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월/특집5] 반성과 실천의 방향 – 4월 사업을 평가하며

일터기사

[특집5]

반성과 실천의 방향
– 4월 사업을 평가하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 김재광

7월에서 4월이 된 이유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은 지난 4월이었다. 많은 달이 있는데 굳이 4월인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의 기원은 ‘7월 산재추방의 달’이다. 1988년은 전두환 군부독재에 항거한 6월 투쟁과 노동자 대투쟁이 한참 기세를 올린 뒤, 전두환의 또 다른 얼굴 노태우가 집권하면서 노동자민중의 허탈과 분노, 그리고 올림픽 관제 열기가 뒤엉켜 있었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더 무더웠던 그 해 여름 7월 2일, 온도계를 만드는 서울 양평동 한 공장에서 일하던 15세의 소년 노동자가 수은 중독으로 사망하였다. 직업병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어디 ‘문송면’ 뿐이었겠냐마는, 87년을 경과한 노동자민중은 투쟁으로 역사 속에서 그를 살려냈고, 자본의 탐욕을 잊지 않고, 스스로 각성하여 투쟁하기 위해 매년 7월을 ‘산재추방의 달’로 정하여 2001년까지 부침을 거듭하며 이어온다.

그러나 ‘노동재해’와 ‘노동자 건강권’을 되새기기에는 노동운동(또는 민주노조 운동)이 제도적으로 안착되고, 그예 비례한 전투성이 차츰 사위어 가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7월은 참으로 ‘난감한’ 달이 되어갔다. 노동안전 투쟁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금속사업장의 대부분은 이 때에 임/단협이 막판에 이르거나, 교섭이 타결되어 휴가가 시작되는 시기로, 현장의 여건은 7월 투쟁(또는 사업)을 그 당위나 호소로만 머물게 하였다. 때문에 임/단협이 시작되는 시기에 “노동자 건강권”을 현장의 요구로 만들고, 임/단협 시기 분리되지 않는 투쟁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역사적인 7월’을 2002년부터 4월로 옮기게 된다. 요컨대 현장과 분리되지 않고 실천되는 노동자 건강권 투쟁을 절절하게 의도하면서 상징되는 달을 옮긴 것이다.

상징과 현실의 긴장

올해 민주노총, 노동보건단체, 노동재해피해자단체, 보건의료단체 등 15개 조직은 4월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 공동추진위(이하 4월 공추위)을 구성하여 4월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 사업 목표를 요약하면 “현장에서부터 근로조건개선투쟁으로써 건강권 투쟁이 갖는 의미를 함께 공유하고, 사회적 의제화를 통한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에 파열구를 내는 투쟁에 복무한다”이다. 이를 위해 기본 선전물 제작, 토론회, 1노조 1실천, 4/28 전국동시 산재사망 촛불추모제 등이 준비되었고, 한편으로 4월 공추위와 별도로 노동재해사망은 기업살인임을 사회적으로 선전하는 공동캠페인단(민주노총, 한국노총, 매일노동뉴스, 노동건강연대)이 준비되고 출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장으로부터 건강권 투쟁의 의미를 공유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의제화하여 신자유주의 정책에 파열구를 내기에는 투쟁과 사업은 분산되어 그 뜻을 이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물론 4월 내내 비정규법안 문제로 인해 현장의 관심이나 사회적 이목이 한쪽으로 치우진 상황에서 투쟁의 집중과 관심을 이끌기에는 분명한 상황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만으로 그 원인의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다. 더구나 올해의 4월 지역에서 벌어졌던 실제 투쟁과 괴리되었던 점에서 그렇다. 현실의 긴장은 4월 공추위의 사업을 넘어서고 있었고, 4월 공추위는 뒤늦더라도 투쟁을 확산할 의사도, 권위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한편 4월 공추위의 주요참가단체가 이미 구성한 공동투쟁체 “근골격계직업병 인정기준 개악안 폐기와 산재보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이하 공투위)”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4월이 시작되면서 인천지역에서는 근로복지공단 경인본부 점거농성이 4월 19일까지 13일간 진행되었다. 창원에서는 4월 11일부터 22일까지 근로복지공단 창원지사에서 천막농성을 하였고, 광주에서는 4월 말부터 5월 14일까지 복지공단에서 천막농성투쟁을 진행하였다. 지역에서 벌어진 투쟁은 미리 예정된 경우도 있었으나, 투쟁의 불가피성이 더욱 크게 작용하였다. 즉, 공단의 반 노동자적인 행태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4월 투쟁의 구체적 과제는 현실이 웅변하듯이 대(對) 근로복지공단 투쟁이었던 것이며, 직접 실천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는 그동안 공단이 자본의 이해를 충실하고도 꾸준하게 반영하여 강화한 각종 기준과 규정 등의 폐해가 확산되고 일반화되고 있다는 현실의 반영인 것이다. 이럼에도 4월 공추위의 사업은 산재보험제도를 개선하는 것을 한 축으로 하면서도, 정작 실제 폐해와 그 주요한 실행자인 공단에 대한 타격투쟁을 기획, 또는 엄호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4월이라는 상징과 현실 긴장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그 간격 역시 좁히지 못하였다. 이러한 요인 등이 느닷없이 공투위에서 “요양업무처리규정 전면 대응을 위한 노동안전보건활동가 수련회”를 제안하고, 4월 30일에 개최된 배경인 것이다. 4/28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제가 크건 작건 전국에서 열렸음에도 이것이 기념 이상 나아가지 못한 것은 이식된 기념일이라서가 아니라, 현재의 고통과 긴장관계를 제대로 발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역사적인 7월’에서 4월로 상징을 옮긴 이유가 현실과 조응하기 위한 것일진대, 현실마저도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투쟁의 결절점이 될 상징을 희망한다

