 연락소장 최모씨, 조합원 김모씨 등 4명을 전격 구속 기소했다. 인천항운노조 전 조직부장 전씨는 지난 2001년부터 2년 동안 조합원 5명으로부터 채용과 승진 명목으로 5,900만원을, 현 조직부장 최씨는 조합원 5명으로부터 채용 대가로 4,300만원을 각각 받은 혐의이다. 또 연락소장 최씨와 조합원 김씨는 취업희망자들로부터 각각 2,000만원과, 7,3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이 노조원이 아니면 하역노동자로 채용될 수 없는 점을 이용해 취업 브로커와 노조 하위간부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채용비리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비리와 뇌물 수수 혐의가 검찰과 경찰에 의해 공표될 때마다, 보수 일간지의 사회면과 사설은 흥분의 도가니에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서특필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명분과 도덕성을 압도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은 너무나 당연하다. 최종적으로는 법정의 판정이 나오겠지만, 노동운동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 또한 이러한 현상을 인정하고 있는 듯하니, 바야흐로 노동운동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도전은 과거의 도전과는 그 성격이 완전히 판이하다. 자본계급의 공격과 탄압으로부터 그 자신의 생존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과거와 다르게, 지금은 그 노동운동 내부의 또 다른 계급성의 발호에 맞서야 하는 내부투쟁의 도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거론했던 것처럼, 뇌물과 부패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 자아분열인지 다중인격인지 아직 알 수 없다. 어느 쪽이든 노동운동 내부 선악의 질서가 형성되고, 그 악의 한축을 자본계급이 아닌 노동계급의 일부가 담당하는 내전의 형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노동운동은 비로소 힘겨운 단절을 시작하여야 할지도 모른다.

스릴러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3월 말 지방에서 재연된다. 1990년 휴스턴 앨리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1997년 브로드웨이에 데뷔하고 1,587회 공연 동안 전례 없는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이 작품이 국내 연기자들에 의해 두 번째로 막 위에 올려진다. 국내에서는 2004년 7월 서울에서 초연된 바 있으며 약 40,000명이 관람하였다고 한다. 남우주연상, 여우신인상 등을 거머쥐며 뮤지컬로 드물게 성공한 이 작품의 결말은 유감스럽게도 ‘파멸’이다. 선과 악이 한사람의 인격으로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며, 종국에는 다중인격의 공존 대신 파멸이 선택된다는 것이다. 노동운동 내부의 다중인격이 강력히 의심되는 시점에,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재는 왠지 불안하고 우울하기 짝이 없다. 죽음을 상징하는 암과 정상조직이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자본의 이기심과 해방 세상의 자유가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노동계급의 정의와 뇌물이 공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악의 공존을 불가피하게 인정한다면, 그것은 파멸을 기대하는 지렛대가 될 것이다. 다중인격은 그 진단이 어렵고, 진단까지 다른 병명으로 오진되기 쉽다. 그래서 무려 7-8년이 소요되기도 한다. 노동운동의 다중인격성은 그 징후가 포착되었을 뿐이다. 우리에게는 진단법으로 사용할 최면과 같은 수단이 없다. 다만 불안하고 두려울 뿐이다. 우리 내부의 결단만이 문제 해결의 출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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