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군산 노동자의 집 여은정
내가 언니들을 알게 된 건 경희 언니가 일반노조에 최저임금에 대한 문의전화를 하면서부터다. 노동부에 취업규칙 관련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가 그것을 빌미로 경희 언니가 결국 해고를 당하면서 나머지 언니들도 회사의 부당한 대우와 동료들의 왕따를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만두기까지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처리도 하고 현장에서 기를 쓰고 버텨보려고 했지만 작은 사업장에서 동료들과의 잦은 마찰로 인해 인간에 대한 존엄을 지키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둔 언니들과 나는 가끔 연락해서 같이 밥도 먹고 술도 한 잔 하고 노래방도 간다.
언니라고는 하지만 40대 초반인 경희 언니만 빼고 다들 50대에 나만한 자식들이 있는 여성들이다. 내가 이 나이 많은 여성(어떤 언니는 우리 엄마하고 동갑이다)들을 언니라고 부르는 데는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 조합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줌마라고 부르기도 뭐하고 해서 언니라고 어색해하면서 부르기 시작했는데 부르다보니 이 언니라는 호칭이 맘에 든다.
나보다 연배가 많은 언니들한테서 인간사에 대한 다양한 얘기도 듣고 결혼과 남편, 자식 등 복잡한 관계들에 대한 간접경험도 한다. 언니들은 나더러 결혼을 안 할 거냐고 걱정하기도 하고 더러는 결혼은 절대 하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얼마 전 농공단지에 새로 취직한 나이가 제일 많은 영순이 언니가 한턱 쏜다길래 나갔다. 일 잘하고 말 잘하고 성격 화통한 영순이 언니는 그곳에서 짱을 제압하고 자기가 짱이 됐다며 큰소리친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지 좀 심란해 보인다. 며칠 전 시집간 딸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딸이 대학 때 돈이 없어서 왕따 당한 얘기를 하며 그녀를 원망하는 말을 했단다. 온갖 궂은 일을 해가며 아끼고 아껴서 가르친 딸이(그 딸이 고 3이 되던 해에 남편의 사업이 망했단다) 그런 소리를 하니 언니로서는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더란다. 처녀 적에는 집안의 동생과 부모를 위해, 결혼해서는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언니에게 딸의 그 한 마디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심한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그 뒤 며칠 밥을 못 먹고 지내던 언니는 회사 회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비 오는 길가에 퍼질러 앉아 꺼억꺼억 목 놓아 울었다 한다. 그러면서 나더러 ‘부모님께 잘하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얼굴이 이미 볼그족족해진 언니는‘시간이 약이란다’라며 소주를 연거푸 마신다.
얘기를 듣다 보니 엄마 생각이 난다. 전화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어쩌다 집에다 전화를 했는데 갑자기 엄마가 아무 소리도 안 한다. ‘엄마, 왜 그래?’ 했더니 전화기 너머에선 결혼한 언니한테 받은 서운함 때문에 서럽게 우는 엄마가 있다.
“엄마는 왜 바보같이 좋은 소리도 못 들으면서 다 퍼주고 왜 맨날 서운타고 해. 그냥 내버려 두고 살지.”
나는 언니들의 희생이 싫고 엄마의 간절한 바라봄이 싫다.
그냥 좀 편해졌으면 좋겠다.
“꼭 뭘 해주지 않아도 돼. 엄마가 거기 있으니까 좋아.”
이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어쩌면 엄마가 언니들이 나에게, 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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