05년 투쟁의 과제는 04년 유해요인 조사를 기반으로 이를 확장하거나, 그 결과를 가지고 현장에서 노동환경개선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고, 동시에 산재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현장에서의 작업환경 개선의 모범을 의식적으로 전파하고 과정에서의 어려움 등을 작업현장에서 지역으로 확대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산재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것은 법 개정과 더불어 일상적으로 나타나고 산재노동자를 힘겹게 하는 공단의 지침과 규정 등을 구체적으로 무력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최근 공단의 산파라치제(산재보상 허위 수급자 고발제도)나, ‘과격집단민원 대응요령’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적극적 대응이 거세지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더 그러하다. 법제도의 개선 등에서 현장 노동자들을 국회 담 밖의 압력세력이 아니라 실질적인 주체로 세우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고통과 맞닿은 투쟁이 동시에 펼쳐져야 한다. 요컨대 제대로 보장받기 위한 제도개선 노력이 투쟁다워지려면 공단의 독소규정과 인정기준 등의 폐기로부터 시작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돌이켜 보자. 3/8 여성의 날, 4/3 제주민중항쟁, 5/1 노동절, 5/18 광주민중항쟁 등등 세상에는 기념하고 가치를 기리는 상징의 날이 수도 없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상징의 날이 현실에서 살아있는 호흡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상징이 담고 있는 뜻이 바로 지금 현재에서 절절하게 실천되고, 실현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상징이 형식화되는 이유는 더 이상 상징이 현재의 삶에 의미가 없거나, 상징의 뜻을 현실과 조응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4/20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으로부터 거부당하고 오히려 주체가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의 날’로 정하고 투쟁함으로써 의미를 가지는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장애인의 이동권에서부터 교육권에 이르는 투쟁에서 420은 새로운 상징과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노동자민중에게 있어 상징과 기념은 현실의 문제를 극복할 명확한 기점일 때 당연하게도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이때야 비로써 상징을 통해 투쟁의 쟁점과 방향을 공유하게 하고, 투쟁의 총의를 모아 가는 출발선 또는 전환점을 이루는 것이다. 투쟁의 쟁점과 방향은 현실의 문제와 치열함으로 설정될 때 현실의 긴장이 극대화되고 발현되는 것이다. 상징은 투쟁의 기승전결 어디든 위치해야 하고 실천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 하에서 보자면 4월 사업은 7월의 유해요인조사 만 1년, 9월의 국회 산재보험개정논의를 앞둔 상황에서 이를 쟁점화하고, 실질적인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발한 기왕의 지역 투쟁을 지지하고, 총화하고 전체화하는 기획이나 의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4월이라는 상징은 05년 투쟁의 기(起)에 위치되었어야만 했다.

무릇 지나간 시기의 평가가 다만 비판에만 머문다면 이 역시 공연한 사설 이상이 될 수 없다. 매년 평가가 그게 그것이고 달라진 것이 없다면, 달라지려고 주체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 보다 더한 기만은 없다 할 것이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당면의 문제는 지금이라도 전국적으로 숙의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당면한 투쟁을 성실히 이행할 때만이 06년 4월은 기념과 행사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투쟁의 상징으로 설 것이며, 그 해 투쟁의 기승전결에 있어 정확한 위치를 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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